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12 16:15
“부끄러움을 가르칩시다!”
누군가 내 방을 노크한다. 보아하니 학생이다. 낯설지는 않은 학생이다. 내 수업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교내에서 본 얼굴이다. 반갑게 맞이했다. 그런데 그냥 서서 말을 하려는 참이다.
“어찐 일인가?”
“다름이 아니라 이번 돌아오는 월요일에 동호회 구기대회를 합니다.”
“그래서?”
“책 찬조 받으러 왔습니다.”
“무슨 책을?”
“교수님이 쓰신 책이요!”
“책 많이 쓰셨잖아요!”
얼굴 색 하나 변하지 않고 실쭉 웃으면서 말한다.
도대체 이건 뭔가? 당황스럽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한다. 선 채로 다짜고짜로 책을 찬조하라는 것이다. 헐. 헐. 헐.
마음을 가다듬고 정중하게 돌려보냈다. 생각해 보겠노라고. 그리고 혼자 중얼거려본다.
“근데, 책을 찬조하라고?”
“네가 내게 맡겨놓은 책이더냐?”
“너희들 동호회 대회하는 것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더냐?”
“이런 식으로 교수실에 돌아다녀 교수들의 양심을 건드려 보는 거냐?”
“책을 안 내어놓으면 쫀쫀하게 책을 찬조 안 한다고 말하겠지?”
“야, 그건 아니다. 도대체 너는 개념이 있냐? 없냐? 무례한 것이냐? 허물없어서 그런 거냐?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면 앞으로도 한참 배워야겠다.”
정말로 찬조를 받고 싶다면 먼저 상대방의 마음을 얻어야하는 것이다. 강요도 아니고 코너(corner)에 몰아붙이자는 것도 아니고 뭐인가? 누군가를 만나 부탁을 하려면 미리 생각을 하고 전략을 세워서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정말 버릇이 없다고 해야 하나? 개념이 없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허물없이 가깝다고 생각해서인가? 요즘 젊은 신학생들 가운데는 최소한의 공중예의에 대한 개념조차 없는 사람들이 가끔은 있는 것 같아서 서글프다.
이런 문제가 단순히 몇몇 사람에게만 국한 된 문제가 아닌 것이 더욱 서글프다. 한국 사회가 부끄럼을 모르는 사회가 되어가니 더욱 참담하다. 세월호의 비극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이 정말로 부끄럼을 모르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교계도 여기에서 열외일 수 없다. 온갖 부끄러운 일들을 백주에 저지르고도 뻔뻔스럽게 거리를 활보하는 교계정치꾼들이나 일부 몰지각한 목회자들에겐 도무지 부끄런 감정기관이 그 속에 존재하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그렇지. 부끄런 감정을 상실한 사회는 진정한 명예로움도 알 수 없을꺼겠지.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고 박완서 작가의 소설 제목이 떠오른다. 오후 내내 기분이 꿀꿀 하구나.
말만 잘하면 수십권이라고도 준다! ㅋㅋㅋ
[창덕궁의 아침, 박정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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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혼자 주님과 친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 봅니다.
주님과 상관없는 일을 기도하면서 무례하게 떼쓰지는 않는지 되새겨 봅니다.
조용히 제 삶의 자리에서 주님께서 찾아주시길 간절히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