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기독교윤리와 안락사 (安樂死 : Euthanasia)

A. 서론
1. 안락사(Euthanasia)란 두 개의 헬라어가 합해진 단어로 “좋은 죽음”이란 뜻이다.
2. 그리스-로마시절에는 사후(死後)에 관하여서 거의 관심이 없었다. 시세로(Cicero)란
   철인(哲人)의 말속에 잘 표현되어 있다: “우리가 고통 해 할 이유가 있는가? 문은 활짝
   우리에게 열려져 있다. 그 문이란 바로 죽음이다. 죽음은 영원한 피난처이며 그 안에서는
   아무 것도 감지(感知)할 수 없다.”
3. 현대의 세계에서는 안락사의 의미란 단지 좋은 죽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능동적인 간섭행위와 연관을 맺고 있다.  
4. 종종 ‘능동적’ 안락사와 ‘수동적’ 안락사를 구별하곤 한다. 능동적 안락사란 의도적으로
   개입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동적 안락사란 의료수단을 통한 개입을
   멈춤으로써 죽어가는 과정(death process)을 방해하지 않는 경우를 가리킨다.
5. 안락사란 단어는 종종 매우 애매모호한 용어가 되곤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도
   ‘좋은 죽음’을 원하기 때문이다.
6. “부모의 동의에 의한 능동적 안락사”의 경우, 문제가 되는 윤리적 이슈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다: “미미의 경우 그가 당하고 있는 구체적인 고통과 죽음의 현장
   속에 크리스천의 순종적 사랑은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 것인가?”
  
B. 미미의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윤리적 권위는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가?
1. 신학과 성경으로부터 나오는 도덕적 지시사항들에 관하여
a. 사랑과 생명은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나 성경에 있어서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사랑은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다. (크리스천의 결혼, 요 3:16; 요일 3:14)
b.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은, 사랑은 결코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반증(反証)적으로 보여주는 명령이다. 다시 말해 생명을 보존하는 일이 궁극적 관심사다.
c. 성경에 나타난 고통이나 그리스도가 당하신 고통은 온갖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그리스도는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따르려면 고통은 필수적으로
   내재해있다고 하신 일이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 있어서 고통은 그 구성 성분이
   된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당면한 문제는 내가 이 고통을 피할 것인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정당한 이유 때문에 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가이다. 특히 미미의 부모는
   이러한 질문에 직면해야 했다. 고통의 의미에 대한 기독교적 가르침이 정립되어야 한다.  
2. 보편적 관행(慣行) 으로부터 나오는 도덕적 지시사항들에 관하여
a. 현재 사회의 법은 능동적 안락사를 불법으로 선언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국가는 그리스도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권위를 인가(認可)하고 있다는 점에서 순종해야
   한다. 이러한 우리의 순종은 하나님의 뜻에 반대가 되지 않는 한 계속되어야 한다.
b. 전통적인 의학 윤리는 “살인하는 일”과 “죽도록 놔두는 일”을 구별한다.
c. 죽음과 죽어가는 일에 관하여 내려지는 도덕적 결정들을 더욱 복잡하게 하는 일들이
   의학의 현장에서 일어난다. “부모의 동의에 의한 능동적 안락사”와 같은 경우처럼,
   최종적인 도덕적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현금 의료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조심스런 조사가 요청된다.
      
C. "부모의 동의에 의한 능동적 안락사”에 나타난 구체적인 문제점들에 관하여
1. "No Code"를 주문하는 것이 능동적인 안락사와 동일한가?
a. "No Code"란 어떠한 의학적 치료수단과 방법이 더 이상 적용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치료방법의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심지어 No Code 때문에 호흡을
   인공적으로 연장시키지 않기 때문에 죽음의 과정이 더욱 가속화되기도 한다.
b. 그러나 "No Code"와 능동적 안락사를 동일시 할 수는 없다. No Code는 죽음이 임박해
   왔다는 것을 전제로 하며, 다가온 죽음을 상대적으로 잠시 정지시키기 위해 비상적인
   수단과 노력을 쏟지 않겠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2. 그들의 사랑하는 딸의 고통을 바라보고 있는 부모의 단장의 고뇌를 그 누구도 가벼운
   것으로 간주해서는 아니 된다. 그러나 그들이 당하는 고통이 딸에게 의학적 치료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중지시킬 것인가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데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해서는 아니 된다. 환자의 복리와 안정은 부모의 고통보다도 더욱 중요한 도덕적
   요인이다. 그러므로 가족이 당하는 고통 때문에 환자의 죽음을 가속화 시켜도 된다는
   주장은 도덕적으로 아무런 보장이 없다.
3. 이 경우 미미에게 있어서 무엇이 진정한 안녕이 되는가를 찾아내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첫째, 미미의 병은 의학적 치료의 범위를 벗어나 있다. 죽음의 과정은 이미 시작 되었다.
   둘째, 죽음의 과정은 도덕적으로 매우 상관성이 있는 요소이다. 죽음의 과정에 관하여
   결정을 내리는 일은 의학의 영역 안에 속한 일이다. 물론 이러한 의학적 결정에 오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도덕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방향을 제시하기에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의학계에서 “No Code"를 말할 수 있을 만큼, 의학이 죽음과 죽어가는 일에
   관하여 충분한 지식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미미의 경우가
   그러하다 할 수 있다.
   셋째, 의학적으로 불치의 병에 걸려있는 환자라 할지라도 그들의 생명이 방치되어 있지
   않고 “돌보아지고”있다는 사실을 느끼도록, 그렇게 돌보아져야 할 것이다. 딸이 죽음과
   죽어가는 문제에 관하여 질문을 할 때에, 미미의 어머니는 자기가 지금 사랑하는 딸을
   보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야 할 도덕적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질문을 피하는  
   일은 미미에게, 어머니가 딸이 가장 도움이 요청되는 상황으로부터 한걸음 물러서고
   있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만일 나에게 그러한 일이 닥쳤을 경우 그러한 질문에 대하여
   대답할 만한 용기와 넉넉함을 가질 수 있는지는 몰라도, 한 가지 확실히 믿는 사실은
   만일 부모가 여기서 실패 한다면 깊은 사랑의 보살핌은 이미 상실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할 수 있다.
   넷째, 미미가 당하는 고통의 혹독함, 그리고 도저히 회생될 수 없다는 의학적 현실성
   앞에 선 미미의 어머니는 이 고통스런 문제에 대한 대답으로써 “능동적 안락사”에 대해
   Yes를 내렸다. 이 어머니의 Yes는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이해할만 하나 도덕적으로 잘못
   이라 생각한다. 비록 진통제를 투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육체의 기관의 저항력을 악화
   시키게 되어 간접적으로 죽음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하더라도, 고통과 통증을
   악화시키기 위하여 진통제를 투여하는 일은 도덕적으로 허용이 될 수는 있다. 이러한
   경우라 할지라도 진통하는 목적과 의도는 통증을 가라앉히자는 것이지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고통을 줄이는 일과는 구별된다는 사실은 도덕적으로 상관성이
   있으며 이 구별은 실제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다섯째, 미미의 경우 도덕적으로 절대적 명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실질적인
   지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환자의 상태가 어느 정도의 상태에 있을 때 “No Code"의
   결정이 도덕적으로 옳은가, 어느 정도까지 진통제를 투여해야 하는가, 죽음의 과정을
   올바로 결정해야할 순간은 언제인가 등과 같은 질문들은 모두 도덕적으로 중요한 요인들
   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코 수학적인 계산으로 나올 수가 없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도덕적 확신에 의해 결정되고 대답되어지는 질문들이다. 도덕적 확신은
   도덕적 원리들에 대한 순종심, 그리고 실제적 실천 속에 나타나게 되는 도덕적 지시
   사항들에 대한 예민성, 그리고 진리 안에서 살려는 기상(氣像 : spirit)등이 합하여져서
   이루어진다.

D. 생각해 볼만한 문제들.
  1. 생명을 단축시키는 일을 정당화시킬 만한 경우들이 있습니까?
  a. 불치의 환자를 치료하는 비용이 그 환자의 가족에게 너무나도 견디기 힘든 짐이 되기
    때문에 치료를 거절하는 경우
  b. 고통과 압박감 때문에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
  c. 의료 시설이 없기 때문에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경우
  d. 육체의 한 부분을 절단해야 살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을 그대로 보존한 채로
    살다가 죽고 싶어 해서 절단을 거절하는 경우
  2. 도덕적 확신은 어디로부터 생겨납니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새로운 홈페이지로 이사합니다. 관리자 2020.08.03 8193
공지 류호준 교수가 추천하는 한글 주석 [3] 류호준 2013.03.09 200900
894 묵상을 위한 글: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류호준 2011.01.27 8531
893 묵상을 위한 글: “광야에서 하늘로 난 유일한 길” 류호준 2011.02.25 8518
892 짧은 글: “예배 사회자 자리 유감” 류호준 2011.03.26 8462
891 구약의 메시야 사상 문향연 2005.12.16 8444
890 묵상을 위한 글: “우리를 포로 삼는 삼중(三重) 세력” 류호준 2011.03.19 8436
889 목사님의 목소리가 듣고싶어서.. 김계환 2006.04.25 8433
888 생활의 발견 - "한 여름에 입은 겨울 양복 유감" [3] 류호준 2007.02.10 8407
887 짧은 글: 엠마오로 가는 길 (눅 24장) [1] 류호준 2011.05.27 8399
886 묵상을 위한 글: “제자도의 실제” 류호준 2011.01.30 8399
885 [개혁주의 선교신학 논문집] 창간호에 붙여 류호준 2006.11.17 8397
» 기독교윤리와 안락사: 아랫 글(212번)에 대한 잠정적 대답 류호준 2006.11.09 8395
883 생활 에세이: “생체리듬과 샬롬” 류호준 2011.01.12 8376
882 [re] 추신: 주기도문 해설 정보 류호준 2006.01.26 8352
881 일상 에세이: "오바마 이야기" [1] 류호준 2009.03.30 8319
880 묵상을 위한 글: “맨몸으로 하나님 앞에 서기” file 류호준 2010.08.05 8303
879 기도에 관한 것과.... 한 복덕 2006.05.18 8284
878 에셀나무에 관하여? = 기념식수 류호준 2005.12.16 8278
877 일상 에세이: "가은이 이야기" [8] file 류호준 2010.01.20 8274
876 짧은 글: 신대원장 취임사 file 류호준 2011.03.18 8238
875 생활의 발견 - ICU 유감! [2] 류호준 2006.12.06 8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