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유대교를 거울삼아 한국 개신교를 들여다본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서로 다른 종교입니다. 같은 뿌리라고 말함은 같은 경전(구약성경, 히브리 성경)을 공유하기 때문이고, 다른 종교라고 말함은 믿음의 대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삼위일체 하나님, 유일신 야웨 하나님). 두 종교가 역사적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일견(一見) 함으로써 오늘날 한국기독교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유대교는 예식, 전통, 성전, 토라, 회당 등으로 연상되는 종교입니다. 한편 지금의 한국 개신교는 슬프게도 교회당, 교단, 총회, 노회, 당회, 목사 등으로 연상되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변모했지만, 유대교와 개신교는 자기들이 가장 중요시하던 핵심 상징들이 있었습니다. 유대교의 상징체계는 성전과 제사장이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토라와 랍비중심의 상징체계로 변모했습니다. 개신교의 상징체계는 무엇일까요? 분명 성경과 설교자가 아닐까요? 그러나 성경과 설교자 중심의 개신교는 점차 교회와 목사중심의 제도적 종교로 변모해왔습니다. 두 종교 모두 엄청난 역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 개신교는 구약의 유대교(성전과 제사장 중심)처럼 교회와 목사중심의 제도화된 종교로 퇴화하고 있으며, 주후 1세기 이후의 랍비 유대교는 놀랍게도 종교개혁시대의 개신교(성경과 설교자 중심)처럼 토라와 랍비중심의 종교로 진화했다는 사실입니다!

 

아래는 유대교가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역사적으로 거칠게 살핀 글입니다. 천천히 읽어보십시오.

 

구약 이스라엘 역사에 주전 587년은 신기원(新紀元)의 어두운 시작이다. 이스라엘인들의 유일한 신학적 정체성이라고 믿었던 예루살렘 성읍과 예루살렘 성전(1 성전)이 파괴된 해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알았던 세계가 무너져 내린 해였다. 다윗 왕조의 몰락과 함께 찾아온 예루살렘 멸망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유배의 길로 이어졌다. 기한이 차 바벨론 유수에서 돌아온 포로귀환 공동체는 율법(토라, Torah)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하고 다시 성전을 재건한다(둘째 성전). 그러나 성전에 관한 한, 몇 세기 후인 주 후 70년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 남기지 않은 채로 역사의 지평에서 사라진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2 성전 기간(516 BCE ~ 70 CE)에 형성된 유대교는 세 가지 큰 위기를 겪으면서 변모해갔다. 첫째 위기는, 주전 587년에 있었던 유대왕국의 멸망이었다. 독립을 상실하고, 다윗 왕조와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을 잃어버린다. 이 시기의 유대교는 심각한 신학적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하나님에 관한 근본적 질문이 나오게 된다. 도대체 하나님이라는 분은 누구인가? 그분의 능력은 어디까지인가? 그분은 정말로 유다 백성에게 선하신가? 게다가 이방 나라에 사로잡혀 감으로써 그들은 다른 인종, 다른 종교, 다른 문화와 마주치게 된다. 인종적, 문화적, 종교 의례적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더욱 암울한 것은, 이 기간 후기에 그들에겐 이전에 가졌던 탁월한 지도자나 예언자들이 없었다. 2 성전 기간(516 BCE ~ 70 CE)에 형성된 유대교가 겪게 된 두 번째 위기는 헬레니즘(Hellenism)의 강력한 영향력에 직면하게 된 경우다. 헬레니즘과 유대교 사이의 갈등은 마침내 주전 167년의 마카비 봉기(Maccabean Revolt)로 절정을 이루게 되는데, 그 사이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헬라적 유대교(Hellenistic Judaism)는 주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번창하였다. 세 번째 위기는 주전 63년에 로마제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였다. 이때 로마제국의 원로원은 헤롯이란 사람을 세워 유대의 왕으로 임명하게 된다. 그가 헤롯 대제(73-4 BCE).

 

2 성전기는 총 585년을 지속하다가 주후 70년에 막을 내린다(516 BCE ~ 70CE). 그 후 초기 랍비 유대교(바리새파 유대교)는 여러 이유로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간절히 소원했음에도 이루지 못한다. 그들에게 남은 유산은 토라(Torah)가 전부였다. 이렇게 하여 유대교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밖에 없게 된다. 즉 토라는 것이 랍비 유대교의 거의 유일한 초점이 된다. 이때의 상황을 프레더릭 J. 머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원후 70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바리새인, 서기관 등 일군의 유대인들이 야브네(얌니아)에 모여 성전과 공식기구가 없어진 유대인 사회를 재건할 방안을 의논하게 된다. 그들은 유대인의 삶의 중심에 토라가 있어야 함을 확인했으며 그 의미를 밝히는 방식으로 바리새인들의 견해와 해석 원리를 표준으로 채택했다. 과거에는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는 호칭이었던 랍비가 이제는 토라 해석의 권위자라는 의미를 담게 되었다. 토라 연구는 이제 신앙을 표현하는 가장 숭고한 방법으로 격상되었다.”(초기유대교와 예수운동409-410)

 

예루살렘 성전이 없어진 이유로 초기 랍비 유대교에서 제사장과 제사 제도는 더는 중요성을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제사장의 역할을 랍비가 넘겨받게 되었고, 성전예식의 중요성은 토라(말씀)의 중요성으로 대체 되었다. 이런 전통은 지난 2천 년을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결론, 유대교는 오랜 역사 내내 성전중심의 종교로 지속해 왔다. 제사장, 제사제도, 희생 제사는 유대교의 근간이었기 때문에, 성전과 제사장과 제사 제도를 떠나서는 유대교를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주후 1세기 이후 ”(토라)과 책의 권위 있는 해석자인 선생”(랍비)이 랍비 유대교의 중심이 되었다.

 

이상과 같이 유대교 역사를 일별(一瞥)해 보았습니다. 한편 개신교는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만인 제사장을 주창하면서 당시 교황을 중심으로 한 제도적 교회의 종교적 권력에 저항했습니다. 유대교의 상징체계였던 성전과 제사장을 로마가톨릭이 그대로 사용하여 온 것에 저항하여 종교개혁자들은 기독교에 있어서 성경과 설교자의 중심성과 모든 사람이 직접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다는 만인 제사장 이론을 전개하였습니다. 흥미롭게도 신약성경에서 만인 제사장원리(universal priesthood)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성경이 히브리서입니다!(특히, 7:1-10:18). 즉 예수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이 되어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가르친 성경입니다. 특히 구약 레위기의 대속죄일”(욤 키푸르) 본문(16)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적용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의 중보자이심을 밝혀주었습니다. 고로 매우 유대적 색채가 짙은 히브리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만인 제사장 원리”(priesthood of all believers)를 적극적으로 설파한 성경입니다.(류호준,히브리서: 우리와 같은 그분이 있기에222-278) 신약의 그리스도인은 유대교에서 말했던 성전과 제사장프레임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 프레임을 강력한 종교제도화 하여 공고하게 만든 중세 천년의 로마가톨릭(CE 313~1517)은 여러모로 책임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의 공헌은 바로 이러한 성전·제사장프레임을 깨고 말씀·설교자의 상징체계와 더는 성전·제사장프레임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만민 제사장이론을 주장한 데 있었습니다.

 

최근 제임스 던은신약이 말하는 성경에서 이 점을 매우 강력한 필치로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기독교는 애초 출발할 때만 해도 예수가 설교하시고 삶으로 구현하셨던 말씀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제사장과 희생 제사는 결코 그 중심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2세기에 들어와 기독교는 사제(제사장, priest)와 제사에 초점을 맞춘 종교 개념과 관습으로 되돌아갔다. 실제로 주의 만찬(Lord’s Supper)은 함께 식사를 나누는 것에서 제사장이 올리는 희생 제사를 재현하는 행위로 바뀌어버렸다. 유대교에서는 제사장이 주관하는 제의(cult)가 사라지고 말씀 강설이 그 자리를 차지했지만, 기독교에서는 말씀이, 되살아난 사제의 제의보다 사실상 아래에 있게 되었다. (240)

 

제임스 던의 다음과 같은 마지막 논평이 오늘따라 예배에 목숨 걸겠다!”라는 일부 군중들의 함성과 뒤엉켜 불협화음을 내는 것처럼 내 귀에 들립니다.

 

히브리서 저자라면 이런 모습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했을지, 그리고 과연 오늘날 기독교 사제(목사)가 최소한 조금이라도 당황하지 않고 히브리서를 강설하며 설명할 수 있을지 깊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250)

 

한국의 개신교 목사들이 위에서 거칠게 그려낸 역사 이야기만이라도 잘 이해한다면, 더욱이 성경 자체의 가르침만이라도 제대로 공부하고 배운다면, “교회당 중심주의예배 지상주의”, “제사장 주의”, “성전 중심주의”, “성직자 주의”, “종교 권력 행사와 같은 반()신학적, ()성경적 주장에는 빠지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국 개신교는 이 점에 있어서 유대교에서 배워야 하지 않겠나요. 랍비가 토라의 권위 있는 해석자로 자리매김했다면 개신교의 목사는 성경에 관한 권위 있는 해석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요? 일부 나대는 종교지도자들에게 간곡히 조언합니다. 더는 어쭙잖은 말로 교인들을 선동하거나 혹세무민(惑世誣民)하지 말고 제발 차분히 앉아 공부하세요! 마스크는 왜 씁니까? 입 닥치고 조용히 있으라는 것 아닙니까? 코로나 시대는 목회자들이 주야(온종일)로 하나님의 말씀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거워해야 할 시간으로 주어진 천금의 기회입니다.

 

 

여름의 끝자락”, Pencil Lake Gaylord 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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