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학 전통 안에 공존하는 세 가지 유형의 신앙 형태"
류호준 목사
(백석대학교 기독교전문대학원장, Ph.D)
같은 나라 안에서도 지역마다 사람들이 말하는 어투와 억양이 다르듯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동일한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헌신을 고백하면서도 각자의 신학적 전통에 따라 서로 다른 어투와 억양을 갖는다. 그가 태어나고 전수받고 배워온 신학적 배경에 따라 신앙의 표현방법도 다르고 억양도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상 신학적 억양과 어투가 없는 그리스도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감리교인은 감리교인처럼 말하고, 침례교인인 침례교인처럼 말하고, 오순절 교인은 오순절 교인처럼 말한다. 개혁교회 교인들도 개혁교회 교인들처럼 말한다. 개혁교회 교인들에게는 그들만의 신앙적 신학적 문법체계에 따라 말하는 어투와 어투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성경에 대한 견해, 하나님을 경배하는 방식, 믿음을 표현하는 방법,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정치와 사회와 문화와 교육에 대한 이해 등에 있어서 개혁주의 교회는 그들만의 독특한 특성이 있다. 물론 이러한 특성이나 차별성이 다른 전통의 신학이나 교회들을 정죄하거나 무시하는 도구가 된다면 하나님의 거룩하고 보편적 교회를 분열하는 죄악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오히려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추구하는 성경적 교회론의 입장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신학적 특징들을 정교하고 세련되게 발전시킨다면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에 종사하게 되며 또한 다양한 교회적 전통 안에서 우리가 그들과 서로 연합되어간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마치 한 몸 안에 여러 지체가 있듯이, 교회의 단일성과 다양성은 몸으로서의 교회의 이미지 안에 잘 반영되어 있다(참조, 고전 12장). 그리고 이러한 ‘하나와 여럿’의 진리는 삼위일체 교리 안에 뿌리를 박고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 그 자신도 하나이면서 셋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혁교회가 자신의 신학적 특성을 이해하고 자신의 어투와 억양을 좋은 방향으로 개선시키려는 것은 죄스런 일이거나 분파주의적인 것이 아니다. 더욱이 개혁신학 전통의 교회는 여러 종류의 교회들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한다. 개혁교회는 신약시대의 교회에 근거를 둔 보다 폭 넓은 정통적 기독교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교회 교인들은 다른 신학적 전통의 신자들과 함께 천지를 창조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 중 제 2위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성육신하였음과 제 3위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교회에 내재하심을 믿는 신앙을 소유하고 있다. 개혁주의 교회는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통일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의 경륜과, 이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의 사명과, 영광 중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지게 될 것을 고백한다. 보편적이고 전 세계적인 교회의 일원으로서 개혁주의 교인들은 사도신경으로 그들의 신앙을 고백한다.
이제 우리가 서있는 개혁교회의 신학적 특성에 대해 알아보자. 기독교 철학자 니콜라스 월터스톨프는 미국 기독개혁교단의 신학적 특색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분류한 일이 있는데, 나도 그의 유형 구별이 한국의 개혁교회의 신학적, 신앙적 전통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생각하여 그의 분류법을 차용해 설명하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개혁주의 전통 안에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있는데, ‘교리’를 강조하는 사람들, 개인적 ‘경건’을 강조하는 사람들,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하여 ‘변혁’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물론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종류의 신학적 강조점은 서로 겹치기도 하고 서로를 강화하기도 한다.
첫째로, ‘교리를 강조하는 전통’이 있다. 이 전통에 따르면 ‘개혁주의’는 성경에서 가르치고 교회의 고백에 반영된 기독교의 교리들을 중시한다. 여기서 교리라고 하는 것은 신앙 교육을 위한 ‘가르침’을 의미하며, 전수되어온 신앙의 내용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숙지를 요구한다. 교리를 강조하는 전통에서는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라고 질문하기를 좋아하며 성경을 체계적으로 읽고 연구하며 개혁주의 교리에 대한 관심이 높다. 신앙의 지성적인 측면이 강조되며, 교회 내에서 지성적인 교인들이 이 전통에 다수를 차지한다. 이 전통에서 다루어지는 주제로서는 ‘성경’, ‘창조-타락-구속-완성으로 표현되는 세계관‘, ‘은혜교리’, ‘언약 교리’, ‘일반은총론’ 등이 있다. 개혁주의 신학자로서 개혁주의 교리를 자세히 요약한『조직신학』의 저자인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나 안토니 후크마(Anthony Hoekema)와 같은 인물을 높이 평가한다.
아래에서 진술될 경건 지향의 개혁신학이나 여기서 묘사하는 교리 지향의 개혁신학 모두 성경을 교회의 유일무오한 절대 규준으로 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하지만 교리 지향의 개혁신학은 신조 혹은 신앙고백의 정통성 유지에 역점을 둔다는 점에서 경건 지향의 개혁신학보다 조금 더 보수적인 입장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교리 지향의 개혁신학은 교회의 성경적 교리가 오랜 기간 동안 다소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이단 사설을 배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실을 주목한다. 교회는 바른 성경적 교리를 통해 역사적 교회가 지켜온 신조의 정통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칼케돈 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세계 교회 회의를 통해 논쟁을 거듭하면서 역사적 교회의 신앙고백은 교회의 교리로 형성되어 왔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성경의 비판학적 연구가 시작됨으로 오늘날에는 성경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성경에 의한 신학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이런 신학적 상황에서 역사적 교회의 신앙고백을 좇아 백석학원의 신학적 입장을 재천명하고자 함이 교리 지향의 개혁신학의 입장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신앙고백적 전통에는 앞서 언급한 초대교회의 세계 공동 신조들 외에 16세기 종교개혁 시대와 17세기 개혁신학자들의 시대에 작성된 개혁신학의 여러 신조와 19세기 이후 찰스 하지, B. B. 워필드,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등에 의해 형성된 신학적 체계가 포함된다. 이러한 입장을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역사적 개혁주의’라고 부른다.
그런데 교리 지향의 개혁신학이 신조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입장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교회가 신조지상주의를 신봉한다는 것을 우상숭배적 행태이지만, 교회는 신조적이어야한다는 말은 옳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신경을 비롯한 건전한 교회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건전한 전통에 대한 분별은 계시의 말씀인 성경에 근거해서 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이 입장은, 역으로, 주관적인 성경 이해를 피하기 위해 교회의 역사와 전통에 자문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러한 입장은, 교회와 교회 전통을 절대시하여 성경 해석도 교회의 결정과 가르침에 종속된다고 보는 로마 가톨릭의 입장이나 성경을 주관적으로 이해하고 교리 없는 기독교를 주장하는 신령파적 교회 이해와 달리, 계시의 말씀과 교회의 역사와 전통을 양자의 긴장 관계에서 이해하려는 종교 개혁자들의 올바른 교회관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둘째로, ‘경건을 강조하는 전통‘이 있다. 이 전통에서는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중요시한다. 이들이 던지는 질문은 “믿음의 길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체험하는가?”이며, 한국적 개혁주의 교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색이었다. 기도생활과 성경읽기, 부흥회나 사경회와 같은 집회, 주일성수와 십일조 생활, 전도와 구제와 같은 것을 중요시 한다. 한국적 상황에서 요즈음 경건을 영성과 동일시하거나 혼용하지만 원래 개혁주의에서 말하는 경건은 ’실천적 경건‘을 의미한다. 이 전통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관계‘를 중시하고, ’성령의 내주‘, ’감사하는 삶‘, ’교회생활의 즐거움‘ ’말씀과 성례에 대한 깊은 애착‘을 갖는다. 초기 한국의 개혁주의 교회들은 이런 전통을 중요시하였으나 지금에 와서 이런 전통이 빛을 바래고 있는 것 같아 크게 아쉬움이 있다. 세계 교회사적으로 미국 대 각성 운동의 조나단 에드워드의 지성적 경건은 교리적 강조와 경건에 대한 강조를 함께 묶어주는 좋은 예일 것이다.
세 번째 유형의 강조점은 ‘변혁주의자’로서 개혁신학이다. 이런 측면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기독교 세계관과 인생관,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 문화의 변혁자로서 그리스도 등과 같은 주제들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변혁주의자의 주된 관심사와 질문은 “어떻게 복음을 세상에 연결시킬 것인가?”이다. 여기서 다루는 주제들 중에는 ‘주님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나라’, ‘말씀봉사와 행위봉사의 관계’, ‘문화적 사명’, ‘기독교 학교’, ‘신자의 소명과 직업의식’, ‘영역 주권설’ 등과 같은 것들이 있다. 변혁을 강조하는 개혁주의 전통의 선봉장으로는 정치가며 신학자며 교육가로서 네덜란드 수상을 지낸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가 있다. 그는 네덜란드 자유대학교를 세우고 하나님 주권사상과 일반은총론, 영역 주권설 등을 통해 신앙과 학문을 접목시키는데 큰 공헌을 남겼다. 그의 영향력은 사후에도 계속되어 미국과 남아공 등에 이르게 되었고, 미국의 경우 미시간 주 그랜드래피츠 시에 있는 칼빈 대학(Calvin College)을 중심으로한 카이퍼 추종자(Kuyperian)들을 통해 학문적 주류에 진입하게 되었다. 칼빈 대학이 배출한 두 명의 저명한 철학자들인 앨빈 플랜팅가(Alvin Plantinga)와 니콜라스 월터스톨프(Nicholas Wolterstorff)는 현재 수 천 명의 회원을 가진 미국 기독교 철학회(Christian Philosophical Association)를 발족시켰으며, 학문과 신앙을 접목시키는 획기적인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었다. 지금은 노틀담 대학 철학과에 있는 앨빈 플랜팅가, 동 대학 역사학과의 조지 마스덴(George Marsden), 예일 대학교의 니콜라스 월터스톨프, 풀러 신학교의 총장 리처드 마우(Richard Mouw) 등은 대표적인 개혁주의 지성인들로서 자신들의 교단적, 인종적 배경을 넘어 개혁주의 학문의 탁월성을 전 세계에 드러낸 인물들로 평가받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아브라함 카이퍼의 프린스턴 대학교 스톤 강좌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린스턴 신학교에 “아브라함 카이퍼 대중 신학 연구소“(The Abraham Kuyper Center for Public Theology)가 만들어지면서 ”아브라함 카이퍼 기념 연례 강연”(The Abraham Kuyper Prize and Lecture)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고, 최근에는 시카고의 위튼 대학에도 아브라함 카이퍼를 전공한 흑인교수(Vince Bacote)가 아브라함 카이퍼적 개혁신학의 전도사가 되었다는 점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변혁적 사고는 창조세계에 속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인식하고,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 되심(Lordship)을 구현하는 일에 앞장서게 한다.
이상에서 말한 세 가지 종류의 강조는 일종의 흐름을 형성하면서 개혁신학의 거대한 물줄기를 형성해왔다. 보다시피 세 가지 유형은 서로 중복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교리 중심적이고, 경건 지향적이고, 문화 변혁적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그 역사 및 관념상 서로 분명하게 다른 세 가지 접근방법을 대표하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