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향기로운 삶의 일급 비결”
                                                                       빌 4:1-20

                                                                     류호준 목사

                                                                     [성경본문]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설교전문]

에픽테토스(Epictetus, A.D. 55?-135?). 이 이름이 귀에 익숙합니까? 그렇지 않다면 내가 대신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에픽테토스는 그리스의 스토아학파 철학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상아탑에서 연구하는 철학자가 아니라 진짜 철학자입니다. 철인(哲人)이라 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참된 철학입니까?
   ․ 참된 철학은 아이가 태어나듯이 태어납니다.
   ․ 아이가 어머니의 진통과 비명소리 가운데 태어나듯이 참된 철학도 그렇게 태어납니다.
   ․ 참된 철학은 삶의 의미에 대해 고뇌하는 가운데 태어납니다.

그러나 에픽테토스는 그가 그렇게도 추구하고 찾기를 바랐던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되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실망으로 가득한 말이었습니다.

   · 병들었어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내게 보여주시오.
   · 위험에 처해 있으면서도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내게 보여주시오.
   · 추방당해 이역만리 타국에 살면서도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내게 소개시켜주시오
   · 모든 일이 안되고 어려운데도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내게 소개시켜주시오.
   · 그러나 당신은 그런 사람을 내게 보여줄 수 없을 것이오.
   · 오, 신이시여, 이러한 은혜를 이 늙은이에게 허락해 주시오.
   · 내가 결코 보지 못했던 이런 기적을 내게 보여주시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이 사람이 사도 바울을 만났더라면 그 소원을 풀었을 터인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에픽테토스가 여덟 살인가 아홉 살 되었을 때 바울은 죽었습니다. 에픽테토스가 사도 바울을 만났었더라면 그가 꿈에도 그리던 사람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도 보기를 소원했던 그 기적을 보았을 것입니다.

아니면 에픽테토스가 다음과 같은 바울의 말을 읽었었더라면,
   · 나는 궁핍에 처해있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 나는 풍부가운데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 나는 비천하게 살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줄도 압니다.
   ․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 나는 내게 힘을 주시는 그분을 통하여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인상적이고 담대한 말씀입니까? 참으로 멋지게 인생을 사는 분의 고백처럼 들립니다. 물론 멋지고 인상적인 말씀이긴 하지만 이 말씀을 하고 있는 앞뒤 문맥을 고려해본다면 아주 이상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투옥된 상태였습니다. 그때 빌립보에 있었던 크리스천들이 그에게 자그만 선물을 보냈습니다. 선물의 내용은 알려진 바 없습니다. 좌우간 빌 4장에서 바울은 그들이 보낸 선물을 받았다는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하게 읽어보면 그가 한번도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매우 이상하지 않습니까? 정말 놀랄만한 일이 아닙니까? 선물을 받았으면 감사하다고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바울을 오히려 자신을 선물과 거리를 둡니다. 마치 선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말합니다. 아주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자기를 대학생이라고 한 번 가정해보십시오. 그런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계신 부모님께서 일 년치 등록금과 기숙사비용으로 일천만원을 송금해 주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대학생인 여러분이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에게:
"송금해주신 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돈은 사실 내게 그렇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돈이 있든 없든 나는 두 가지 상태를 이미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떻든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남의 하숙방에 얹혀 자든지 아니면 기숙사에서 자든지, 식당에서 제대로 된 밥을 먹든지 아니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든지 나는 자족하면서 사는 삶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이런 편지를 받았다면 기분이 이상야릇할 것입니다.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서, 뭔가 이상하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 것입니다. 빌립보에 있는 교인들에게 보낸 바울의 답신 역시 그러했습니다.

사실입니다. 물론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임으로써 너무 심하게 들리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나의 고난 속에 함께 참여 한다니 잘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절에서 바울은 다시 독자의 기분을 좀 상하게 하는 말을 계속합니다. “나는 선물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내가 바란 것은 여러분에게 이롭게 될 풍성한 열매를 구하는 것입니다.” 영어성경(NIV)은 다음과 같이 독특하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번역하자면 “내가 바란 것은 선물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바란 것은 여러분의 계좌에 입금해 드릴 것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but I am looking for what may be credited to your account.)

좌우간 선물을 받고 대답한 말치고는 정말로 이상한 대답입니다. 추측하건데, 바울의 편지가 빌립보 크리스천들에게 낭독되었을 때, 그들은 기분이 좀 상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힘이 빠졌겠습니까? 그들 중 한 사람이었던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에서 로마까지 보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런 친절과 배려에 대해 돌아온 것이 무엇입니까? 좀 실망스러운, 마음이 내키지 않은 시큰둥한 반응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바울이 빌립보 크리스천들에게 말씀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내게 보내온 선물은 나를 향한 여러분들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소포 겉표지에 “풍성한 사랑을 담아 여기 있는 모두가 바울 사도님에게,”라고 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내게 보낸 선물은 단순히 내 개인에게 준 선물이 아닙니다. 그 선물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드려진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희생제물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바울이 그의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이것입니다.
   · 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는 자유인입니다. 나는 자유롭습니다.
   · 나는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있으며, 어떠한 환경에서도 감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 가난을 이겨 낼 줄도 알고, 부유함을 누릴 줄도 압니다.
   ․ 배부를 때나 배고플 때나, 넉넉할 때나 궁핍할 때나, 어떤 형편에 처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 나는 여러분들이 주신 선물을 갖고 살 수도 있지만 그것 없이도 살 수 있습니다.
   · 내가 무엇을 가졌느냐, 내가 무엇을 갖지 못했느냐에 따라 내가 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 나는 모든 환경에서 그분만으로도 내게는 너무도 충분하신 분, 바로 그리스도에 의해 나라는 사람이 규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곧 이어 덧붙이기를, 나는 항상 그런 식으로 내 자신을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런 방식으로 나의 삶을 규정하게 된 것은 “배움”을 통해서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 나는 그런 방식으로 나를 규정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 나는 어떤 환경에서든지 만족하고 자족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 나는 내 육체에 가시를 갖고 사는 것을 배웠습니다.
   · 나를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 사탄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메신저를 내 육체 속에 갖고 사는 것을 배웠습니다.
   · 나는 그것 때문에 갈등하고 괴로워했고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 세 번이나 하나님께 그 가시를 빼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 그런데 나는 이 가시가 내가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는 가시였다는 것을 마침내 배우게 되었습니다.
   · 가시와 함께 사는 것이 가시 없이 사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만할 때 우리는 은혜가 무엇인지 잊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주신 응답은 이것이었습니다.
   ․ 내 은혜가 너에게 족하다,
   ․ 내 은혜가 너에게 충분하고 넉넉하다.  
   ․ 내 능력이 너의 약함 중에서 온전하여지기 때문이다.

- 나는 내 육체안의 가시와 함께 사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 나는 그것에 의해 통제받지 않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 나는 인생의 일체 비결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 나는 내 삶이 외적인 환경이나 처지에 의해 규정되지 않고, 모든 환경과 처지에서 충분하시고 넉넉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향기 나는 삶의 일급 비결입니다. 인생의 일급비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일급비밀은 내적인 안전성, 균형성의 힘입니다. 삶의 양 날개가 수평을 이루어 똑바로 행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삶의 일급비밀입니다. 그리고 내면적 안정성의 힘은 다름 아닌 나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는 그리스도라고 바울은 13절에서 쓰고 있습니다.

환경과 처지에 따라 삶의 기복(起伏, ups & downs)이 심하지 않는 이유는, 처지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오르락내리락 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말씀합니다.  

그의 편지들을 통해서 바울은 이점을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어떤 논의든지, 어떤 토론이었든지 상관없이 바울은 항상 이 점으로 돌아옵니다.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

물론 바울은 밖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말씀합니다. 즉 하늘 위에 높이 들려 위엄가운데 계신 그리스도 말입니다. 그러나 그 점에 관해서는 그렇게 많이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내 안에 게신 그리스도”에 대해 바울은 자주 말씀합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기독교인의 삶이 무엇인지를 잘 대변하는 문구입니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

   · 이 말을 할 때, 내가 온전하다거나 완전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 이 말을 할 때, 그리스도에 대한 직접적(일차적) 지식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직접 그분을 만나고 경험하여서 그분을 안다는 것입니다.
   · 이 말을 할 때,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알고, 그의 고난도 함께 나눈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
- 내 삶을 안전하게 만드는 힘,
- 내 삶의 균형을 잃지 않게 하는 힘,
- 기복이 없게 하는 힘,
- 환경과 처지의 파고(波高)에도 불구하고 삶을 안정되게 하는 stabilizing power 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빌립보의 크리스천들이 로마에 있는 그에게 선물을 보냈을 때에 그 선물에 대해 보인 반응이었습니다. 나는 나를 향한 당신들의 관심과 배려를 고맙게 생각합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합니다. 적어도 이제 여러분은 나를 향한 여러분들의 관심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정말로 여러분은 나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내게 보일 수 있는 기회는 없었습니다(10절).

그러나 바울은 덧붙이기를,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내가 궁핍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들에 관계없이 지금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며 사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 나는 여러분이 주신 선물을 갖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선물 없이도 살 수 있습니다.
   · 나는 가난하게 사는 법도 잘 압니다. 풍족하게 사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게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의 삶은 물질의 부요와 궁핍에 의해 규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나는 모든 환경과 처지에서 나에게 충분하시고 넉넉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18절에서 덧붙이기를, “나는 충분하게 공급되었습니다. 자 이제 나는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여러분이 나에게 보낸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것들은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제물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한 장면이 나옵니다. 드미트리(Dmitri)가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게 되는 형벌을 선고받는 재판정에서의 광경입니다.

드미트리는 너무도 지치고 탈진하여서 그냥 긴 의자에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깨어보니 그의 머리에 베개가 받혀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그의 머리에 베개를 받혀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가 그랬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운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이러한 친절한 행위는 이런 방식이나 저런 방식으로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행동은 드미트리에게 깊은 감동과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가 말합니다. “나는 감옥에 갈 것이다. 거기서 나는 하나님의 이름의 그곳에서도 살아있도록 하겠다.” 왜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습니까? 그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머리에 베개를 밀어 넣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이 세상에서 일하고 계시다는 보증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크리스천들의 선물을 다소 이런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받은 선물이 그의 삶에 이런 방면으로나 저런 방면으로나 매우 극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것은 아름다운 그 무엇입니다. 향기 나는 예물이며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제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물입니다.

20세기 초기 사회개혁이 한창이던 일본사회에서 일본 역사상 가장 창조적인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카가와(Kagawa)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고베 시의 초기 노동 운동을 하면서 13일간 투옥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무명의 사람이 카가와가 수감된 감옥 창문 곁에 나팔꽃을 심어 놓습니다. 나팔꽃이 자라면서 고독한 이 수인(囚人)의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것 역시 향기로운 예물이며,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물입니다.

나는 이것을 우리 무지개 교회에 적용해 생각하였습니다.
   · 향기 나는 예물들을 여러분들이 매주일 교회로 가져옵니다.
   · 셀 수 없는 많은 수고와 헌신들이 사방에 드려지고 있습니다.
   · 보상을 바라지도 인정을 바라지도 않은 채로 묵묵하게 향기 나는 예물들이 하나님께로 드려지는 것입니다.

- 목장들, 목원들, 각종 위원회들에서 일하시는 여러분들.
- 장로님들과 집사님들.
- 안내위원들과 주일학교 선생님들.
- 주일예배를 토요일에 와서 의자를 정돈하고, 꽃꽂이를 하는 사람들.
- 주일 점심을 즐거운 만찬이 되도록 수고를 아끼지 않는 여 집사님들.
- 교회당에 널려져 있는 주보들을 수거하시는 분들,
- 일회용 커피 잔들과 휴지들을 주워 담는 분들.
- 매주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지 않고 희생적으로 일하시는 모든 분들.
- 일이 되어가게 하기 위해 수고하시는 분들.
- 어떤 행사를 하기 위해 먼저 오셔서 이것저것에 진열하고 배열하고
   장식하고 준비하는 분들.
- 굽은 것을 똑바로 펴는 분들.

․ 하늘나라는 열 명의 탤런트가 있는 사람들의 것이 아닙니다.
․ 천국은 즐겁게 자신들의 탤런트를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는 신실하고 희생적인 사람들의 것입니다.
․ 그들이야말로 향기가 나는 예물들이요,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기뻐하실만한 제물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에 너무도 감동을 받았는지 예배 후에 목사님에게 나아와 말하기를, “목사님, 이제 제가 전적으로 헌신하겠습니다. 크고 거룩한 일을 시켜주십시오. 그러면 하겠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먼저 동물원에 가서 코끼리를 물로 닦으십시오.”

교회는 코끼리를 닦을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에브라디도와 같은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 교회가 에바브로디도를 기억하는 것은 그가 위대하고 큰 일, 거룩한 일을 해서가 아닙니다.
- 교회가 2천년이 넘도록 에바브로디도를 기억하는 이유는,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 전달해야할 선물을 가지고 가는
   자그마한 임무였습니다.
- 그리고 그는 그 자그마한 일을 성실하게 신실하게 해내었기 때문입니다.  
- 물론 그 일은 로마의 일간신문에 실리지는 않았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 하나님은 에바브로디도가 보잘 것 없는 작은 일에 충실하고 장차 많은 일들을 잘 다스려 나갈 총지배인과 같은
   인물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이런 일에 대해 생각을 해보자면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신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죽어 하나님의 면전에 이르게 될 때 이 세상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들을 많이 해내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잊은 지 오래된 자그마한 일들 그러나 신실하게 해내었던 일들이 하나님의 큰 관심의 대상일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즐겁게 할 것입니다. 아멘.

                                            2007년 7월 1일 주일 설교(무지개 장로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류호준 교수의 무지개성서교실이 http://www.rbc2020.kr 로 리뉴얼하여 이전합니다. 류호준 2020.08.24 4397
공지 "무재개 성서교실은 여러분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5] 류호준 2018.03.29 2928
629 이사야서 해설서 전반부(제목과 요절들) file 류호준 2015.08.05 8451
628 디나의 불행 (창세기 큐티) 류호준 2008.05.14 8440
627 신앙 에세이: "가룟 유다의 불행과 사도직" 류호준 2009.05.07 8408
626 로마서 묵상(8):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 류호준 2010.01.19 8406
625 예언자 아모스의 "종교제의 비판" 류호준 2009.11.13 8406
624 신앙교육(13): "정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길은?" 류호준 2009.04.18 8398
623 "이사야서를 끝내면서" (이사야서 큐티 106) 류호준 2011.11.01 8386
622 형제가 화해하다 (창세기 큐티) 류호준 2008.05.14 8377
621 라반과 야곱이 언약을 체결하다 (창세기 큐티) 류호준 2008.05.14 8361
» 설교: “향기로운 삶의 일급 비결” 류호준 2007.07.01 8357
619 신앙교육(28):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할까?" 류호준 2009.08.30 8335
618 일상에서 드러나는 경건 (창세기 큐티) 류호준 2008.05.13 8332
617 한 가정의 불행의 시작 (창세기 큐티) 류호준 2008.05.13 8303
616 “민주적 절차” 유감(遺憾) [3] file 류호준 2014.06.24 8302
615 신앙교육(38): "유일한 구원자" 류호준 2009.11.14 8302
614 큐티를 위한 스가랴서 해설(5) 류호준 2009.10.16 8296
613 로마서 묵상 (15): “종교와 복음” 류호준 2010.01.28 8287
612 신앙교육(16): "참된 교회의 표지들" 류호준 2009.05.23 8287
611 에세이: "CEV본문에 의한 스터디 바이블 LB 평가" 류호준 2009.07.03 8281
610 (14)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창 8:1-22) 류호준 2007.10.20 8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