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큐티를 위한 스가랴서 해설 (20)

2009.11.06 13:54

류호준 조회 수:7362

큐티를 위한 스가랴서 해설 (20)



[13:1~9]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귀신을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 “사람이 아직도 예언할 것 같으면 그 낳은 부모가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말을 하니 살지 못하리라’ 하고 낳은 부모가 그가 예언할 때에 칼로 그를 찌르리라.”

“그 날에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에 그 환상을 각기 부끄러워할 것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털옷도 입지 아니할 것이며 말하기를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내가 어려서부터 사람의 종이 되었노라’ 할 것이요.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있는 상처는 어찌 됨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신자들이 가슴을 치며 진정성 있는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선물이 있습니다. ‘용서’라는 것입니다. 죄의 용서를 받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을까요? “용서함을 받았다!”는 선언과 함께 나의 더러운 과거가 깨끗하게 씻김을 받았을 때의 감격과 기쁨을 어디에 비견하면 좋을까요? 샘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목마른 자에게 시원함을 주고 더러운 자의 손과 발을 닦아 정결함을 주는 샘 말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용서와 정결의 샘은 오래전부터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흐르고 있습니다. 아마 교회가 하는 모든 일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은혜로우신 용서하심과 정결케 하심을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학적으로 말해서, 하나님께서 죄로 더렵혀진 우리를 향하여 ‘괜찮아!’하시는 ‘칭의’(의롭다 하심)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 우리를 깨끗하게 씻겨 말쑥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가시는 ‘성화’의 과정이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며 이것을 선포하는 곳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샘물을 막아 버린 자들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었습니다. 영생수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분을 버린 것이었습니다(참조, 렘 2:13). 그리고 그 대신 그들은 허탄하고 헛된 것들, 즉 우상을 만들어 섬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타락은 마침내 거짓 종교의 창궐로 이어졌습니다. 거짓 영들이 온 땅을 두루 다니면서 사람들을 미혹하게 하였습니다.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참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말도 못하는 우상들을 섬기게 한 것입니다. 이런 일들에 앞장을 선 종교인들이 거짓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대중의 심리 상태를 잘 파악하여, 청중들의 취향에 맞추어 진리를 왜곡시켰습니다. 그들은 종교를 고객들의 입맛에 맞게 잘 포장하여 무식한 사람들에게 비싼 값에 팔고 다니는 떠돌이 약장수와 같습니다. 요즈음 말로 그들은 ‘소비자가 이끄는 교회’(consumer driven church)를 만들어 간 것입니다. 그들은 주로 ‘긍정의 힘’과 같은 자기 확신 종교의 물건들을 설득력 있게 팔았던 사람들입니다. 물론 그런 일을 통해 얻어지는 수입과 이익을 은밀한 곳에서 기뻐하고 즐겼던 자들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거짓 선지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이 버젓하게 일을 하고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상품을 좋아하는 고객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왜 분별력이 없었을까요? ‘소비자가 이끄는 교회’(Consumer driven church)인지 아니면 ‘그리스도가 이끄는 교회’(Christ driven church) 인지를 어떻게 구별할 수 없었을까요? 일반 신자들이 무지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無知(무지)) 때문입니다. 여기서 무지란 성경에 대한 많은 지식이나 정보를 알고 있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덮어놓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등과 같은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마음과 손발로 대답하고 사는 것이 신앙입니다.

다시금 다짐하시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거짓 목자들을 심판할 것이며 덮어놓고 그들을 따른 양떼 역시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심판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남은 자들을 두어 그들을 금과 은처럼 심판의 불로 연단하고 정련하여 정품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시겠다고 하십니다. 짝퉁 같은 우리들을 진품으로, 정품으로, 명품으로 만드시기 위해 불 속에 집어넣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명품이 될 수만 있다면 고난 중에서라도 하나님께 고마워하고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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