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큐티를 위한 스가랴서 해설 (6)

2009.10.16 00:38

류호준 조회 수:7784

큐티를 위한 스가랴서 해설(6)

 

[6] 3:6-10

6 여호와의 천사가 여호수아에게 증언하여 이르되 7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가운데에 왕래하게 하리라 8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들이라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 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예언자 스가랴에게는 천상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의 계획들을 친히 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그는 여호수아가 대제사장으로 임직을 받아 새로운 사명과 비전을 갖고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을 본 것입니다. 새롭게 사역을 시작하게 된 여호수아와 그의 사독계 동료 제사장들은 장차 올 다윗 계통의 ‘통치자’(筍)를 가리키는 징표들입니다. 그들의 임재와 사역을 통해 사람들은 장차 다윗과 같은 왕이 출현하여 그들을 다스리게 될 날이 도래한다는 것을 미리 알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은 스가랴에게 일곱 눈을 가진 ‘돌’을 보여주심으로써 대제사장으로서 여호수아의 속죄 사역이 완성에 이르게 될 것도 보여주셨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징표들과 약속들은 낙심한 공동체에게 새로운 희망과 힘을 불어넣기에 충분하였습니다. 환상이 예언자 스가랴에게 주어진 이러한 이유를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매우 적절하게 요약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신자들은 그들의 싸움이 어떤 특정한 나라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적 원수인 사탄과 싸운다는 사실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이며, 둘째, 그런 치열한 전투에 대한 해결책이 매우 가까이 와있다는 사실, 즉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제정하신 제사장직을 옹호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신자들이 알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야웨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기를, 그가 계속해서 야웨께 신실하고 충성한다면 그는 야웨가 계획하고 계신 사건들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중심인물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환상과 그에 대한 해설을 통해 보여주는 교훈은, 여호수아와 그의 동료들은 야웨께서 구원과 회복의 기초가 될 그의 종 ‘가지’(Branch)를 통해 행하시려는 것을 가리키는 예표이며 신호라는 것입니다. 또한 야웨께서는 예언자 스가랴에게 또 한 가지 물체를 보여주십니다. 일곱 눈을 가진 돌로 그 위에 무엇인가 새겨진 돌을 하나를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그 땅의 죄를 하루 사이에 다 제거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일들이 있게 될 때 비로소 그 땅에 번영과 평화의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야웨의 천사는 여호수아가 대제사장으로서 새로운 사명을 위임받아 행사하려면 먼저 지켜야할 일정한 조건이 있다고 알립니다. 첫째로, 야웨의 ‘길’로 걸어야한다는 것이며, 둘째로 성전을 돌보는 일상적인 제사장의 책임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야웨의 토라(가르침, 율법)를 백성들에게 교육하는 일과 제사를 집전하는 일이 제사장들이 해야 하는 전통적인 두 가지 임무들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야웨 하나님의 가르침인 ‘토라’를 부지런히 백성들에게 가르쳐 그들로 ‘길’을 잃고 방황하지 않도록 하는 사명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가 잘 증언하듯이, 제사장들은 야웨의 가르침에 대해 무지하거나 외면하였으며, 따라서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가르침을 신실하게 가르치지도 않았습니다. 그 대신 그들은 다른 ‘정치적’인 일들에 관심이 있었고, 종종 종교의 세속화를 인도하는 불행한 지도자들로 전락하곤 하였습니다. 유다의 불행스런 종말의 상당부분이 종교지도자들 ― 함량미달의 제사장들과 호구지책으로 사역했던 거짓 선지자들 ― 때문이라는 것을 성경은 반복해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으로서 여호수아는 자신이 백성들보다 먼저 솔선수범하여 야웨의 길로 걸어야 합니다. 야웨의 길은 곧 야웨의 토라의 가르침대로 사는 방식입니다. 그가 먼저 그 길(道)로 걸어야 그의 백성들도 따라 걷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 비로소 그에게는 권위가 따르게 됩니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성전 뜰들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서있는 자들 중에 자유롭게 출입하게 할 것이다”(7절). 본문은 야웨의 길로 걷는 제사장에게 절대적 권위와 아울러 천상의 내전(內殿)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질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여호수아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새롭게 재건된 성전을 책임지게 될 것이고,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천상의 왕 야웨의 내전(內殿)과 뜰들을 마음대로 드나들며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되는 특권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여호수아라 불리는 대제사장을 통하여 활짝 열리게 된 것이다. 여호수아는 토라와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계명들과 명령들을 순종해야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지도자의 진정한 ‘권위’와 ‘자유’는 어디에서 오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정확하고 분명한 어조로 말합니다. “야웨의 길로만 걸어라, 즉 그가 지키라고 제시한 그분의 ‘토라’(가르침)대로만 살라. 그러면 성전에서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말에 순종할 것이고, 그들 역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천상의 어전에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천상의 왕이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될 것이다!” 혹시 진정한 ‘권위’와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기 원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이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여호수아와 그의 동료들인 사독 계통의 제사장들은 장차 올 밝은 미래에 대한 일종의 징조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앞으로 나타날 일, 즉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에 대해 암시하는 징표라는 것입니다. 그들 자체가 ‘좋은 징조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미래에 대한 징조란 말인가? 여기서 말하는 미래는 특별히 두 가지 약속들로 특징지어지는 미래를 가리킵니다.


첫째로, 여기서 말하고 있는 미래는 새로운 시대가 온전하게 도래 하는 때를 말하고 있는데, 그때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올바르게 인도하고 다스릴 진정한 통치자가 출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통치자는 하나님의 종이며, ‘가지’라고도 불립니다. 이 용어는 종종 장차 올 메시아를 가리키는 전문적인 용어로 사용되곤 하는데 이사야 11:1-10에 묘사되고 있는 ‘의로운 가지’를 연상케 합니다. 즉 장차 다윗의 계통에서 한 ‘싹’(장차 출현하게 될 종말론적 왕 같은 인물)이 나타나 정의와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고 온 세상에 에덴동산에서 이루어졌던 평화(샬롬)를 다시 가져 올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가지’와 함께 위에서 언급된 ‘불에 타다 남은 토막나무’를 생각해 보십시다. 마치 이사야서의 ‘고난 받는 야웨의 종’처럼 백성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여 불같은 고난을 통과하여, 사람들 눈에는 그가 저주받아 죽어 이 세상에서 사라져 없어진 것으로 여김을 받았으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불구덩이에서 건짐을 받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그 타다 남은 토막나무에 새로운 싹이 움트고 순(筍)이 솟아나서 자라 가지들을 이루고 마침내 큰 나무가 되어 온 천지를 뒤덮는 큰 나무가 되어 온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안식을 누리게 되는 새 시대가 도래 한다는 약속이야말로 낙심하고 비관적이 되어버린 스가랴 당대의 사람들에게 현란한 복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이렇게 격려되고 힘과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일곱 면(눈)을 가진 한 기이한 돌이 여호수아 앞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있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스가랴는 여호수아 앞에 돌 한 개가 있는 것을 봅니다. 무슨 돌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종류의 돌인가? 무엇을 상징하는 돌일까? 먼저 돌에 관한 구약의 가르침의 빛 아래서 본 단락에 언급되고 있는 돌을 살펴보자면, 건물에 사용되는 모퉁이돌이나 기초석을 가리키거나, 아니면 제사장들의 의복에 달린 돌을 가리킬 것입니다. 그 돌이 우리의 삶의 기초석이 되든지, 아니면 우리에게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안내해 주는 중보자 역할을 하든지 간에 우리에게는 무한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한 순간에(‘하루에’ 9절) 사람들의 죄들이 다 제거되고 용서함을 받게 된 후에 비로소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삶,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야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스가랴는 이러한 축복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를 초청하여 각자들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다.” 미가 4:4에서 인용한 듯한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세상 나라들과 민족들을 심판하시고 그 후 온 누리에 평화를 하사하여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신 광경을 한 커트 찍어 그림언어로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본 장에 기록된 ‘여호수아 환상’은 야웨의 길과 토라에 순종하는 대제사장의 모습, 속죄의 권위를 부여받은 대제사장의 모습, 하나님의 어전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대제사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의 모습은 자연스레 우리로 하여금 완벽하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특별히 히브리서에 나타난 대제사장 상(像)은 스가랴 3장에 기록된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모습과 좋은 평행을 이룹니다.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충성과 헌신을 보여주시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고난을 통해서 순종을 이루어 가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모든 사람을 위해 단번에 죄를 속하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면전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의 기도를 올리시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이런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요 힘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뿐인가? 본문의 마지막 절이 잘 드러내고 있듯이, 그분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진정한 평화와 번영의 때가 도래할 것입니다. 그는 평강의 왕이요 평화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의 저자가 권고하듯이, “우리의 믿음을 시작하신 분이시며 그 믿음을 완성케 하시는 [대제사장] 예수를 바라봅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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