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사과와 변명의 차이"

 

밤이 늦은 시간이었다. 용무가 있어서 차를 몰고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는 중이었다. 이미 기숙사 정문에는 차단기가 내려져 있었고 관리인이 희미한 형광등빛 아래서 조는 것이 자동차 안에서도 보였다. 약간은 미안하여 크락숀을 누르지 않은채 차단기 앞에서 잠시 서있었다. 자동차 소리에 깰것 같아서였다. 액세레이터를 약간 밟으니 그 소리에 잠이 깨셨다. 창문 바깥을 내다보니 내 차가 보였나보다. 운전석 창문을 내리면서 목례를 하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렸고 그분이 자기 사무실 안에서 스위치를 누르는 것이 내 눈에 보였다. 물론 이전에도 이런 식으로 몇번의 만남이 있었지만 그로부터 답례의 목례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어쨌건 그 관리인 대신에 인사라도 하듯이 차단기가 번쩍 위로 올라가며 내게 깍듯이 거수경례를 하였다. "차단기야, 너 착하구나!"  차단기 앞에 설치된 속도 방지턱을 넘어 사뿐하게 통과하였다. 그 순간 트렁크 뒤 쪽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차단기가 개념없이(!) 내려오면서 트렁크 쪽을 내리친 것이다. 차를 앞쪽으로 빼었다. 어찌된 일인가 하여 운전석 창문을 내렸다. 기분이 좋을리는 없었다.

 

사실 이 관리인은 최근 새로 오신 분이다. 그러나 그리 썩좋은 인상을 주는 분은 아니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럴 의향은 없다.  그러나 출입할때마다 인사를 해도 시달갑지 않은 듯한 반응을 보이거나 아예 무시하는듯 했는데 그분에 대한 인상이 좋을리가 없었다. 학교 직제상 내가 누군지를 알았더라면 그렇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런 것을 내 놓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유치한 사회인지를 잘알고 있지 않았던가! 

 

좋은 방향으로 이해하자면 그분의 그런 성격인듯 했다. 사실 이분에 대해 그리 좋지 않은 인상이 이렇게 남아있는 이유는 그의 전임자와 너무 대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전임자와는 상호 반가운 목례를 나누었고, 정문을 출입하면서 가끔 과일이나 음료수를 건네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관리인이 왔다. 내심 궁금하고 서운했다. 전에 계시던 분이 안계시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자동차 뒤쪽으로 쿵하는 소리가 들려 차를 잠시 멈추었다. 그 관리인이 사무실에서 나왔다. 검연쩍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분의 성격이 원래 그런지는 몰라도, 첫마디가 "저놈의 차단기가 말을 듣지 않네. 제기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요. 스위치를 누르면 제 맘대로 내려온단 말입니다." 투덜대며 차단기 욕을 한다. 옛말이 틀리지 않는다. "방귀낀 놈이 성낸다"는 속담 말이다. 밤 11시경이다. 바깥 밤 바람이 쌀쌀하게 분다. 내 속에서는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세상에 저런 인간이!" 속에서 별별 말이 나오려고 한다.

 

나는 차에 어느 정도의 상처가 났는지 별 관심이 없었다. 차단기가 오작동하면 그럴수도 있을게 아닌가? 차단기 뿐 아니라 사람도 잘못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잘못하거나 죄를 범하지 않는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지. 어쨌건 내가 아우디나 벤츠, 아니면 액쿠스를 타고 오 않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12만킬로 이상의 주행거리를 보이는 내 애마에 상처가 난다 하더라고 늙어가는 과정이려니 생각하련다. 그러나 내 머리에 뚜껑이 열리려고 한 것은, 아니 이 차가운 가을 밤 내 머리위로 김이 모락모락 나려고 한것은 차단기의 오작동도, 그사람의 무표정한 인상도 아니다. 그저 "아이고, 선생님,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한마디면 불편한 내 마음은 쉽게 진정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제가 기계조작에 미숙하여 이렇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데 변명을, 그것도 뻔뻔스런 말투로 변명을 하다니! 저런 저런... 그러면 안되지요. 

 

단순하고 순박한 사과 한 마디, 미안해서 어쩔줄 모르는 소박한 행동, 이런 것이 사람 사이의 간격을 좁혀가는 묘약이 아닐까? 사과와 변명 사이는 한치 정도 밖에 안될 정도로 아주 가깝다. 그러나 인류가 이 지구상에 존재한 이래로 사과와 변명사이는 DMZ가 되었다. 역시 우리들의 혈관 속에는 아담의 유전인자가 흐르고 있나보다.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대신에 그저 구차하기 그지없는 변명을 늘어놓고 있으니 말이다.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우리들의 변명과 핑계에 식상하셨을까? 아마 하루에도 열두번 이상 하나님의 머리 위로 김이 모락모락 날것 같다. 어쨌건 나는 아무 소리도 그에게 하고 싶지 않았다. 차에 내려서 어떻게 되었나 보고 싶지도 않았다. 바람도 쌀쌀하고 내 마음 역시 쓸쓸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분에게 "아, 그랬군요!" 이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조용히 차의 가속페달을 밟았다. 우리들은 "사과와 변명"의 차이를 아는데 얼마나 걸릴까? 유감이로다. 물론 사과도 사과 나름이겠지. 떨뜨름한 사과도 있으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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