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자유대학교를 처음 개교하였을 때, 신학자며 정치가며 학교 설립자였던 아브라함 카이퍼는 여러과목을 가르쳤다. 그중 하나가 설교학이었다. 학생들은 카이퍼로부터 설교본문을 받아 일주일후에 설교요약문을 가지고 카이퍼의 집에 와야했다. 약 10분동안 카이퍼는 요약문을 집중해서 읽었다. 그리고 아들을 교육시키는 아버지처럼 학생에게 하나씩 지적하면서 말하곤 했다. 그중 한 예가 있다. 이 글을 통해 아브라함 카이퍼의 설교관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수 있다.
"사랑하는 아들아, 아주 좋은 설교요약을 만들어왔군. 일목요연하고 전체적으로 구성이 잘 되었네, 논리적으로도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잘못된 곳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 ---- 그렇지만 이대로 설교할 수는 없어! 자네는 내가 설교문이나 명상문을 준비할 때 어떻게 하는지 아는가? 자네에게 말해주지. 먼저 내 마음에 있는 본문을 통해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핵심'(idea)을 분명하게 파악하여 드러내는 것일세. 그런데 이 핵심을 선명하게 보려는 과정에서, 내 마음에는 그것에 반대하는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한다네. 그러면 나는 그 목소리들을 귀담아 듣는다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그 소리들이 온전히 잠잠해 질때까지 나는 그 소리들과 씨름한다네. 이렇게 해서 설교문을 만들어가는 것이지.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진 설교는 항상 논리적으로 완전하지는 않다는 사실일세. 아마 설교문이 여기저기 일관성이 없는 것 처럼 보일찌도 몰라.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아, 그래도 좋으니 바로 그때 설교를 하게나." 출처, T. Ferwerda, "Dr. Kuyper als hoogleraar," in Gedenkboek, 1937, pp. 211ff.
우리의 설교도 이와같지 않을지? 처음에는 아주 논리적으로 잘 정된되고 매끄럽게 흘러가는 설교를 준비하려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잘짜여진 설교문 보다는 우리를 위해 애끓는 그 분의 심장을 담아내려 하지요. 때로는 투박스럽고, 세련되지 않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우리는 절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