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신학 교육과 목회자 양성”

2013.09.24 21:15

류호준 조회 수:11078

신학 교육과 목회자 양성

 

류호준 목사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장)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하라 하시니라 (마태 9:35-38)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하라 (누가 10:1-2)

 

 

 

위에서 읽은 것처럼,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 전파의 긴급성과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복음서는 공히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이 단순히 2천 년 전에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니라 지금의 상황에도 맞는 말씀이라면, 우리는 두 가지 긴급한 상황을 마음에 담아야할 것입니다.

 

 

기초 본문 묵상

 

첫째로, “아직도 추수할 것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지금도 많다는 인식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피상적으로 생각하면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더 이상 교회가 필요 없을 만큼 교회들이 넘쳐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가 많아 보이는 것과 영생의 구원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많지만 실제로 예수를 구원자로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 즉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은 아직도 더 많다는 것입니다. 역으로 말하자면 교회가 교회의 본질적 사명, 즉 생명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천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질책으로 이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영혼에 대한 숫자계산이나 외형적 몸집 불리기에만 관심을 두지 말고, 하나님에 대해 목말라하는 영혼들, 구원의 절박성을 인식하는 사람,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보이는 교회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사람들, 교회의 변방에서 떠돌고 있는 사람들 등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 우리 주변에는 복음전도의 불루오션(Blue Ocean)이 엄청나게 많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추수할 일꾼이 적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명목상의 추수꾼들은 많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보신 실체는 그렇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복음 전도라는 지상최대의 사명을 일구어낼 견실한 일꾼이 심히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현재 각 교단마다 수많은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이 배출되고 있지만 주님이 보시는 눈에서는 제대로 된 일꾼” “복음 사역의 목적에 맞게 준비된 일꾼” “삯군이 아닌 신실한 일꾼이 실제적으로 많지 않다는 엄한 질책이 이 말씀 안에 담겨 있기도 합니다.

 

위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신학교육에 대해 두 가지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을 수 있겠습니다. 첫째로, 신학교육을 하는 신학교수들은 어디에 추수할 곳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신학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신학교수들은 제대로 된 복음의 사역자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제를 살펴 봄

 

이런 성경적 가르침에 근거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주제를 살펴보려고 하는 바입니다. 주제는 매우 도발적인 제목입니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하면서도 왜 목회를 못하나?”입니다.

 

이 제목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1) 긍정적인 측면으로 해석하자면 주마가편”(走馬加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여더 잘 달리게 하려는 의도가 있을 겁니다. (2) 부정적인 측면으로, 신학교육이 당면한 문제와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하도록 하는 질타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신학교육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자책에서 비롯된 질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학교육의 전선(前線)에 서 있는 신학교수들이 현 한국교회가 직면한 상황의 심각성을 스스로를 돌아보고 이에 대한 공동체적 고민과 문제 해결을 위한 집단적이고 집약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 살아온 우리 시대를 돌아 봄

 

먼저 가까운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현금 한국교회의 상황과 신학교육의 상관성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6.25 전쟁이후 우리민족은 민족적 분열을 치유하고 폐허와 가난의 잿더미에서 국가재건이라는 국민적 목표를 향해 정진하였습니다. 교회 역시 이 시대적 흐름에 그 나름대로 응답하였습니다. 전후 시대는 열렬한 기도원 운동과 각종 심령 부흥회가 한창 꽃을 피웠던 시절이었습니다. 전국의 기도원들에서는 종종 구국 산상 기도회가 열렸으며, 병들과 가난하고 절망하던 사람들에게 내세적 희망을 강력하게 전파하며 용기와 비전을 주었습니다. 삼각산 기도원, 철원 기도원, 용문산 기도원, 오산리 기도원, 한얼산 기도원 등과 같은 몇몇 유명한 기도원들에는 시절마다 인산인해를 이루며 영적인 갈급함을 호소하고 영적으로 재무장하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김창인, 조용기, 신현균, 최자실, 이천석, 이병규 등 당대 내노라 하는 부흥강사들이 출동하였고, 신학교수로는 차남진(총신) 교수가 대중적 부흥회를 이끌기도 하였습니다. 영적 갈급함 때문에 성경강해집회가 많았고 또 한편으로는 산상기도, 금식기도, 철야기도 등과 은사 운동도 한 축을 이루었습니다. 특별히 사회적 병약자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시작한 서대문 순복음교회(조용기목사)는 기하급수적인 외적 성장을 보여주었습니다.

 

1970년대 초 여의도에서 열린 빌리 그래함 전도 집회와 김준곤 목사가 이끄는 CCC의 집회는 대표적인 복음주의 전도 집회였습니다. 물론 1960-70년대의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으로 인한 민중 신학의 발흥 또한 교회의 대 사회적 대응의 일면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이 시기의 한국교회는 끝이 없는 성장을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전체적으로 한국교회 성장의 르네상스기라고 불릴 정도로 교회들은 가히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였습니다.

 

1980년대의 미국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의 맥가브란 박사의 교회 성장 학파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는 이후에 등장하게 되는 대형교회 운동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그 후 미국 남가주 수정교회의 로버트 슐러의 목회를 벤치마킹한 김선도 목사의 광림교회가 잘 보여주듯이 할 수 있다!”는 적극적 사고방식과 긍정적 목회철학은 무의식적으로 개인정서를 중요시하게 되는 현대인의 심리에 착 맞아떨어지는 결과를 얻게 됩니다.

 

그 후 강남 개발 붐과 함께 충현교회, 여의도 순복음 교회, 광림교회, 금란교회, 사랑의 교회, 서빙고동의 온누리 교회, 분당 지구촌교회와 같은 대형교회가 우후죽순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시대를 듣고 보고 자라온 세대들이 지금 목회자가 되겠다고 신학교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요?

 

한편, 대한민국은 2000년대 들어와서 세계 경제대국으로 진입을 하게 됩니다. 민주화 의식은 매우 높아졌고, 개인주의적 성향도 강하게 되었습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비판적 의식이 높아지게 되었고 경제적으로 먹고 살만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편의주의와 이기적 개인주의와 가까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종교의 절대적 필요성도 엄청나게 줄어들었습니다. 게다가 기독교회는 사회에서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교회주의의 몰입하면서 각종 추한 스캔들을 빚어내면서 곤혹스런 처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일부 목회자들의 탈선은 언제나 각종 소셜 미디어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면서 기독교의 대 사회적인 공신력과 기여도는 날개 없이 추락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외적 성장은 중지되었고,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는 암울한 보고서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학교는 신학생을 받아서 교육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요?

 

 

2. 진단과 처방과 관리

 

다시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왜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도 목회를 못하나?” 이 질문에 대해 다양한 대답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의학적 은유를 사용하자면, “진단처방”, 그리고 사후(事後) “관리가 있습니다.

 

 

2.1. 불루오션과 교과과정

- “신학교육을 받고서도 목회를 못한다.”

 

신학교가 갖고 있는 목표 중에 하나는 모든신학생들이 장차 교회의 사역자로 일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한 사역은 다양합니다. 물론 지역교회의 담임 목회자가 되는 것이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길이겠지만 반드시 모든 사람들이 담임 목회자가 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팀 목회, 부교역자, 상담교사, 성경교사, 선교사, 교목, 사목, 원목, 특수목회(병원 선교, 군대선교, 문서사역, 찬양사역, 자비량선교사 등 사역의 분야는 불루오션”(Blue Ocean)과 같아서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창출해야하는 개척 사역지입니다.

 

 

2.2. 면밀한 사역자 선발 제도

- 신학교육을 받고서도 목회를 못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학교는 일차적으로 교회를 위한 목회자를 훈련시키는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목회자가 되기에 적절한 신학생들을 선별하여 받아들이는 입학과정을 다시금 돌아 보아야할지도 모릅니다. 신학교에 문을 두드리는 학생들이 정말로 목회자가 되기에 적절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 가능성이 있는 이들인지 등을 다각도에서 살펴보아야할지도 모릅니다. 지원자들에 대한 성격심리검사, 인문학적 배경의 유무, 가정환경과 가족관계, 지내온 삶의 이력, 신앙의 이력, 공부할 수 있는 적합도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해야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전향적으로 입학전형시스템을 재조정하거나 새롭게 구축해야할 것입니다.

 

 

2.3. 소명의식의 지속적 점검

- “신학교육을 받고서도 목회를 못한다.”

 

입학제도의 개선은 필요한 조치이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원자들의 소명의식이 얼마나 성경적이고 견고한지를 지속적으로 탐문하여야 할 것입니다. 채플을 통해, 수업을 통해, 학교분위기를 통해, 서로간의 담론과 대화를 통해, 소명에 대한 반복적인 재확인이 삼년동안 지속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각 신학생들이 개인경건훈련을 지속적으로 시행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보안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채플 활성화와 소그룹 모임, 교수와의 면담 등 신학생 개인경건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보완 되어야 할 것입니다.

 

 

2.4. 신학교수들의 공동체적 열정

- “신학교육을 받고서도 목회를 못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신학생들을 교육시키는 신학교수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물론 가르침을 받는 학생들이 신학선생들의 교육과 가르침을 진지하게 배우지 않은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신학교수들이 신학교육에 대한 진지한 숙고와 헌신이 있었는지 뒤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신학교육에 종사하는 교수들은 공동체적으로 신학교육에 대한 일치된 견해를 갖고 교육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신대원의 교육목적과 방향과 현재의 제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개혁주의신학에 대한 일치된 이해, 신학교육 전반에 대한 이해와 숙지, 교수들 간의 정규적인 만남과 토의, 수업시간이나 채플, 소그룹모임과 같은 공식적 모음뿐 아니라 교실 밖에서의 비공식적 만남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소명의식을 반복적 고취시키는 일들이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에는 신학은 단순히 학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교수들 자신이 깊이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신학교수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한 복음의 사역자를 길러낸다는 사명감에 있어서 서로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기 위해서 교수들은 스스로 공동체 의식을 갖고 교수 사역에 종사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과목을 가르치든지 신학생들로 하여금 복음에 대한 열정이 타오를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할 것입니다.

 

진부한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신학교수들은 영적 부모의 심정으로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과 그들의 미래를 위해 기도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각 교수들은 개별적으로 학생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 가르치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의 사병(私兵)을 기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늘나라의 일꾼을 기르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학생들을 때론 엄히 야단을 쳐서라도 개인경건 생활에 힘쓰도록 해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 자신들이 영적으로 여러 면에서 모범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가르친 사역자 후보생들이 사역 일선에서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에 대한 일차적 책임이 교수들에게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신학교는 복음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는 사역자를 배출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종교적 행상인들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신학교육은 먹고사는 일을 위해 호구지책으로 사역자가 되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도 바울처럼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주님이라는 복음에 미쳐 복음을 전하려는 사역자들이 되도록 매진해야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신학교육에 앞장선 신학교수들은 우리들이 맡은 소명과 사명이 얼마나 막중한가를 날마다 깊이 생각하며, 이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3. 신대원의 신학 교육의 목표

- “신학교육을 받고서도 목회를 못한다.”

 

신학대학원은 3년간의 신학과정을 이수하는 사람들을 주님의 나라를 위해 일할 사역자로 간주하고 그들을 제대로 된 사역자로 만들어 가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삼습니다. 소위 사역을 위한 형성”(Formation for the Ministry)을 목표를 삼고 신학교육에 임해야 합니다. 신대원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저는 세 가지 측면에서 신학생들이 사역자로서 형성되어 가기를 소원합니다. 다음의 세 가지를 신대원 교수들께서 깊이 명심하여 시시때때로 이 사실을 학생들에게 각인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a. 영성 형성(spiritual formation)

      - 하나님의 영에 이끌리는 삶

      -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삶

      -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삶

 

b. 지성 형성(intellectual formation)

      - 하나님과

      - 인간과

      - 피조세계에 대한 일관된 인식체계를 수립하는 것

 

c. 덕성 형성 (virtue formation)

      - 성경적 덕성(,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들, 팔복의 요건들 등)함양

      - 개인적 경건 훈련에 힘을 씀. (매일 기도와 성경읽기)

 

 

나가는 말

 

신학교육을 받고서도 목회를 못한다.” 이 도전적이고 자극적인 문구를 다시금 마음 속 깊이 담아두고, 먼저는 신학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우리 신학교수들이 우리 자신들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준 신학생들을 사랑과 긍휼과 애정으로 섬기고 가르칠 뿐 아니라, 무엇보다 우리 자신들이 기도생활, 말씀생활과 같은 개인경건에 힘을 써서 모든 신학생들의 영적 모범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다음과 같이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처럼 신학교수들도 우리의 학생들에게 그렇게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전 4:16)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전 11:1)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 여겨 보라.” (3:17)

 

 

 

[미국 온타리오 호수에 오래전에 파선한 배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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