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28 16:16
“개선(改善)이 아니라 갱생(更生)을 위해”
우리의 세례 뒤에는 예수님의 세례가 있습니다. 우리의 세례가 의미 있다는 것은,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와 함께 하나의 그림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죽으심에 참여한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그분의 부활에도 동참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는 죽었다가 다시 일어서시는 그리스도와 우리를 얽어매는 것입니다. 세례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하신 모든 일을 하나로 묶어 요약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우리를 개선하고 개량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하시는 그분의 말씀은,
• “나를 본받아라!”
• “나처럼 사랑스럽고 겸손한 자가 되기를 힘써라”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우리를 물에 빠뜨려 익사시키고 그 후에 다시 우리를 소생시키시기 위함입니다.
로버트 캐폰(Robert Capon)에 의하면, 요한이 선포한 회개는, “우리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시간은 이미 끝나 버렸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염을 해 넣는 장의사다. 그렇지 않다면, 가능치도 않고 상상할 수도 없겠지만, 죽은 자를 일으킬 수 있는 그 ‘어떤 분’ 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다시 산다면, 아니 우리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 삶의 옛 부품들이 다시 제자리를 잡아 작동하기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다른 생명이 우리의 깨어진 삶 속에 새롭게 자리를 잡기 때문입니다.
- 류호준, 「아버지를 떠나 자유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