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로마서 묵상(10): "사랑"

2010.01.22 08:41

류호준 조회 수:8011

 [10]

“사랑”


[본문]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로마서 5:6-11)


[요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5:8)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Romans 5:8) 



세기의 위대한 문호들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신 일이 있습니까? 작품 안에는 명령이나 권고나 지시형의 문체가 전혀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렇게 하시오 저렇게 하시오 식의 문구들은 눈을 씻고 보아도 없을 것입니다. 작가는 어느 곳에서도 독자들에게 명령하거나 지시하지 않습니다. 그저 담담하게 때론 격정적으로 자기의 이야기를 말 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독자들은 깊은 감동과 영감을 받습니다. 그 작가의 이야기 속에 기꺼이 들어가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기 때문입니다. 복음도 이와 같습니다. 복음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행하신 일들을 우리에게 담담하게 때론 격정적으로 들려줄 뿐입니다. 전에 들어보지 못했던, 그래서 언제나 새 소식(news)이고, 새 소식이기에 기쁜 소식(good news)입니다. ‘소식’은 전달하는 것이지 강요하거나 명령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모든 사람들이 들어야할 가장 중요한 소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십자가’가 좋은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메시아)에 관한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강하고 확신 있게 세 번에 걸쳐 이렇게 소식을 전합니다.   

   ∙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맑고 정결하고 깨끗한 복음입니다. 가장 순수한 상태의 은혜의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반복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 언급합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였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선언입니다.


복음의 중앙에는 십자가가 우뚝 서 있습니다. 복음의 중심에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하나님과 평화를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과 전쟁 중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 십자가의 복음을 거절하거나 배척할까? 아니 왜 사람들은 십자가의 복음에 대해 몹시 기분이 상하거나 혐오스럽게 생각할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그 잔인한 로마의 형틀을 목에 걸고 다니면서도 말입니다. 물론 멋지게 가공하고 도색하여 가시에 찔리기 좋은 거칠음과 껄끄러움을 제거하기는 하였지만 말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대로, 하나님과의 평화가 십자가에 달려 있다면, 왜 유대인들과 그리스인들은 그 십자가를 배척한단 말인가? 십자가가 하나님과의 평화를 가져온다면, 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거절하는 것일까?


십자가는 인간의 존엄성을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 흉악범으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메시지는 사람들의 도덕적 자존감에 대한 일격(一擊)입니다. “당신들은 도덕적 자존감이 있는 그럴듯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당신들은 범죄자들이요 흉악범들입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흉악범의 얼굴을 쳐다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쳐다보실 때 무엇을 보시고 계시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을 쏟아 부으신 것은 인류가 도덕적 고원 지대에 스스로 도달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하신 것은 사랑을 주면 그만큼 돌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도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당신들 때문이었소!”


기독교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위협은 무신론도 아니고 세속적 인본주의도 아닙니다. 기독교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협은 ‘축소된 기독교’, ‘할인된 기독교’ ‘싸구려 기독교’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자존감의 종교로 전락한 기독교입니다. ‘긍정의 힘’이 무한정 팔려나가는 기독교입니다. 적극적 사고방식을 고취시킴으로 사람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종교 정도로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교양 있고 세련된 현대인들이 액세서리로 가지고 다니는 종교로 변신하였습니다. 거칠고 잔혹하고 우리를 형틀에 박는 십자가 없이, 품위 있게 살 수 있게 하는 고등종교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제거한 기독교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우리가 우리의 알량한 도덕적 자존감을 내려놓진 않는 한, 우리의 가장 절박한 궁핍은 하나님 앞에서의 죄책(罪責)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 그리스도를 우리의 절실한 피난처로 삼지 않는 한, 하나님은 우리를 대항하실 것이며 우리와 싸우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롬 5:8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는 소식입니다. 그분이 먼저 서둘러 우리를 위해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것은 우리가 도덕적으로 살려고 애쓰거나 혹은 ‘칭의’에 관한 올바른 이론과 교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자기의 아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사셨다면, 어찌 그분이 우리를 포기하거나 놓겠습니까? 본전 생각이 나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주신 것은 우리가 그분을 잘 알고 그분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그렇게 하신 것은 “우리가 아직도 죄인들이었을 때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한도 끝도 없는 무한한 사랑입니다.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할 것입니다.”(찬송 304장) 감당치 못할 놀라운 은혜요, 예기치 못한 소식입니다. 복된 소식이며 기쁜 소식이며 좋은 소식입니다. 노예 매매 상인이었던 존 뉴턴(John Newton)을 변화시켜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게 했던 것이 바로 이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였습니다(찬송 305장).


스위스의 저명한 신학자인 칼 바르트가 노년에 미국 방문길에 시카고에 들렸습니다. 수많은 기자들과 학자들과 학생들이 그의 강연을 들으려 구름떼처럼 모였습니다. 질문시간에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세계적인 위대한 신학자이며, 당신이 저술한 방대한 교의학 저서는 천추에 남는 기념비적 성취입니다. 이 모든 것을 축약해서 간략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라고 다소 황당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빙그레 미소를 짓던 노(老) 학자는, 복음의 핵심은 이 찬송가 가사에 담겨있습니다 라고 하더니 유년 주일학교 학생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어로 “예수 사랑하심은”(찬송 563장)입니다. 여러분도 함께 불러보시겠습니까?


        “Jesus loves me, this I know. For the Bible tells me so;

         Little ones to Him belong, They are weak, but He is strong,”

         (예수님이 저를 사랑한다는 것 저는 알아요. 성경이 제게 말해주지요.

          그분에게 속한 작은 우리들, 우리는 약하지만 그분은 아주 힘이 세요.)


        “Jesus loves me, He who died. Heaven's gate to open wide;

         He will wash away my sin, Let His little child come in,”

        (예수님이 저를 사랑하셔서 죽으셨어요. 그래서 하늘 대문이 활짝 열렸어요.

         그가 내 죄를 씻어주실 것이에요. 애들아 어서 들어 오너라 하시네요.)


        “Jesus loves me, loves me still, Tho' I'm very weak and ill;

         From His shining throne on high, Comes to watch me where I lie,”

        (예수님은 저를 사랑하시지요. 내 비록 언약하고 아파도 사랑하시지요.

         저 높은 곳 빛나는 보좌에서 내 누워있는 곳에 오셔서 저를 보살피시네.)

 

        “Jesus loves me! He will stay Close beside me all the way;

         Thou hast bled and died for me, I will henceforth live for Thee,”

        (예수님은 저를 정말 사랑하세요! 언제나 제 곁에 가까이 계실 것이에요.

         주님은 저를 위해 피를 흘리고 죽으셨어요. 이제 주님을 위해 살겠어요.)   

        

        후렴 

         “Yes, Jesus loves me, Yes, Jesus loves me,

          Yes, Jesus loves me, The Bible tells me so.”  

        (그래요, 예수님은 저를 사랑하세요. 정말로 저를 사랑하세요.

         정말로 예수님은 저를 사랑하세요. 성경이 그렇게 말하잖아요!)


 

물론 우리는 십자가에 관해 이런 저런 학문적인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논의하는 ‘속죄론’(atonement theory)에 관한 이론들입니다. 왜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을까? 다른 길은 없었을까? 누구를 위해 진 십자가일까? 죄에 대한 값을 누구에게 지불했다는 말일까? 십자가의 효력은 누구에게 어디까지 미칠까? 등과 같은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럴 필요도 여유도 없습니다. 그저 숨을 고르시고 조용히 침묵하면서 십자가를 쳐다보십시오. 십자가는 비참한 죄인들을 위해 보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영원히 확증하는 증표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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