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16 12:22
아래는 내가 가르치는 수업시간(성문서 = 시편과 지혜서))에 뮤지컬 영화 [지붕의의 바이얼린]을 보고 감상문을 쓰면 학기말시험에 보너스 점수를 준다고 했더니 한 학우가 그 말에 순종을 하고 DVD를 구입하여 본후에 보내온 감삼문입니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 을 보고
3학년 주간 B반 20095005 원명식
성문서 시험을 준비하면서 노트를 열심히 보고 있는데 지난 수업에 과제로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보고 독후감을 써서 제출하라는 내용이 있어 영화를 급하게 구해서 보게 되었다.
영화의 시작과 끝이 한 사람의 바이올린 연주자를 보게 된다. 물론 중간에도 한 번 등장한다. 러시아의 유대인 마을인 아나테프카는 유대인의 전통을 지키며 대를 이어 아버지의 전통을 아들에게 물려준다. 아버지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지만 이 영화는 러시아 혁명이라는 사건을 등장시키면서 변화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아버지는 고집스럽게 전통을 지키며 다섯 명의 딸을 어떻게 좋은 곳으로 시집보낼 것인가가 영화 내내 고민꺼리다. 아버지의 고민과 상관없이 딸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결혼한다. 아버지는 처음에 반대하지만 결국 다 허락한다. 그 허락 속에는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바이올린 연주는 영화의 앞뒤로 균형 있게 흐른다.
첫 장면이 삼각 지붕 위에서 곡예를 하듯 균형을 잡고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연주자의 모습이다. 또한 영화는 뮤지컬 형식으로 아름다운 노래들이 등장한다.
세상의 변화는 너무나 거칠다. 러시아 혁명의 큰 사건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지만 유대인들은 그 혁명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야 했다. 전통으로 가득한 장소를 떠난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전통을 깨뜨려 왔는지 모른다. 세상에 적응하며 살수 밖에 없는 무력함이 묻어난다.
그렇지만 고향을 떠나는 여정의 끝에 바이올린 연주자는 연주를 하며 뒤 따른다. 여전히 모든 것이 혼란스럽지만 연주만은 평정을 유지해 뒤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모습 같기도 하다. 거친 세상 속에 우리를 인도하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틀림없다.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이올린 연주자이기 보다 주인공의 하나님을 향한 친밀함이었다. 그는 시종일관 하늘을 향해 말한다. 자신의 처지를, 때로는 불평을 하나님께 아뢴다. 이것이 가장 큰 전통적인 습관이 아닌가 싶다.
사실 그의 기도는 그가 생각하는 대로 응답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세상이란 거대한 폭풍에 자신을 포기하고 응답하는, 그 모습을 다시 하나님께 아뢰는 시편과 같은 기도가 나타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편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해 주시듯이 주인공은 자신의 상황 하나하나를 하나님께 아뢴다.
얼마나 응답을 염원했을까? 얼마나 하나님을 향한 전통을 지키고 싶었을까? 결국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잃게 하셨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새로운 출발은 화해와 용서를 그리고 있다. 세 딸의 결혼은 그에게 있어 새로운 미지의 땅으로 가게 하는 원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으로 보면 그의 기도는 응답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여전히 그를 뒤따르는 바이올린 연주자는 영화의 비중을 차지하지 않지만 그를 잠잠히 따라간다. 자신에게 맡겨진 연주하는 일을 여전히 하면서 소리 없이 주인공을 따라가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과연 전통에 붙잡혀 있는 신앙이란 무엇인가? 누구도 올라가지 않으려는 지붕 위에서 연주하는 그는 누구인가? 그는 유대인 마을을 대표하지만 그 마을을 깨우고 있는 메신저가 아닌가 싶다. 언제나 떨어질 것 같은 그곳에서 균형을 잡고 연주를 한다는 것은 앞으로 다가오는 시련과 미지의 세계에 대해 준비하라고 외치는 선지자의 모습 같기도 하다. 이것을 보면서 얼마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계신가? 사실 이 세상 속에서 진정한 균형을 가지고 서 계신 분이 예수님이 아니신가? 그분의 하신 일이 바로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어떻게 서야하는지의 균형 잡힌 신앙의 길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결국 영화는 전체적으로는 단순한 내용이었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균형 잡힌 신앙의 자리로 인도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도 여전히 이 땅에서 연주자이다. 세상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우리를 보고 비방하는 일들이 거세게 늘어나도 조금도 변함없이 연주하는 연주자의 자세를 우리는 가져야 할 것이다. 또한 전통을 지키고자 했던 주인공의 모습처럼 늘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유지해야 할 것이고, 화해와 용서로 변화를 적극적으로 맞이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또한 바람 부는 인생길을 기도하며 걸어간다는 ‘풍(風),도(道),기(祈)’처럼 세상을 하늘의 언어로 연주하며 걸어가야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음을 보게 된다.
2011.06.17 16:2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류호준 교수의 무지개성서교실이 http://www.rbc2020.kr 로 리뉴얼하여 이전합니다. | 류호준 | 2020.08.24 | 2523 |
883 | 감사하며 배우겠습니다. [1] | 바이르 | 2011.08.31 | 8501 |
882 | 하나님 만나기 [1] | 세굴라 | 2011.08.17 | 2 |
881 | 생각하는 글: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기반시설이 제대로 되어야죠” | 류호준 | 2011.08.14 | 8515 |
880 | 추천사: 김순영,『열쇳말로 읽는 코헬렛(전도서)』 [1] | 류호준 | 2011.08.09 | 10362 |
879 | 손자 에반이~~ [3] | 류호준 | 2011.08.07 | 9923 |
878 | 교수님! 안녕하세요? [2] | 박주현 | 2011.07.13 | 8781 |
877 | 교수님 [1] | 이호수 | 2011.07.11 | 1 |
876 | Bodyworship ? [1] | 윤정태 | 2011.06.30 | 8694 |
875 | '지붕위의 바이올린' 장옥희 | 관리자 | 2011.06.18 | 11274 |
874 | 『지붕위의 바이올린』영화 감상문 - 신광진 | 관리자 | 2011.06.17 | 11466 |
873 | [지붕위의 바이올린] 에 대한 감상문- 박정진 | 관리자 | 2011.06.17 | 11041 |
872 | 교수님께 | 방배동 | 2011.06.16 | 2 |
» | 관람평: "지붕위의 바이올린주자"(Fiddler on the Roof) -원명식 [1] | 관리자 | 2011.06.16 | 10777 |
870 | 나는 당신의 마음을 지니고 다닙니다. [1] | 지앤미 | 2011.06.14 | 20598 |
869 | 따끈 따끈한 책 감사합니다 [2] | 김창원 | 2011.06.14 | 8729 |
868 | 샬롬 [3] | 임영동 | 2011.06.14 | 4 |
867 | 제자 최교훈 문안 인사드립니다 [2] | 방배동 | 2011.06.11 | 3 |
866 | 추천도서: 로버트 H. 스타인,『성경 해석학』(서울: CLC, 2011) [1] | 류호준 | 2011.06.02 | 10414 |
865 | 교수님 ! [2] | Stopher | 2011.06.02 | 2 |
864 | 2011 정기연주(예술감독: 김재영) [7] | 김재영 | 2011.06.01 | 10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