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1 14:51
[종말론적 신앙]
“주께서 곧 도착하실 겁니다.” (빌 4:5)
“종말론적 신앙”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문구입니다. 먼저 ‘종말론’이란 단어자체가 그렇습니다. 역사의 마지막에 되어 질 일들에 관한 것이 종말론이기 때문입니다. 주로 사이비나 이단들이 이런 용어를 즐겨 사용합니다. 자기들만이 알고 있다고 선전하는 “역사의 시간표”를 빌미로 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종말’은 시계로 측정되거나 달력에 표기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닙니다. 종말은 말 그대로 ‘끝’입니다. 모든 것을 결정짓는 마지막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불가분 ‘죽음’과 관련이 있는 셈이지요. 문제는 죽음의 시간이 언제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언제 어느 때라도 여러분과 저의 죽음의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이란 단어는 우리에게 현재의 삶을 신중하게 생각하며 살라는 열쇳말(key-word)입니다. 죽음이라는 전망대에 서서 현재 우리의 삶을 바라보라는 뜻이 됩니다. 죽음을 기억하고 살라는 말도 됩니다. 라틴어 문구 가운데 Memento Mori(메멘또 모리)가 있습니다.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삶을 한결 경건하게 살 수 있게 만드는 문구입니다.
그러나 죽음이 마지막 말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종말론적 신앙은 죽음의 전망대에서 현재의 삶을 바라보는 그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전망대에서 현재의 삶을 바라본다는 말입니까? “주님께서 오신다!”는 대림절(advent)의 전망대에서 현재의 삶을 바라보는 것이 종말론적 신앙의 핵심입니다.
· 세상 돌아가는 일들에 대해 혼란스러울 때, · 덧없이 흘러가는 인생의 무상함과 부조리와 모순투성이를 바라보며 헷갈려할 때, · 우주의 중심이 어딜까 하며 까만 밤들을 새하얗게 지새울 때, “주님이 가까이 오고 계시다”는 전망대 위에 서십시오. 경건한 기독교인들은 언제나 “주님이 가까우시니라!”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라는 말 속에서 위안과 힘을 얻었습니다. 달리 말해 이 세상에서 당하는 수많은 고난과 괴로움과 모순과 부조리 가운데서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우주의 중심이 흔들거리는 내 자신이나 사회나 인류의 역사 안에 잇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오심, 오시는 주님 안에서 발견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삶의 비밀공식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피부만큼이나 가까이 와 계시다는 사실을 믿을 때, 비로소 염려와 근심들은 뒷전으로 물러나게 될 것입니다. 종말론적 신앙을 가질 때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어둠의 날을, 세상의 끝날을, 모든 죽음을 기억하며,
그리고 지금 여기의 삶을 기다림으로 채워가는 시간.
설령 지금의 근심과 염려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아도,
그 날을 기다리며 작은 것에 기뻐할 힘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