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예배 사회자 자리 유감”

 

 

얼마 전 설교부탁을 받고 모 교회 여전도회 헌신예배에 참석했다. 예배 사회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순서를 맡은 분들은 모두 한복으로 곱게 차려입은 여전도회 회원들이었다. 그분들이 사회와 기도와 헌금 순서와 광고까지를 맡아 인도했다. 예배가 시작될 즈음에 나는 강단으로 올라갔다. 예배를 위해 잠깐 머리를 숙이고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시간을 보니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 기다렸다. 사회를 보실 여전도회 회장이 강단에 올라오실 것을 기다린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상하다 생각하고 두리번거렸다. 한참 후에 어디선가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대상 옆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기다렸던 권사님이 강단 아래쪽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곳 작은 강단에서 예배 사회를 보는 것이었다.

 

요즈음 새로운 교회당을 건축하면서 공연장처럼 짓는 경우가 있다. 강단은 꽤나 높은 곳에 위치해있다. 전통적으로 그곳을 윗강단이라고 부른다. 없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아래에는 아랫강단이 있다. 사실 아랫강단이 아니라 헌금바구니를 놓는 곳이거나 혹은 평신도들이 나와 광고를 하거나 오늘의 경우처럼 사회를 보는 장소로 사용된다.

 

어디선가 이 문제를 논한 일이 있지만, 교회당 안에는 원래 윗강단, 아래강단이란 개념은 없다. 굳이 설명하자면 두개의 강단은 각각 설교단(Pulpit)과 성찬상(Lord's Table)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따라서 아랫강단이라고 부르는 곳은 여성이나 평신도와 같은 이류급 사회자(!)들이 서서 예배를 인도하는 장소가 아니다. 또한 그곳은 찬양사역자들이 찬양을 인도하는 곳도 아니다. 그곳은 성찬의 떡과 포도주를 놓는 곳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장로교회들은 자기들의 오랜 신학적 예배 전통에 무지한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개혁교회의 전통에는 소위 ‘은혜의 방편’(means of grace)이라는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방편으로 ‘설교’와 ‘성찬’과 ‘세례’를 두셨다는 것이다. 설교단(pulpit)은 모든 교회에 있지만 성찬상(Lord's Table)이나 세례단(baptismal pont)을 두는 곳은 보기가 드물다. 성찬상의 경우는 있어도 그곳에 성찬상인 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저 헌금 바구니 정도 올려 놓는 책상 정도로 알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전도회 헌신예배 때 여전도회 임원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것을 가지고 뭐라고 할 의사는 전혀 없다. 그러나 여성이기 때문에 혹은 평신도이기 때문에 강단에 올라서서 사회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면 너무 시대착오적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아직도 윗강단은 구약적으로 지성소에 해당하고, 목사는 구약의 제사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래서 목사만 윗강단에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면, 그건 매우 심각한 신학적 오류임에 틀림없다. 강대상 유감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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