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큐티를 위한 스가랴서 해설(5)

2009.10.16 00:09

류호준 조회 수:8296

큐티를 위한 스가랴서 해설 (5)


 

[5] 3:1-5

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5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



예언자 스가랴가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당시의 대 제사장 여호수아가 환상 가운데 등장합니다. 여호수아가 천상의 법정에 서있습니다. 마치 죄수처럼 더러운 옷을 입고 말없이 서있습니다. 특별히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천상의 어전에서 천사들 앞에 함께 ‘서있는’ 장면은 마치 제사장이 성전에서 봉사하기 위해 ‘서있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본문에 의하면 ‘비난자’, ‘고발자’, 혹은 ‘대적자‘란 의미를 지닌 사탄 역시 야웨의 법정에 출석하여 여호수아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비난하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비난하고 있는 것일까? 왜 여호수아는 천상의 법정에서 사탄의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일까? 사탄에 의하면 여호수아는 대제사장 직분을 수행하기에 적합하지 못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의 도전은 여호수아라는 한 개인에 대한 비난이기 보다는 여호수아를 대제사장직에 임명한 ’임명권자‘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사탄이 공격하고 있는 것은 여호수아 개인이 아니라 그가 맡고 있는 대제사장 직분 자체인 것이며 그 임명 행위 뒤에 있는 임명권자에 대한 공격인 것입니다.


사탄은 여호수아가 대제사장으로서 부적격하다는 증거로 그가 입고 있는 더럽고 불결한 대제사장 의복을 지적합니다. 증거물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탁월한 고소인답게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옷’을 벗기려 하는 중이었습니다. 요즈음 말로 그를 면직(免職)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로부터 대제사장을 빼앗아 가버린다면, 하나님 백성의 삶으로부터 대제사장 제도를 없애버린다면, 이스라엘에게 희망과 미래가 있겠는가? 참으로 위험천만한 순간이요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천상의 어전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의 대답은 사탄을 향한 심한 책망이었습니다. “너는 여호수아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편을 들어 그를 변호하시고 옹호하시면서 그 근거로 자신이 예루살렘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시는 점입니다(2절). 예루살렘을 선택하신 것과 여호수아를 대제사장으로 삼겠다는 것을 동일한 차원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선택하였다면, 그런 선택은 예루살렘으로 하여금 만국의 제사장 역할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야웨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예루살렘을 선택하시고, 다윗을 선택하시고, 제사장들을 선택하신 것은 야웨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무조건적 선택을 보여주는 ‘다윗과 맺은 언약’을 기억나게 합니다. 특별히 야웨 성전이 있는 곳 예루살렘을 선택하였다는 것은 곧 대제사장 직분 역시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보존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사탄은 여호수아로 대표되는 예루살렘을 함부로 비난하거나 고소할 자격이 없다고 하나님께서 엄히 꾸짖습니다. 칼빈은 이 광경을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해설합니다. “이 장면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핵심적 교훈은 이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때때로 사탄이 제사장직에 관해서 교회를 공격하도록 내버려두신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자신의 교회를 보호하시는 신실한 후견인이시며 사탄의 행적을 점검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사탄은 자신의 의도를 집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걸음 더나가 교회에게는 많은 시련들과 싸움들이 있을 것이지만 교회는 전쟁의 기간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그것들을 인내하면서 견디어야 한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그로 대표되는 예루살렘을 ‘불에서 꺼낸 타다 남은 나무토막’이라고 부릅니다. 여호수아의 개인적 삶을 살펴보아도 그의 삶은 불 가운데서 끄집어낸 나무토막이었습니다. 그의 조부이며 대제사장이었던 스라야는 바벨론의 장군 느부사라단에 의해 체포되어 바벨론으로 잡혀갔으며 립나에서 느부갓네살에 의해 처형되었습니다. 그의 부친 여호사닥 역시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여호수아는 바벨론에서 출생했습니다. 바로 그런 그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의 인생은 ‘불에서 꺼낸 타다 남은 나무토막’과 같았습니다. 이 문구는 여호수아를 포함한 많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이라 불리는 불구덩이에서 건짐을 받고 고국으로 귀환한 사건을 가리키는 은유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더러운 옷을 입은 여호수아를 가리켜 마치 불에서 꺼낸 타다 남은 나무 조각이라고 부르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본문이 분명히 더러운 옷과 불 속에 집어넣어 태움을 받는 나무를 연결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러운 옷을 벗기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일은 종종 새로운 삶, 새로운 사명,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는 상징적 행위입니다. 대제사장으로서 여호수아는 그의 백성들을 대표하여 그들의 더러운 죄들을 짊어졌지만, 그래서 억울하게 사탄으로부터 비난받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새 옷을 입혀주심으로써 그 백성들이 죄가 사함을 받았을 뿐 아니라 새로운 사명이 주어지고 있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한편, 불 속에서 태움을 받는 나무이지만 재가 되지 아니하고 타다 남은 나무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추방되어 이국에서 수형 생활을 하던 그들을 하나님께서 끌어내어 다시 세워 주시지 않았더라면 여호수아와 그의 백성들은 모두 불에 타버려 재가 되어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하마터면 재가 되어 흔적도 남지 않았을 마른 막대기 조각 같은 우리, 하마터면 미아(迷兒)가 되어 하늘 아래 어디선가 울며 방황할 수밖에 없는 우리, 바로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은혜라는 놀라운 끈으로 하나로 묶으신 것입니다. 어디 그뿐인가? 생명력을 잃은 불타다 남은 나무토막에서부터 새로운 싹과 순(筍)이 나서 큰 나무가 되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나와 그 밑에서 안식과 쉼을 얻게 될 것이라는 환상은 역시 하나님의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유형생활을 한 것은 불에 의한 심판이었다고 말하면서도, 그 불은 죽이기 위한 ‘소멸의 불’이 아니라 더러운 옷을 벗기듯이 그들의 더러운 오점들을 소멸하여 새롭게 태어나도록 하는 ‘정련의 불’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죽이기 위한 소멸의 불이 아니라, 새롭고 정결하게 하기 위한 ‘정련의 불’, 혹은 새롭게 거듭나게 하기 위한 ‘연단의 불’인 것입니다. 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여! 오, 놀라운 하나님의 자비여! 죄 때문에 치러야 하는 고난마저도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성결하게 만드는 순기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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