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18 10:00
“하나님께서 어떻게 결말을 맺으시는지 기대하세요.”
누가복음 1:67-79
우리는 무엇인가를 늘 기다리고 삽니다. 어렸을 때, 우리는 빨리 컸으면 합니다. 생일이 빨리 왔으면 합니다. 십대엔, 달콤한 첫 사랑을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학생시절엔, 언제나 졸업하나 합니다. 졸업한 후에는, 취직을 기다립니다. 직장을 잡으면, 승진하기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무엇인가 더 이상 기다릴 것이 없다면…. 삶은 끝일 겁니다. 어떤 의미에서, 구약 성경 전체는 ‘기다림’의 이야기입니다. 구약 성경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들에 관해 말합니다. 이러한 ‘기다림’이 예수님의 출생 후에 예루살렘 성전에 앉아 있던 시므온 안에 농축되어 이제 막 터지려는 순간에 이르게 됩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던’ 사람입니다(눅 2:25). 그의 기다림은 이스라엘 이야기의 결국을 기다림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던 분의 오심과 함께 ‘기다림’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기다림은 계속됩니다. 성령이 교회 위에 부어졌을 때에도, 기다림은 계속됩니다. 바울은 초기 기독교인들을 가리켜,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온 창조 세계가 이러한 기다림 가운데 있다고 말한바 있습니다(롬 8:19).
아브라함과 함께 시작한 하나님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출생으로, 예수님의 부활로, 예수님의 영이 교회 위에 부어짐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아직 ‘끝’에 도달하지 않았습니다. 대단원의 막은 아직도 미래에 남겨져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 모두는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앞서간 우리의 성도들과 함께, 그리고 모든 피조물들과 함께, 우리는 간절히 하나님의 이야기가 그 장엄한 절정에 이르기를 기다립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이야기가 전개될 것인가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다림을 우리의 주님이 우리를 향한 ‘부르심’(calling)으로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가랴는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 밑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종 다윗의 집안에 구원의 뿔을 높이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능력이 예수 안에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뿔 안에 하나님의 이야기의 성공적인 절정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공적인 결과를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제 담담한 심정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발뒤꿈치를 들고, 학수고대(鶴首苦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결말 맺으실 것인가를 기다려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 이스라엘들이여, 주님을 기다리십시오, 주님으로부터 구원하시는 위대한 능력이 올 것입니다.
주님, 당신의 오심을 학수고대하는 크리스천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