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05 13:46
"인간론을 배우는 곳"
오래전 신학교를 다닐 때였습니다. 당시 나는 미국 캘빈신학교 목회학 석사(M.Div.)과정 중이었습니다. 때는 조직신학 수업 중 인간론(doctrine of humanity)을 배우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인간론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코넬리우스 플랜팅가(Cornelius Plantinga Jr.)였습니다. 인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불쑥, “장차 목회자가 될 여러분들에게 충고하나를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왠 뜬금없이 목회에 대해 말씀을 하나 하고 궁금했습니다. 분명 인간론과 관련하여 말씀하시려는 것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장차 목회자가 되시면, 바쁜 목회생활 중에라도 종종 시간을 내어 두 곳을 방문해보시기 바랍니다.” 두 곳이라? “하나는 Public Cemetery고 다른 한 곳은 ICU 입니다.” “목회자로서 여러분은 그곳에서 뼛속 깊이 인간론을 배울 수 있을 겁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두 단어가 내 뇌리 속에 살아 꿈틀거립니다. 오늘도 그런 날 중에 하루입니다.
공동묘지(Public Cemetery)와 중환자실(Intensive Care Unit)!
인생의 "덧없음"과 "무력감"을 절실하게 가르쳐주는 교실.
*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Mortal Being)임을 말없이 웅변적으로 선포하는 묘지들,
* 차디찬 기계소리만이 삑삑거리며 들려오고 사람의 얼굴과 팔을 뒤덮고 있는 각종 호수들 사이에
무력한 기도만이 허공을 맴도는 중환자실의 깊은 어두움.
* 이보다 더 인간론을 뼈저리게 배울 수 있는 곳이 세상에 어디있을까?
사람은 죽음 앞에서 비로소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늙어감, 병 듬, 죽어감, 죽음을 통해 우리는 흙으로 우리를 빚으신 창조주 하나님, 죽음의 웅덩이에서 우리를 건져내시는 구속자 하나님을 어렴풋이 바라봅니다. 그리고 옛적 신앙의 선배들이 고백했듯이 우리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생사고락간에 당신에게 가장 유일한 위안이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죽음과 삶에 있어서 나는 내 것이 아니라 나의 신실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사실이 나에게 가장 강력한 위안이며 위로입니다.”(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서 제 1항 질문과 대답).
흙덩어리인 나를 당신의 손에 드립니다. 나를 빚어주소서. 아멘
[Grant County, Minnesota, near Elbow Lake, by Chris Olson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