Rainbow Bible Class

“선생님의 히브리어 타자기”

 

1980년에 미국에 유학할 당시만 해도 개인 컴퓨터(PC)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당시 내가 다니던 캘빈 신학교의 복도를 지나다보면 교수님들의 연구실들이 좌우로 보였는데, 연구실문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훤히 들여다보였습니다. 교수님들의 책상위엔 하나같이 전동타자기(electronic typewriter)들이 놓여있었습니다. 나 역시 신학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도 전동 타자기로 페이퍼를 작성해서 냈으니깐 지금 생각하면 원시시대에 살았던 생각이 듭니다. 하기야 유학가기 전의 한국 상황은 타자 학원들이 곳곳에 있었고, 타지기라야 수동식 공병우 타자기가 전부였던 당시였습니다. 수동식 타자기도 별로 구경해보지 못한 사람이 미국에 가서 수업을 위해 전동식 타자기를 구입해서 집에 가져오던 날의 환희는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기억도 생생한 스미스 코로나(smith corona) 전동타자기였습니다.

 

35년이 지난 오늘 나는 내 모교에 다시 들릴 기회가 있었습니다. 세월이 쏜살같다고 하더니만 시간 여행하듯이 아주 오래전에 공부했던 교실들을 찾아보았습니다. 20대 후반의 젊은 날의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내가 앉아 미래를 설계하고 꿈을 꾸던 책상들과 걸상들을 살며시 만져보았습니다. 교실을 나와 다시 복도를 걸으면서 비록 주인의 이름은 바뀌었지만 세월을 빗겨나간 채 고색창연한 색채를 덧입고 있는 복도 좌우로 있는 교수실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잠시 멈추어 유리창문 안으로 보이는 교수실들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저 자리에 앉아 발을 책상 위에 얹어놓고 가끔은 창밖 잔디에 뭔가를 먹는 새를 보기도 하고, 겨울에는 흰눈 내리는 관경에 몰입이라도 하면서 책이나 학생들의 페이퍼를 읽던 교수님들의 얼굴과 이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프래드 클루스터(조직신학), 앤르류 밴스트라(신약신학), 배스티안 밴 앨더른(신약신학), 데오도로 미네마(윤리학), 마르텐 와우스트라(구약학), 형제간인 존 크로밍가(교회사)와 칼 크로밍가(예배학), 멜빈 휴건(목회상담학), 헨리 쯔완스트라(교회사), 코넬리우스 플란팅가(조직신학), 로봇 랙커(선교학), 헤롤드 데커(선교학), 리처드 드 리더(교회정치학), 그리고 입학담당자였던 존 밴더 룩. 이분들은 이제는 대부분 세상을 떠나셨거나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자락에 계시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기간에 개혁신학의 골격을 세워주셨던 스승들이기에 나는 복도에 잠시 서서 묵념을 했습니다. 먹먹해진 마음을 가다듬기가 힘 들었나 봅니다.

 

다시 중앙 복도를 지나다가 내 눈길이 멈춘 곳이 있었습니다. 복도 벽면에 자그마한 유리 전시관이었는데, 그곳에 내 평생의 잊을 수 없는 은사이신 존 스택(John Stek) 선생님의 얼굴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그 유리관에 열리진 타자기 박스와 타자기가 보였습니다. 선생님이 평생 사용하시던 타자기를 그 사모님이 학교에 유품으로 기증하신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 타자기는 “히브리어 자판 타자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옆엔 평생 시편을 연구하시고 번역에 온 삶을 바치신 미간행 “시편 번역본”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한쪽 면에는 히브리어 타자로 친 시편 히브리어 본문과 맞쪽 면에는 영어번역 본문이 실려 있었습니다.

 

요즘처럼 컴퓨터와 인터넷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달한 시대에 저 아주 오래된 수동식 히브리어 타자기를 바라보니 왠지 모를 서글픔이 밀물처럼 몰려왔습니다. 그리고는 나 홀로 “장엄한 기립 박수”를 쳤습니다. 색 바랜 그 히브리어 타자기는 헌신, 열정, 성실, 근면, 인내와 같은 소박하지만 가장 강인한 덕목들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아주 오래전 타자기로 히브리어 한 글자 한 글자를 꾹꾹 눌러가며 수많은 날들을 보내신 그 헌신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존경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립박수는 먼발치에서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는 이 볼품없는 제자를 위한 격려의 몸짓이기도 했습니다. 참 스승의 체취를 어렴풋하게나마 느꼈던 하루였습니다.

 

[칼빈신학교에 전시된 선생님의 히브리어 타자기]

 

스택.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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