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19 22:55
“식사시간이 거룩한 이유”
젊어서 내가 공부한 신학적 전통은 “개혁파 신학”(Reformed Theology)이었습니다. 미국에 유학을 가서 공부한 학교도 개혁파 신학교(Calvin Theological Seminary)였고 목사 안수를 받은 교단도 개혁파 교회(Christian Reformed Church)였습니다. 특별히 공부했던 학교와 목사 안수를 받은 교단은 네덜란드인들이 오래전에 미국으로 이민 와서 세운 학교와 교단이었습니다. 자연히 네덜란드 개혁신학 전통에 익숙한 셈이었습니다. 여기서 네덜란드 개혁신학이라고 할 때는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의 신학적 전통에 있다는 의미이고, 특별히 아브라함 카이퍼의 일반은총 강조가 기독교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후에 다시 네덜란드에 유학을 가서 공부하면서(Vrije Universiteit, Amsterdam) 목사로서 나는 구약학 연구보다는 개혁파 신학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습니다. 개혁파 신학에 신앙과 경건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관찰 역시 빠질 수 없는 관심사항이었습니다. 신학이 일상의 삶에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관한 관심이었습니다. 그 중 한 가지가 개혁파 교인의 가정 식사 문화였습니다.
미국에서 신학 공부하던 시절, 신약학 교수님 가운데 신약의 서신서 문헌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앤드류 밴스트라(Andrew Bandstra) 교수님이었는데 몸집은 좌우로 넓었고 키는 컸으며 턱살은 서너 겹 정도는 충분히 되었으며 머리는 많이 벗겨졌습니다. 인상은 참 좋으신 인자하고 후덕스런 분이었습니다. 아마 당시 연세는 50대 후반이었으니 30대 초반의 내겐 아버지 같은 분이었습니다. 가족 사항으로는 딸만 5명을 두었는데, 딸 다섯 명 가진 즐거움도 많지만 고통스런 일도 있다고 너스레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려면 누가 먼저 화장실을 점령하느냐가 매일의 투쟁이라고 웃으면서 익살스레 말씀하셨습니다. 집에는 샤워장과 함께 있는 화장실이 하나 밖에 없는데, 아침에 딸 다섯 명이 순서대로 화장실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기다림이 얼마나 힘든 지를 초대교회의 교인들이 예수님의 “파루시아”(Parousia)를 기다렸던 것과 같았다고 유머러스하게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자기는 언제나 맨 나중에 쩔쩔매며 화장실을 사용해야하는 고통 자체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곤 저녁 퇴근 후에 식구들이 식탁에 둘러 앉아 식사할 때를 이야기하시는데, 그 때의 식탁 모습이 지금도 내게 매우 인상적으로 남아있습니다. 아마 그 때 처음으로 나는 개혁교인들의 일상생활에 대해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미국친구들에게는 일상이었겠지만 유학생으로서 미국인 신학자, 그것도 개혁파 신학자의 가정 식탁 이야기는 남달리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먼저 직사각형이나 타원형 식탁에 모든 식구들이 둘러앉습니다. 식탁의 긴 쪽 양 편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주 보고 앉고, 자녀들은 식탁의 좁은 쪽에 서로를 마주 보고 앉습니다. 물론 식탁에는 어머니가 준비한 식사가 놓여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아버지가 식사 기도를 시작합니다. 보조를 맞춰가며 식사를 합니다. 물론 어떤 경우 먼저 식사를 마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식사를 마치게 되면 다시 식탁에 둘러앉습니다. 이 때 주로 어머니가 식탁 옆에 두었던 가족성경(family Bible)을 폅니다. 그리고 그날에 읽어야할 분량의 성경을 읽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성경봉독에 귀를 기울입니다. 보통 한 장 이상을 읽습니다. 성경 읽기를 마치면 비로소 공식적인 저녁 식사가 마치게 됩니다. 마치 예식(ritual)을 치루는 듯한 신성한 광경입니다. 식사가 그저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광경입니다. 이것이 전형적인 개혁교회 교인들의 식사예식인 것입니다. 식사의 시작을 "기도"로 시작하고 식사의 끝을 "성경"을 읽는 것으로 마친 것입니다. 기도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끝을 맺는 것입니다.
그리고 밴스트라 선생님은 껄껄 웃으시면서 학생들에게 묻습니다. “왜 개혁파 교인들이 이런 식으로 식사를 하는 줄 아십니까?” 그리고 대답을 주셨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서 입니다! 그런 가르침이 어디에 있느냐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성경을 펼쳐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디모데전서 4:4-5를 함께 읽었습니다. 그곳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딤전 4:4-5) - 개역개정
“For everything God created is good, and nothing is to be rejected if it is received with thanksgiving, because it is consecrated by the word of God and prayer.” (1 Tim. 4:4-5) - NIV
신학에선 종종 “선한 창조”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영어의 Good Creation이란 용어를 그렇게 번역한 것입니다. “착한 창조”라고 하면 뭔가 이상하게 들릴 것입니다. 차라리 창세기 1장에 반복해서 나오는 단어인 “좋음”(히, 토브)을 그대로 사용하여 “좋은 창조”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달리 말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다 좋았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힘들여 배운 사람이 베드로였습니다. 고넬료 사건에서 말입니다. 하기야 우리도 성과 속을 나누는 일에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이원론적 사고방식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하나님이 만드시고 창조하신 좋은 것들을 감사함으로 받아서 사용하면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서 거룩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는 별 볼일 없는 음식조차도, 때론 초라한 식사시간도 매우 거룩한 시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일상의 식사가 거룩한 만찬(Holy Communion)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단 말입니까?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먹는 사람은 “감사함”으로 먹어야 합니다. 은혜에 대한 반응이 감사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식사는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시간만은 아닙니다. 식사시간은 동물적 식욕 채움을 너머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신성한 시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식탁에 앉아 먹을 때 말씀과 기도로 이 음식이 성찬(聖餐)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식사에 임해보세요. 일상에서 경험하는 신성한 은혜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가정예배 드리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식탁에서 가능합니다. 개혁파 교인들의 영성 훈련은 이렇게 식탁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는 가정과 식탁이 되기를 소원해 보십시다.
[Holland and South Haven, MI]
매일 저녁을 그렇게 먹을 수는 없겠지만, 일주일에 한번 기도로 식사를 시작하고, 말씀을 읽는 것으로 마무리 하는 것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개혁파 전통의 끄트머리를 잡고 있는 한국의 장로교 목사이기에 우리의 전통을 잘 몰라서 때때로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