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희망(HOPE)은 타고난 것"

                                                                         Dr. Lewis Smedes
                                                                          번역: 류호준 목사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발견하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아브라함이 사막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을 때, 그리고 400년이 지난 어느 날인가, 그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희망을 가지고 모세가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애굽의 속박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를 지나가고 있었을 때, 그리고 한참 후,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기 위해 예수가 방금 베들레헴에 태어났다는 좋은 소식을 천사들이 힘차게 노래하고 있었을 때, 이 지구 한 모퉁이에서는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예수라는 사람에 대해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채로 살고 있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그들의 손자 손녀들을 무릎에 앉혀놓고 신(神)들이 이 세상에 희망을 가져오게 되었던 옛날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성경의 이야기들을 들어 본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던 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마음 속 깊이 세상의 모든 남자와 여자들은 반드시 희망으로 갖고 살아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각 세대의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의 마음속에 희망의 불꽃을 살려놓기 위해 그런 옛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던 것입니다. 판도라(Pandora)라는 여자와 그녀의 상자에 관한 이야기 역시 아마 그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이 손자들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위대한 신(神) 제우스가 땅을 시찰하기 위해 올림포스 산에서 내려왔답니다. 보니 땅은 형체가 없었고, 진창같이 된 찌끼가 마치 작은 액체 방울덩어리들이 엉겨붙은 모습이었습니다. 마른땅도 없고, 순수한 물도 없고, 공기도 없고, 빛도 없고, 생명체도 없었습니다. 보이는 것이라곤 시커먼 쓰레기더미였습니다. 생명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제우스는 눈앞에 펼쳐진 것을 보고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땅에서 물을 빼어 말리고, 물을 한곳으로 몰아 대양이나 호수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리고 숨을 내뿜어 공기를 온 하늘에 퍼지게 하였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아직까지 동물들이 없었습니다. 물론 사람도 없었습니다. 제우스는 자기보다 계급이 낮은 두 명의 신(神)둘을 불러 땅위에 여러 동물들과 사람 하나를 창조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우스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물론 멋있는 남자 한 명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땅이 너무나 어두워 그 사람은 앞을 볼 수 없었습니다. 또 너무 추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보고 있던 한 신이 하늘로 올라가 태양에서 불을 훔쳐 땅으로 돌아와 그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사람은 그에 마음에 빛을 얻게 되었고, 몸을 따스하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꼭 필요한 한가지가 없었습니다. 즉, 여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남자에게 여자가 얼마나 필요하겠는가 하고 생각하던 제우스는 가장 탁월한 조각가들을 불러 여자 하나를 만들라고 명했습니다. 올림포스 산꼭대기에서 그 조각가들은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최상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지혜와 예술의 재능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판도라(Pandora)라고 지었습니다. 판도라란 "모든 재능들을 소유한 자"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제우스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담은 보물 상자 하나를 판도라에게 주었습니다. 그 상자는 열지 못하도록 봉인(封印)했습니다. 그리고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그 상자는 오직 신들만이 열 수 있도록 허락되었고, 사람이 열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상자와 함께 판도라를 땅으로 내려보내어 남자에게 행복이 되게 하였습니다.

땅에 내려오자, 판도라는 호기심에 일어났습니다. 궁금해서 어쩔 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몰래 상자 뚜껑을 열고 그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그 안에 있었던 온갖 축복들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리저리 공중으로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손이 닿지 못할 정도로 멀리 공중에 흩어진 것입니다. 사람들은 날아간 복들을 쳐다보고, 다시 갖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떠나버린 복들을 손에 움켜쥘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불행 중 다행히도, 한 가지 축복만은 그 상자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답니다. 그 축복의 이름은 '희망'이라 불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잃지 않고 갖고 있는 한, 사람들은 저만큼 높이 날아가 버린 축복들을 손을 내밀어 잡으려 애쓰고, 바라고, 기다리려는 의지와 힘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1)

판도라와 그녀의 희망의 상자에 관한 이 옛날이야기는, 희망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본래적인 것이며, 모든 사람들은 그들 마음속 깊이, 사람은 희망 없이는 살지 못한다는 것을 깊이 알아왔다는 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희망은 떨쳐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적으로 희망을 갖고 태어난 존재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사랑하도록, 우리의 두뇌는 생각하도록, 우리의 손들은 무엇인가를 만들도록 지음 받은 것처럼, 우리의 정신은 희망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독수리가 창공을 향하여 그 마음이 끌리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희망을 향하여 끌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칼 메닝거(Karl Menninger)란 학자가 잘 말했듯이, 희망이야말로 '삶의 본능'인 것입니다.2)

유대인이 희망하고 사는 것은 그가 유대인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희망하고 사는 것은 내가 크리스천이기 때문이 아닙니다.3) 나는 희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 마음대로 통제하거나 조절할 수 없는 미래를 향한 길에 대해 근심하고 갈등하고 번민하고 고통하고 갈망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 내 영혼을 덮칠 때, 내게는 계속해서 희망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하나님을 붙잡는 신앙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신앙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시면서 그 마음속으로 꿈꾸시던 좋은 것들을 붙잡도록 합니다. 신앙은 우리가 바라고 희망하던 그 하나님의 약속들과 꿈들을 우리도 꿈꾸도록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든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든지, 모든 사람들은 희망에 굶주려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지으신 그분께서 우리로 하여금 희망하며 살도록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분 나름대로 우리로 하여금 희망에 대한 그러한 갈망과 필요를 갖도록 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러셨다는 말입니까?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지만, 그 미래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지는 않았다는 사실입니다.4) 우리는 우리에게 꼭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좋은 일들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아무도 확실하게 내다보지는 못합니다. 또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나쁜 일들을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나쁜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확실하게 내다보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가 상상하는 좋은 일들이 희망하거나 아니면 우리가 상상하는 불행한 일들에 대해 두려워할 뿐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나그네5), 다시 말해서 길 위에 있는 사람들로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순례자들입니다. 순례자들로서 우리는 앞으로 좀더 가려고 애씁니다. 이동하는 나그네로서 우리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 시간에서 저 시간으로 움직여 가고 있지만 그런 과정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나중으로 움직여 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내일이 어제보다 낳기를 희망하고 사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큰 개념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주 쉬운 비유 하나를 들겠습니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마치 꾸불꾸불한 산길을 따라 산 정상에 오르는 기나긴 등산과 같습니다. 길고 지루한 산길을 지나면 우리 모든 영혼들이 그렇게도 갈망하고 바라는 산의 정상(頂上)이 있습니다. 변함없는 사랑, 건강, 마음의 평정,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는 기쁨, 복 받은 삶,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등과 같은 것들 말입니다. 사실상 우리가 걷는 산길의 경사는 가파르지 않습니다. 아마추어 등산가도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고도 올라갈 수 있는 경사입니다. 그러나 산길을 가는 도중 곳곳에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급류가 흐르는 계곡이 있습니다. 다리가 없는 계곡입니다. 아니면 가다가 보면 길 한가운데 우람한 나무가 벼락에 맞아 가로막고 쓰러져 있습니다. 아주 미끄러운 곳도 사방에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깊은 산길을 따라 가다보면 주저앉고 싶도록 만드는 많은 유혹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경치가 너무도 좋아서 그것에 멈추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니면 야영할 수 있기에 너무도 좋은 장소를 만나기도 합니다. 떠나기가 싫을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아니면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더 이상 올라가 봐야 여기보다 더 낳을 것이 없다고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올라가야 합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계속 올라가도록 만듭니까? 여정을 계속하도록 용기와 힘을 공급하여 주는 원동력은 희망입니다. 반드시 우리는 정상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말입니다. 아니면 적어도 우리는 우리가 지금까지 온 것보다 더 정상에 가까이 왔을 것이라는 희망 말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놀라운 발견입니다. 기대치 않은 보물을 찾은 발견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희망이라는 선물을 주셨으며 이 희망이라 불리는 선물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불확실한 여정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창조세계를 통해 발견하게 되는 놀라운 보물입니다.

그러나 희망은 병들 수 있습니다. 병들어 죽을 수 있습니다. 때때로 희망은 너무도 빨리 살해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깊이 바라고 희망하던 일이 우리의 삶에서 날아가 버렸을 때가 그때일 것입니다. 마치 태풍의 길목에 서 있는 천막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와는 달리 희망은 종종 서서히 죽어가기도 합니다. 조그만 실망과 좌절 속에서 서서히 죽어갑니다. 우리가 바라던 일들이 하나씩 시들어 버릴 때, 우리가 희망하던 일들이 서서히 사라져 버릴 때, 마치 도끼나 칼로 깎아낸 나무쪽들처럼 이리저리 흩어져 날아가 버릴 때 희망은 죽어 가는 것입니다. 새는 밸브에서 물이 조금씩 떨어져 서서히 사라지든지, 아니면 바위에 갑작스레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든지 간에, 희망이 우리 안에서 그렇게 죽어갈 때, 우리의 인생은 끝장이 난 것입니다.6) 우리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미래를 향해 길을 떠나는 여행자입니다. 그러한 미래를 향한 우리의 여정이 성공하려면, 우리는 우리 속에 심겨진 희망의 불씨를 계속해서 태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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