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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김근주,《구약으로 읽는 부활신앙》(SFC, 2014)

 

 

기독교를 가리켜 부활종교라고 한다. 부활을 떠나서 기독교신앙이 가능할까? 이에 대한 대답은 절대 “아니오!”이다. 기독교신앙의 핵심에는 부활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부활 개념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분명히 신약에서 나왔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 없이 부활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약에는 신약에서 말하는 부활개념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보려는 시도가 김근주 박사의《구약으로 읽는 부활신앙》이다. 특강형식으로 되어 있는 내용들을 깔끔하게 다듬어 멋진 외투를 입고 책자로 나왔다.

 

제 1장에서 저자는 구약성경은 내세가 아닌 현세에 집중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현세를 긍정하는 삶이 구약의 전망이라는 것이다(21-72쪽). 그렇다면 부활과 연계하여 구약은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저자는 죽음을 단순히 원죄의 결과로 보는 견해에 거리를 둔다. 그에 따르면 “원죄”는 구약에서 생소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의 창조기사 읽기에 따르면 흙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창조질서의 일부분이며 따라서 “죽음은 모든 인간이 맞이해야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종착점이다”(24쪽). 달리 말해 에덴이야기의 핵심은 인간의 전적 타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유한함”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죽음은 비극도 절망도 아니라 일종의 “귀향”이다. 생명의 원 소유주인 하나님께서 다시 거둬들이시는 것이기에 그렇다. “이 땅에서의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정해진 질서다. 삶을 끝내고 조상들의 길로 가는 것은 마땅한 질서다.”(33쪽) 이어서 저자는 제임스 바를 인용한다. “죽음이 항상 하나님과 반대되는 것이거나 저주라고 말하는 것, 혹은 죽음이 보편적으로 죄의 결과라고 이해하는 것은 구약의 보편적 이해에서 옳지 않다.”(33쪽).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어둠과 죽음의 세계인 스올은 내세가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기보다는 빛과 생명의 세계인 현세를 렘브란트적으로 강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즉 살아있는 생시가 얼마나 고귀하고 소중한 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구약이 죽음에 대해 말할 때에도 그것은 내세를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세의 고통과 고난과 절망, 즉 죽음(지옥)과 같은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시편의 정형화된 여러 탄식시 안에는 죽음과 같은 어둠, 절망의 웅덩이에서 건짐을 받는 묘사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것들은 요즘 우리가 말하는 육체적 부활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회복”으로 이해해야 한다.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잘 알려진 겔 37장의 경우 역시 육체적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회복, 즉 바벨론의 포로가 된 자들에게 그들의 고토가 회복되고 또한 그리로 귀환하게 될 것을 말하는 본문이다. “어디까지나 에스겔서의 관심은 내세가 아니라 철저히 현실에서의 삶과 회복에 있다.”(53쪽) 저자에 따르면 또 다른 구약의 대표적 부활신앙본문으로 알려진 이사야 26장(19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구절은 “기본적으로 절망과 환난 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을 굳게 믿는 확신과 신뢰에 근거하여 구원을 외쳐 선포하는 것이며, 그들을 찬양으로 초대하는 것”(55쪽)이다.

 

제2장은 “순교자의 소망”이란 제하에 부활신앙이 언제 형성되기 시작했는지를 추적한다. 앞선 장에서 저자는 구약자체에는 육체부활과 내세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고 하였다. 이 장에 저자는 부활신앙이 제2성전기에 발전하고 있음을 진술하고 있는데, 이 시기에 산출된 문헌들 중 특별히 외경과 위경, 쿰란문서들을 살핀다. 제2성전기는 바벨론 포로기로부터 신약시대 이전까지를 아우르는 시기로, 특별히 외경과 위경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주전 2세기 중반은 유대 역사 가운데 가장 혹독한 박해와 핍박으로 점철된 시기였다. 나라를 상실한 채로 박해아래 있었던 이 시기에 종교와 신앙은 국가와 사회보다는 가족과 개인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러한 변화, 즉 국가에서 개인으로 관심의 전환은 핍박과 죽음이라는 암울한 현실에서 자연히 개인의 육체 부활에 대한 신앙이 싹트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다. 저자는 이 시기에 산출된 자료들을 자세하게 살피면서 부활에 대한 언급이 있는 부분들을 조목조목 조사한다. 특별히 솔로몬의 지혜서와 마카비 2서, 다니엘서 12장을 들여다본 후에 이런 결론을 내린다. “이 시기에 진정한 유산은 마카비의 승리가 아니라, 순교자들의 부활신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순교자들의 시대는 이 땅에서의 삶을 넘어서 야훼 하나님의 최종적인 재판으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게 만들었고, 이것을 부활신앙으로 표현하게 했다.”(151쪽).

 

제 3장은 구약 본문들(예, 아브라함의 이삭 바침)을 들어 부활신앙의 의미를 설명하고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린다. 구약성경은 좁은 의미에서 부활신앙, 즉 죽음 이후의 육체부활을 믿는 신앙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넓은 의미의 부활신앙, 즉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약속을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굳게 붙잡는 것”(156쪽)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자연스럽게 부활신앙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신정론의 문제와 결합되어 있다고 주장한다(163-186쪽). 세상 안에서의 악인의 번성과 의로운 자들의 고난이라는 상황아래서 부활신앙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부활신앙 역시 죽음이후의 어떤 삶에 대한 기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일의 궁극적 종결자(재판장)가 야훼 하나님이라는 신앙이야 말로 부활신앙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제 4장은 이 책의 종합적 결론부분이다. 저자에 따르면 부활신앙은 신학적 범주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통치)” 밑에 들어가야 하는 하위 개념이다. 그에 따르면 구약에 있어서 부활신앙은 “근본적으로 신정론적 모색이며, 고난과 순교에 직면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운 인도를 발견한 것”이다. 부활신앙을 확신하고 고백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성에 대한 고백이며, 하나님께서 굴곡 많고 모순투성이처럼 보이는 인간 역사에 대해 최후의 재판장으로 오신다는 확신이기도 하다. 즉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믿는 신앙이다. “이 점에서 예수께서 전하신 복음의 핵심은 육체의 부활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로 표현된 부활신앙이야말로 구약을 관통해서 흐르는 핵심이다.”(191쪽)

 

칠십인경 이사야서를 전공한 학자답게 저자는 구약성경 문헌들과 이어지는 중간기문헌들을 중심으로 부활신앙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하나님 나라라는 큰 틀 속에서 읽어내는데 탁월한 혜안을 보여주고 있다. “부활신앙이란 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 속에서 신실하신 하나님과 그 나라의 도래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다”는 저자의 명제적 선언은 이 책의 전편에 도도하게 흐르는 주제음조이다.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예수께서 가르쳐주는 기도문 중 한 문장이 떠올랐다.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옵소서!” 이 책은 고통 하는 세상 가운데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에 대한 믿음을 격려하고 굳세게 해주는 생생한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 배움을 넘어서 울림으로, 울림을 넘어서 행함으로 인도하는 묵직한 지팡이 책이다.

 

류호준 목사(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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