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하나님의 아픔, 하나님의 고통, 하나님의 쓰라림”

 

 

1946년이라면 세계 제 2차 대전과 태평양 전쟁이 끝난 직후다. 온 세상이 고통 하던 시기다. 종말론적 대 재앙이 방금 전에 마친 후다. 서구에선 독일 나치 제국이, 동양에선 일본제국이 악의 축이었다. 그런데 그 해에 한 일본 신학자의 손에서 놀랄만한 책 한권이 나왔다. 이름 하여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이었다. 책을 쓴 사람은 기타모리 간조(1916 –1998)라는 사람이었다. 30세에 세계를 놀라게 한 작품을 써냈으니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루터의 십자가의 신학에 매료되었고 졸업 후에 동경에 있는 루터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였다. 그 후 40년간 동경 유니온 신학교에서 신학교수로 후학을 가르치다 은퇴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아픔”, “하나님의 고통”, “하나님의 쓰라림”에 대한 깊은 성찰의 근거를 구약성경 예레미야 31:20에서 찾았다. 우상숭배를 밥 먹듯이 하며 곁길로 나가는 탕자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애타는 심정을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은 이렇게 표현한다.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특별히 후반부(20b절)에 귀를 기울여보라.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 (개역개정)

“측은한 마음이 들어” (새번역)

“My heart yearns for him” (NIV)

“My bowels are troubled for him” (KJV)

“My heart yearns for him” (NASB)

“Darum bricht mir mein Herz” (Luther)

“Nun ist mein Interstes völlig ihm los” (독일 현대역)

 

흥미 있는 사실을, 가조가 참조하던 당시의 일본어 “문어역성서”(구약은 1887년 역)에서는 이 구절을 흠정역(KJV)처럼 “내 창자가 아프다”로 번역하고 있는데 후에 대중적인 번역인 일본어 “구어역성서”(1955년)는 “내 마음이 그를 연모[戀慕]하니”(아마 NIV나 NRSB의 yearn을 ‘연모’[戀慕]로 번역할 수 있겠다!)로 번역했다. 이 사실에 대해 가조는 이 책의 제 5판(1958년) 서문에서 매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이런 번역을 보니 내가 20년간 두려워하며 경고했던 일이 그대로 실현되었다.”(5판 서문에서)

 

또한 가조는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이 성부수난설과 연관되어 있다는 항간의 많은 비판에 대해 적극적으로 항변하면서 그것은 오해라고 일갈한다.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은 ‘실체’로서의 하나님에게 아픔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픔은 ‘실체 개념’이 아니라 ‘관계 개념’이다. 곧 하나님의 사랑의 성격이다. 이 점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 이 신학을 성부수난설과 혼동하는 근본 원인이다.”(5판 서문에서)

 

가조가 신학자로서 태평양 전쟁의 주범인 자기의 조국이 저지른 악마적 악행과 마성적 전쟁 범죄로 인해 지옥의 고통 받게 된 수많은 주변국가와 죄 없는 양민들에 대해 이 책에서 일말에 언급도 없었다는 것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동양인으로써 세계 학계에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을 선보인 것은 매우 놀랄만한 창조적 공헌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도 우리 한국인들이 갖는 “한(恨)”을 충분히 “한의 신학”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음에도 충분히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여기서 가조가 말하는 “아픔”은 우리 한민족에게도 “쓰라림”, “타들어가는 애간장”, “상하고 썩어들어 가는 속”, “단장(斷腸)의 슬픔과 비애” 등으로 표현되는 “아픔”들이 있다.

 

사실상 서구의 신학자들이나 유대인들(예, 몰트만, 아브라함 헤셀, 엘리 위젤)이 양차 대전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고통에 대한 눈들이 떠졌다면, 가조가 어떤 계기로 하나님의 아픔에 대한 눈이 열렸는지는 신비하기까지 하다. 후속 연구의 대상이다. 어쨌든 아주 오래전에 한 일본인 신학자가 그 누구도 다루지 않았던 하나님의 아픔에 대해 깊이 있는 신학적 성찰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울 뿐이다. 아래는 이 책에 실린 나의 추천단평이다.

 

******

 

고통은 인간이 겪는 것이지 신은 고통 할 수 없다는 생각은 서구 사상의 일반적 견해였다. 상당히 오랫동안 신학계에도 “하나님의 아픔 문제”를 잊고 지냈다. 비록 성경이 이 문제에 관해 집요하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난 세기 중반에 이르러 비로소 유대인 신학자들과 서구 유럽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아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과는 별개로 일본인 신학자가 이름을 올린다. 기타모리 가조다. 예레미야의 한 구절로부터 영감을 받은 그는 성경학자로서가 아니라 신학자로서 하나님의 아픔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가 일본적 배경에서 하나님의 아픔에 관한 신학적 성찰을 했다손 치더라도 그가 다루고 있는 이 문제는 성경학도라면 진지하게 곱씹어 보아야할 성경의 강력한 주제다. 가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아픔이 어떻게 연결될 뿐 아니라 인간의 아픔을 어떻게 근원적으로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배우게 된다. 이 책은 시대성과 영속적 가치를 동시에 표방하는 듯하다. 하나님의 아픔 신학에서 나는 성경과 신학의 멋진 콜라보레이션을 본다. 책 끝에 붙어있는 번역자의 비평적 해제는 값진 상여금이 된다.

 

류호준 목사 |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기타모리 가조,『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이원재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 375쪽. 정가 17,000원

 

아픔의 신학.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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