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


[본문]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요절]


아브라함이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로마서 4:11)


And Abraham received circumcision as a sign, a seal of the righteousness that he had by faith while he was still uncircumcised. So then, he is the father of all who believe but have not been circumcised… (Romans 4:11) 

 


 

바울이 지금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아하, 그렇구나!” 하는 정도이겠지만 바울의 말에 엄청난 큰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었습니다. 혁명적인 발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들의 독점적인 조상인 아브라함이 더 이상 그들만의 조상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의 조상, 특별히 유대인 됨의 증표인 할례의식을 거치지 않은 이방인들에게도 조상이 된다는 말은 상상할 수 없는 충격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가 할례를 받았을 때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할례를 받기 전에 그는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10절) 하나님께서 그에게 “너는 지금부터 내 앞에서 ‘괜찮은 사람’이라고 쳐 줄게!”(전문적 용어로 ‘칭의’)라고 말씀하실 때는 마치 아브라함이 이방인이나 되는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을 이방인처럼 취급하시면서, “너는 이제부터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야. 나의 약속 바깥에 살던 이방인들 말이다. 자, 이제부터 나는 너를 이방인처럼 취급하지 않고, 내 백성 내 자녀처럼 취급 할 테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믿겨지지 않는 엄청난 약속을 하십니다.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아브라함의 자손을 창대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이 ‘기쁜 소식’(복음)에 대해 그저 고맙고 어쩔 줄 몰라 그분의 약속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자, 너는 내 앞에서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 믿음을 의로 여겼다”(창 15:6)라고 하신 뜻입니다. 보다시피 ‘칭의(稱義)의 선언’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아브라함 마음에 믿음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믿음은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운 선물입니다.


어쨌든 아브라함을 대하실 때 하나님은 그를 마치 할례를 받지 않았던 이방인이나 되는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도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논조는, 아브라함이 이방인처럼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찾아오셔서 그에게 ‘위대한 약속’을 주셨고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자,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먼저 은혜로우신 “의롭다 하심‘(창 15:6)이 있은 후에 비로소 할례의식(창 17:24)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앞선 강의에서 사용한 은행 계좌이체 은유를 다시 빌리자면, 먼저 넉넉하신 하나님께서 밑바닥이 난 우리의 계좌에 엄청난 금액을 이체하시자, 믿겨지지 않는 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대해 우리는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으로 반응을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 감사하는 믿음을 보시고 “이제 보니 너는 괜찮은 사람이구나! 너는 내 앞에서 괜찮은 사람으로 쳐줄게!”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얼마 후에 하나님께서 계약서 한 장을 갖고 다시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계약서의 내용은 이미 앞에서 일어난 일들을 문서로 작성한 것입니다. 문서 맨 밑줄에는 ‘서명자’ 항목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곳에 도장이나 친필 사인을 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 빨간 인주에 깊숙이 묻은 도장을 꾹 눌러 찍었습니다. 이제 모든 법적인 절차가 끝난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그 계약서를 보면서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분이 베푸신 은혜에 합당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 계약서 안에 있는 내용대로, 예를 들어 하나님의 자녀처럼 사는 길들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할례는 바로 이 계약서에 찍는 인감도장이며 개인적 사인(sign)입니다. 구약에 할례가 있다면 신약에는 세례가 있습니다. 모두 심각한 헌신의 순간입니다.


아브라함을 이런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면, 그는 단순히 인종적인 유대인들에게만 조상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조상이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라 할 때는 한정구가 따라 붙습니다. 그냥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 “‘믿는’ 모든 사람”입니다. 유대인들 가운데서 믿는 모든 사람들, 이방인들 가운데서 믿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이 믿었던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믿으면 그들 모두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롭게 되는 것은 할례가 아니라 믿음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해, 유대인들의 경우 그들이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었던 것처럼 그렇게 믿는 유대인들에게만 아브라함은 그들의 조상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브라함은 할례 받은 자들의 조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믿는 자(信者)들의 조상입니다.


바울이 이런 말씀은 하는 것은 그가 이방인 사역을 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렇게 말하면 이방인들 사역이 수월해지거나 그들의 호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입니다”라는 말씀 속에는 복음의 위대한 진수가 들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자기의 약속을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지, 그 구원의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은 할례와 같은 의식 준수가 아니라 오직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여기시는 기준은 유대인들의 유산이나 전통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이 얼마나 유대인들에게 충격적이었겠습니까?


이 말씀은 오늘 날에도 많은 한국적 크리스천들에게 크나큰 도전과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랍니다. ‘종교적 달리기’에 몰두하는 크리스천들에게, ‘마르다적 사고’에 몰입한 크리스천들에게, 하늘로 올라가는 사닥다리 타기에 몰입하는 크리스천들에게, 종교개혁 이전의 시기로 돌아가고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오늘의 성경은 큰 소리로 외칩니다. “그런 일에서 벗어나시오. 만일 그런 식의 신앙을 계속해서 갖고 있다면 당신들은 바울의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 비켜서 있는 것이오!”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은 믿음으로 의로워졌습니다. 오직 믿는 신자들만이 아브라함을 그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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