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로마서 묵상(7): "계좌이체"

2010.01.18 05:23

류호준 조회 수:7787

 “당신에 계좌에”


[본문]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4:1-8)



[요절]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5)

"However, to anyone who does not work but trusts God who justifies the ungodly, their faith is credited as righteous." (Romans 4:5)



[묵상 에세이]


‘복음’(福音)은 말 그대도 ‘복된 소리’입니다. 복음을 헬라어로 ‘유앙겔리온’이라 하는데 문자적으로 번역하자면 ‘좋은 소식’(good news)입니다. 너무 좋아서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요정이야기와 같습니다. 복음은 그것을 처음 듣는 사람에게 어지러움과 울렁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전에 들어보지 못한 새것(newness)입니다. 복음을 언제나 들어도 새롭습니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계시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다는 소식과 함께 복음이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전대미문의 소식, 새로운 소식, 그래서 좋은 소식, 복된 소식입니다. 여기서 ‘새것’ 혹은 ‘새로운’이란 용어는 ‘옛것’ 혹은 ‘오래됨’이 폐기되었거나 없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취되었다는 뜻입니다. 옛것이 이루어졌다는 듯에서 ‘새로움’입니다. 새 차를 구입하면 쓰던 차, 고물차, 옛 차는 가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새’ 언약(신약), 혹은 ‘새’ 계명, 혹은 ‘새’ 땅을 주실 때, 옛 것은 새것을 통하여 온전하게 성취되는 것입니다. 마치 씨앗이 나무를 통해 성취되고, 어린아이는 어른이 되어 성취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구약에서 완전히 벗어나거나 결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입니다. 어떤 분들은 잘못 생각하여, 신약은 복음이고 구약은 율법이다. 혹은 신약은 은혜이고 구약은 율법의 행위를 강조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대한 아주 잘못된 오해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복음, 바울의 ‘칭의(稱義)의 복음’은 구약 성경에 이미 계시되었던 구원의 길을 분명하게 노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새로운 학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구원의 길에 대해 설파하는 이단자도 아닙니다. 이미 구약성경에서 드러내고 가리키고 알려주었던 구원의 길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 확연하게 드러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로마서의 경우, 바울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 것은 그가 율법을 지키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분의 신실하심을 믿음으로써만 의로워진다”고 말씀하는데, 이것을 전문적인 용어로 ‘이신득의’(以信得義, “믿음으로써 의로움을 얻게 된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사람에게 이전되는 것을 가리켜 ‘의(義)의 전가(轉嫁)’(imputation of righteousness)라고 하는데,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덮어씌워졌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람은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기서 믿음이 우리가 구원을 받거나 의롭다 함을 받게 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구원과 의롭다하심을 받아들이면 이것을 의롭다하는 계산방식으로 쳐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우리말에 “그렇게 봐 준다”, “그렇게 쳐 준다”는 관용어가 있습니다. 달리 설명하자면, 내 은행계좌에 저축한 돈이 바닥이 나서 꼭 갚아야할 부채를 갚지 못하고 곧 파산이 되는데, 어떤 마음씨 좋으신 후원자가 내 사정을 알고 나를 불쌍히 여겨서 내 계좌에 빚을 갚고도 남을 충분한 돈을 이체시켜준 것과 같습니다. 기대하지 않는 계좌이체! 계좌이체를 해주겠다고 나에게 알려주었을 때, 그 소식은 요정 이야기며, 소설 같은 이야기며, 꿈같은 소식이며, 전대미문의 희(喜)소식이며, 그래서 현기증 나게 하는 좋은 소식(유앙겔리온, good news)입니다. 그때 나의 반응은 어떠할 것 같습니까? “이게 꿈입니까. 생시입니까?” “믿어지지 않네요!” “그러나 믿고 싶어요!” “아니지요! 믿고 싶은 것이 아니라 믿습니다!” 이럴 경우 ‘믿음’은 결코 내세울만하고 뽐낼만한 행위가 아닙니다. 은혜에 대한 고마움과 겸손의 반응입니다.


다시 돌아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는 고용주와 피고용인 사이의 관계가 아닙니다. 만약 그러했더라면 아브라함에게는 권리가 있었을 것이고 그에 다른 수입이나 이익배당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노사관계 협정을 맺으러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들고 아브라함에게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그 약속에 대해 반응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응답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맞습니다! 그 약속을 믿습니다!”라고 응답해야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의’ ‘의로움’ ‘옳다하심을 받음’은 행위나 업적이나 공로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얻어졌고 얻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의’(너는 옳아!)를 아무런 담보도 없이 그렇게 쳐주신 것은, 아브라함이 적립점수를 벌어놓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또 그가 의로웠거나 괜찮은 사람이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의가 아브라함에게 덮어씌워진 것은 아브라함이 ‘믿었을’ 때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에 의한 의롭다함이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의’를 사람에게 전가하는 계좌이체 방식입니다. 우리가 괜찮거나 착하거나 쓸 만하기 때문에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의롭다 하시는 분이십니다. 탕자의 비유에서처럼, 탕자의 몸에서 나는 것은 돼지 냄새며, 이방나라의 더러운 냄새뿐이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그 인자하신 분의 아들 같지도 않았고 그 아들처럼 살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를 자기의 아들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그 탕자의 얼굴을 눈물로 얼룩지게 한 아버지의 긍휼(자비)입니다. 아버지의 긍휼(은혜)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집을 잃은 고아(the fatherless)였을 것입니다. 경건하지 않는 자들을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공로점수를 ‘믿은’ 죄인들의 계좌에 옮겨 기록(移記)하신 것입니다.


‘칭의’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그 무엇이 아닙니다. 칭의는 하나님의 법적인 작업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신용점수들(credits)을 우리에게 공짜로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구원 계좌를 열어보십시오. 상상하지 않은 엄청난 금액이 이체되었을 것입니다. 이체 내역을 살펴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송금인: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이체근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적 죽음

        이체날짜: 영원 전에

        출금날짜: 믿는 순간부터

        수취인: ‘믿는’ 당신


크리스천들은 다른 누군가의 의로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자신들을 쳐다보면 칭의(稱義, Justification)가 정말로 일어났는지 알 수도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쳐다보십시오. 그분 안에서 나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너는 이제 괜찮아!”라고 하는 소리를 듣게 된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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