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1 16:19
유진 피터슨,『메시지 성경: 공식 완역 한국어판』(복 있는 사람, 2015년). 정가 49,000원
성경은 읽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라고 고백한다면 그렇습니다. 성경과 그리스도인들의 만남은 읽고 읽힘을 통해서입니다. 읽고 읽힘의 과정을 통해 서로가 친숙해집니다. 문제는 제대로 읽고 제대로 읽혀졌는지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번역에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글자를 통해 뜻을 파악하기 때문에 글자가 제대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번역된 글자가 읽는 사람에게 제대로 번역의 뜻이 전달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게다가 성경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과는 수천 년의 문화 역사 지리적 거리를 두고 있는 세상에서 쓰인 책입니다. 그 당시의 언어와 언어관습과 문법과, 문화를 담고 있는 성경의 언어를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대한민국의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번역자들은 시대적 차이와 문화적 차이와 지리적 차이를 넘어 성경의 메시지가 현대인들에게 통할 수 있도록 부단한 애를 씁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반 크리스천들이라도 성경번역에 많은 관심을 두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특정한 사람들, 예를 들어, 신학자들, 전문 성경학자들, 목사나 신학생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님으로 영접한 모든 크리스천들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통해 그들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어떤 일을 하시고 계신지, 사람이 누군지, 왜 존재하고 있는지, 또한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따라서 성경의 메시지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할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해주는 번역이 있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전문적인 성서학자이기 전에 목사로서 나는 이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 이슈인지를 경험해 왔습니다. 교인들에게 성경을 가지고 설교하거나 성경공부를 하면서, 함께 읽고 있는 한글 성경이 얼마나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매번 절감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개역개정)이 오역이거나 이상한 번역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일반 교인들이 한글 성경을 얼마나 힘들게 읽으며, 읽어도 이해하기 참으로 어렵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목사로서 나는 우선적으로라도 성경이 전달하려는 “메시지” 정도만이라도 이해 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보조 성경”은 없을까 하고 안타까워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성경번역에 종사해온 사람으로서 – 밀리언셀러인 『쉬운 성경』의 시편과 에스겔서를 번역했고, 『바른 성경』의 예언서 부분을 번역했고, 『개역개정』의 감수위원을 지낸 경력이 말해주듯이 – 내게 이런 생각들이 간절했던 것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개역)을 전문학자인 내가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상당히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특별히 구약의 예언서가 그러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교회에서 성경공부형태로 이사야서를 강해한 일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사야본문에 대한 해설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인들이 성경본문 자체를 잘 모르는 것 같아 그들과 함께 한글 성경본문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한글 본문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도 그랬으니 교인들이야 오죽했겠습니까? 그래서 고민하던 차에 나는 이사야서 본문을 부분적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본문이 말하려고 하는 의도, 즉 메시지를 번역 안에 담아보려는 시도를 할 것입니다. 이런 시도를 통해 교인들에게 성경을 이해시키는 데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고 스스로에게 말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구차스럽게 성경번역에 대해 길게 쓰는 목적은 한마디로 “성경번역은 보통의 신자들, 즉 일반적인 교우들을 위해서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유진 피터슨의『메시지 성경』(The Message: The Bible in Contemporary Language)이 태동하게 된 이유도 이와 흡사합니다. 이 사실에 나도 자못 놀랍니다. 얼마나 내 경우와 흡사한지요! 유진 피터슨 목사는 미국 메릴랜드 주의 작은 마을 벨 에어(Bell Air)의 그리 크지 않은 교회에 목사로 부임하여 29년 동안 목회를 하였습니다. 숫자와 크기로 판단하기를 좋아하는 한국식으로 그를 평가한다면 그는 그리 성공한 목사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혁혁한 공헌을 한 신실한 종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목회자로서 그는 교인들과 성경을 공부하며 성경을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알았습니다. 특별히 성경을 가르치고 공부하면서 성경원문의 의미를 교인들에게 쉽게 전달해 주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그들이 알아듣기 쉬운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기로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이 시대가 나은 가장 위대한 성경번역가의 길을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교인들과 함께 성경을 공부하면서 일상의 언어로 번역한 성경이 갈라디아서였습니다. 성경 번역을 하게 된 동기에 관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번역을 하면서 염두에 두었던 것은 오직 우리 교회 교우들과 그들의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어로 쓰여진 본문 속으로 들어가 그 의미의 밑바닥까지 살피고,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 언어로 그것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후에 이 갈라디아서 번역이 그가 섬기던 지역교회를 넘어 미국의 일반 크리스천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게 되자, 유진 피터슨 목사는 마음에 “성경 전체를 이렇게 번역해 보자”는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1932년 11월생인 유진 피터슨 목사는 올해로 83세입니다. 그는 약관 30세에 메릴랜드 주의 벨 에어에 “그리스도 우리의 왕 장로교회”(Christ Our King Presbyterian Church, PCUSA)에서 담임 목사로 부임하여 29년 목회한 후 59세가 되던 해에 성경번역을 위해 교회를 사임하고 남은여생 전부를 쏟아 부어 일상의 언어로 소통하는 성경번역에 심혈을 기울이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유진 피터슨 목사는 12년간의 각고 끝에 그의 나이 70세가 되던 2002년 7월에『메시지』라는 이름으로 성경전체를 번역하여 완간하게 됩니다.
유진 피터슨이 번역한 영어성경 The Message는 일차적으로 미국인 크리스천들과 아직까지 신자는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신앙에 귀의하려는 불신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일상의 쉬운 미국식 영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소통하겠다는 의도에서였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은 일종의 “보조 성경”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기존의 번역 성경들(한글의 경우는 개역개정성경 등)을 대치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들을 보조해서 성경 이해를 돕겠다는 의미의 성경입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의 영문 The Message 성경을 한글로 번역한다는 소식을 처음 접하고는 나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금치 못했습니다. 기대는 일반 교인들이 쉽게 성경에 접할 수 있도록 일상의 언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아주 좋은 번역 시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우려라 함은 유진 피터슨은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인이기에 영어의 일상적 관용어를 많이 사용해서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는데, 미국적 표현을 어떻게 한국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려했던 일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기막힌 한글 번역으로 옷 갈아입었습니다. 예를 들어, 시편 1장을 보자면 이렇습니다. 첫 번째 번역은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를 내가 오래전에 유진 피터슨 스타일로 번역해 본 것이고, 두 번째 번역은 한글메시지 성경에 실려 있는 번역입니다.
[Eugene H. Peterson’s The Message]
How well God must like you-
you don’t hang out at Sin Saloon,
you don’t slink along Dead-End Road
you don’t go to Smart-Mouth College
Instead you thrill to GOD’s Word,
you chew on Scripture day and night.
You’re a tree replanted in Eden,
bearing fresh fruit every month,
Never dropping a leaf,
always in blossom.
You’re not at all like the wicked,
who are mere windblown dust-
Without defense in court,
unfit company for innocent people.
GOD charts the road you take,
The road they take is Skid Row.
[류호준의 유진 피터슨 메시지 번역]
하나님은 당신이 이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오.
‘죄-카페’에 얼씬거리지도 말고
‘막다른 골목’으로 가지도 말고
‘잘난 체-대학’에 가지도 말라.
그 대신 하나님의 말씀에 흥분하고
밤낮으로 성경을 차근차근 씹어 먹으시오.
당신은 에덴에 옮겨 심은 나무라오.
매달마다 신선한 과일을 맺을 것이오.
잎사귀 하나 떨어지지 않고
항상 무성할 것이오.
당신은 전혀 악한 사람과 같지 않을 것이오.
그들은 바람에 날리는 먼지와 티끌이며,
법정에서 변호해줄 사람이 없는 사람이요,
결백한 사람들과는 전혀 맞지 않는 무리들이오.
하나님은 당신이 가야할 길을 그려주실 것이오.
그러나 그들이 가는 길은 ‘미끄럼-길’이라오.
[한글 메시지 성경]
그대,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수밖에!
죄악 소굴에 들락거리길 하나,
망할 길에 얼씬 거리길 하나,
배웠다고 입만 살았기를 하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밤낮 성경말씀 곱씹는 그대!
에덴에 다시 심긴 나무,
달마다 신선하고 과실 맺고
잎사귀 하나 지는 일이 없이,
늘 꽃 만발한 나무라네.
악인들의 처지는 얼마나 다른가,
바람에 날리는 먼지 같은 그들,
입이 열 개라고 할 말이 없는 죄인들이라
떳떳한 이들 사이에 끼지 못하네.
그대의 길은 하나님께서 지도해주시나,
악인의 종착지는 구렁텅일 뿐.
한글 메시지 성경에 대해 약간의 아쉬움이라면, 성경에는 수많은 시들의 삽입되어 있는데, 그 시들을 시의 형태로 레이아웃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시편은 말할 것도 없고 잠언서 및 예언서의 상당 부분이 시로 되어 있습니다. 구약학을 전공한 유진 피터슨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고, 그의 번역 역시 히브리시의 형태(병렬법 혹은 평행법)를 그대로 살려서 배열까지 했다는 사실입니다(예, 위의 시편 1장을 보시오). 또한 신약 안에도 상당수의 시가 들어있습니다. 누가복음 초엽에 실려 있는 마리아의 노래(1:46-55)나 사가랴의 노래(1:67-79), 빌립보서와 골로새서에 삽입되어 있는 그리스도 찬미시(빌 2:6-11; 골 1:15-20), 목회서신 안에 있는 “미쁘다 말씀들”(딤전 3:16; 딤후 2:11-13)과 요한계시록에 여기저기 퍼져 있는 천상의 노래들이 그렇습니다. 이것들을 시의 형태로 살려내어 레이아웃 했더라면 아주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 메시지 출간은 한글 성경 번역사에 역사적 작품으로 남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글 번역자들의 수고에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이곳저곳 선별적으로 자세하게 읽어봤지만, 번역자들(김순현, 윤종석, 이종태, 홍종락)의 한글 실력이 여간 아니라는 점입니다. 유진 피터슨이 성경원어에서 감칠맛 나게 일상의 영어로 번역했듯이, 한글 번역은 유진 피터슨의 번역을 단순히 한글로 재번역한 것이라기보다는 거의 독창적 한글 창작번역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정말 입에 착 달라붙게 맛깔스런 번역입니다. 이런 점에서 최종 본으로 만들어내기까지 수고한 번역자들, 책임감수자들(김희권, 김영봉)과 출판사 편집진에게 큰 박수를 보내는 바입니다. 아주 잘하셨습니다. (추신, 아무래도 나도 은퇴 후에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한국적 성경번역을 보조성경으로 시도해볼까 하는데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하신지요!)
유진 피터슨의 성경번역이 미국영어식 표현의 관용구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바입니다. 그중 하나가 오늘 예로 든 시편 1장의 첫절에 나오는 " you don’t go to Smart-Mouth College"라는 문구에서 잘 드러납니다. 류호준은 "잘난체-대학에 가지도 말고"로 번역했고, 한글메시지는 "배웠다고 입만 살았기를 하나."로 번역했습니다.
유진 피터슨이 Smart-Mouth College라고 번역했을땐, 그의 머리 속엔 Dartmouth College를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Dartmouth College는 미국 동부에 있는 소위 8개의 명문 대학의 동맹체인 아이비리그 대학들 중에 하나입니다. 아주 명문이지요. 그래서 유진 피터슨은 언어유희를 통해 Dartmouth College대신에 Smart-Mouth College로 번역한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의 문화나 교육을 아는 사람에겐 쉽게 연상되는 단어일 것입니다. 이것을 한국어로 번역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겠습니까? 어떤 번역이든 번역의 한계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국적으로 표현한다면, "너희는 스올대에 가지 말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스올대라고 하면 구약의 음부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스올"을 사용한 표현인데, 서울대와 음이 비스무레하지 않겠습니까? 서울대-스올대!
풍자적 번역 하나를 더하자면, "스카이대"는 "허공대"가 되겠지요! 서울대를 스올대로, 스카이대를 허공대로 번역하다는 것은, 잘난체 하고 허풍대고 빈정대는 사람들을 익살스럽게 풍자하는 용어가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원문은 "레찜"인데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갈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조롱하고 빈정대고 허풍대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잘난맛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단어이죠. 이런 의미에서 Dartmouth College을 염두에 두고 Smart-Mouth College로 번역한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기발한 언어의 달인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구약의 예언자들도 그러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