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7 18:18
“너희가 호롱불을 아느냐?”
3천 년 전의 문서, 그것도 우리 한국과는 문화적 지리적 거리가 상당히 먼 중동에서 출판된 문서가 있었습니다. 당시는 원시 농경문화였습니다. 지금에 비하면 모든 게 원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자로 표현된 그들의 정신적 수준은 지금보다 결코 낮지 않았습니다. 마치 2,400여 년 전 그리스의 철인들인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의 사상과 철학이 지금의 철학보다 더 훌륭하면 훌륭했지 결코 낮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3천 년 전의 고대문헌인 구약성경의 의미를 잘 알려면 그 당시의 문화, 지리, 풍습, 절기, 관습, 마을, 정치구조, 교육제도, 사회상, 일상생활 등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필수적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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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학교에서 수업하던 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수천 년 전에 지어진 히브리 시에 관한 강의였는데 시편 119장 105절의 그 유명한 시 구절로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어떤 주제로 작시할 때 한번 말하는 것이 아니라 “두 번 달리 표현하는 습관”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 시가 하나님의 말씀을 은유법을 사용하여 두 소절로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입니다”와 “하나님의 말씀은 내 길에 빛입니다.”의 합성된 하나의 시행임을 알려주었습니다. 간단하게 줄이자면 “하나님의 말씀은 등불입니다.”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강의에서 시에 등장하는 “등잔”, “등불”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강의실 뒤쪽에 앉아 있던 몇몇 학생들의 얼굴을 보니 전혀 수업에 흥미가 없어 보였습니다. 아니 영혼이 가출한 상태처럼 무덤덤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을 가리키며 “등잔” “등불”이 뭔지를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적지 않게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곧이어 “모르겠는데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당황스런 질문에 기분이 나빠서 “모르겠는데요”라고 대답한 것 같아, 다시 물었습니다. “정말 모르느냐?”고. 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정색을 하고 “정말 모르겠는데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정말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나는 헛 강의를 했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다시 물었습니다 “호롱불”, “남포등”, “청사초롱”의 이름을 불러보았습니다. 무덤덤한 얼굴에서는 아무런 반응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정말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헐. 헐. 헐.
다시금 혹시나 해서 나는 정성껏 호롱불을 칠판에 그렸습니다. 남포등도 나름대로 그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기하듯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내 그림 실력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어설프게도 다시 그렸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고해성사하듯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20대에서 30대 초반 남녀학생들이었습니다. 이건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일이 벌어진 판에 나는 지난 몇 십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사용하던 물건들 이름을 열거해보았습니다.
"수레", "지게꾼", "구르마", "호롱불", "남포등", "호야", "등잔(燈盞)", "등잔불", "등경(燈檠)", "등잔걸이", "가마솥", "솥단지", "양은냄비", "부지깽이", "삼태기", "부삽". "쟁기", "낫", "괭이", "보습", "가래(질)", "써레(질)", "재갈", "굴레", "멍에", "고삐", "안장(鞍裝)", "야경꾼", "호루라기", "딱따기", "말", "되", "됫박"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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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나오는 물건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시골에서도 흔히 볼 수 있던 것들입니다. 구약 성경에도 자주 등장하는 물건들입니다. 그러니 그런 물건들에 대한 이해 없이 어떻게 그 물건을 언급하고 있는 성경의 문맥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누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가요? 그런 물건들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문제인가요? 그런 물건들 이름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는 고대문헌(성경)이 문제인가요? 농경문화가 아닌 4차 혁명시대에 사는 것이 죄인가요? 귀담아 배우려 들지 않는 세대가 문제인가요?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선생들의 문제인가요? 아니면 번역의 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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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세대들이 인터넷 서핑에는 달인들이 되면서도 정작 문자 텍스트(본문)를 읽어낼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이 준비되지 못한 것에 대해 크게 안타까움을 갖습니다. 텍스트를 읽어내려면 그 텍스트 속에 있는 문화와 사회, 제도와 기구, 물건들과 풍습들에 대한 이해가 선결되어야하지 않겠는지요? 아휴~~
교회에서 수고하는 젊은 사역자(신학생)들 가운데는 악기를 다루며 감성적 찬양 인도에 탁월한 수완을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텍스트를 읽어내는 인문학적 소양을 배양하는 일에는 많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는 현실이니 정말로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추신: 강의를 다 들은 후에 어느 학생이 이런 제안을 하더군요. “선생님, ‘하나님의 말씀은 내 등불입니다!’”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은 스마트폰의 LED 조명입니다!'라고 하면 확 감이 옵니다." 라고. 그래서 나도 한마디 했습니다. “그럼 지게꾼은 택배기사로?” ㅎㅎㅎ
"너희가 이 남포등(lamp)을 아느냐?"
그 친구들이 안타깝네요ㅎㅎ 교수님 강의를 듣고 싶어도 못듣는 사람들도 많은데,,, 등불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니,,, 어허어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