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3 22:26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 (암 5:25)
물론 기대되는 대답은 ‘아닙니다!’이다. "아닙니다. 우리가 제사의식을 통해서 드린 것은 희생이나 소제물이 아니라, 당신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그 순종은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달리 말해, 광야 사십 년 시절, 이스라엘이 야웨 하나님과 맺은 관계는 희생 제사나 예물, 혹은 제의에 의해 결정되거나 특징지어지지 않았다는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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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광야의 학교에서 예배의 본질을 배웠다. 정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공의를 사랑하고 성결을 좋아하시는 야웨 하나님께 무엇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가를 배웠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적인 삶을 사는 것이었다. 다시금 삶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예배임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수사학적 질문은 묵시적 비난이었다. “너희가 광야시절 제의를 통하여 내게 가지고 온 것은 실제로 공의와 정의 그리고 순종이 아니었느냐! 그것을 내가 원하고 요구하지 않았었는가!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하는 우회적 질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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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인들은 종교축제일 때 그들이 섬겼던 이방신들(‘식긋’과 ‘기윤’)을 기리는 우상들을 들고 행진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즐거운 행진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섬겼던 하늘 신들 우상들을 머리위로 들고 멀고도 먼 이방의 땅으로 행진하여 갈 것이다. 누구에 의해서 그럴 것인가? 만군의 하나님, 다시 말해서 그들이 섬기던 하늘의 신들의 ‘신’이신 만군의 하나님에 의해 그들은 일렬로 사로잡혀 끌려갈 것이다! 끌려가면서 그들은 하나님이 하늘의 신들의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때는 늦었지만 말이다!
-류호준,「아모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