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박재은,『칭의, 균형 있게 이해하기』(부흥과개혁사, 2016), 182쪽, 정가 9,500원

 

갓 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젊은 신학자의 참신한 글이다. 길지 않는 지면 속에 복잡한 논의를 깔끔하게 도식화시켜 전개하는 글 솜씨에 박수를 보낸다. 책의 부제에서 잘 나타나듯이, 이 책은 “하나님의 주권 대 인간의 역할”의 황금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 가운데 개혁신학의 주요주제인 “칭의”(의롭다 여김을 받다)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세심하게 다룬다.

 

쉽게 이야기해서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고 하셨다면(칭의), 그런 칭의를 “아멘! 그렇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하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칭의를 받아들이는 믿음은 인간의 행위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가 남게 된다. 믿음과 행위는 칭의의 조건이나 근거인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에 대해 두 가지 입장이 있을 것이다. 한쪽은 “칭의를 받아들이는 믿음은 ‘행위’가 아니다. 칭의를 받아들이는 믿음도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의 ‘선물’이다.”라고 주장할 것이고, 다른 한쪽은 “칭의를 받아들이는 믿음은 인간 편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칭의에 있어서 주관적 믿음의 위치는 어디인가? 그러나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이다.

 

제 1장에서 저자는 네 가지 유명한 학파들을 “균형 잃은 칭의론”이란 제목 아래 나름 조리 있게 소개하고 그들의 장단점을 잘 드러낸다. 아르미니우스주의는 칭의를 위한 조건으로서 인간의 믿음/행위를 강조하였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반(反)-율법주의가 있었으며, 다시 반(反)-율법주의에 반대하여 인간 행위의 필요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강조하는 신(新)-율법주의가 있다. 한편 칭의 때 하나님의 주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는 하이퍼 칼빈주의도 있다. 여기서 독자는 칭의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역할 중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될 경우 그에 대한 반동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 그래서 저자는 “균형 잃은 칭의론”이라고 제목을 붙였나 보다.

 

제 1장이 과거의 균형 잃은 칭의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면 제 2장에서 저자는 현대의 균형 잃은 칭의론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도입부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굳게 믿으면서도 서로 다른 의미에서 믿음을 이야기 하고 있는 두 신학적 캠프를 소개한다. 하나는 주재권, 즉 하나님의 주되심(Lordship)을 강조하는 입장으로써,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적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다고 주장함으로써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임과 동시에 순종과 헌신의 열매를 수반하는 믿음이라고 주장하는 캠프를 소개한다. 또 다른 캠프인 “무상은혜론자”(공짜 은혜론)들은 구원은 하나님의 무상 은혜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결단해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단다. 무상은혜 캠프에서 말하는 믿음은 주재권 구원 캠프에서 말하는 구원보다 훨씬 용이하고 쉬워 보인다는 것이다. 결단을 하면 된다는 듯이 들리기 때문이다. 무상은혜 칭의론은 앞서 이야기한 반-율법주의나 하이퍼 칼빈주의의 칭의론과 많은 유사점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칭의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극단적으로 몰고 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편 신-율법주의와 비슷한 칭의론을 주장하는 현대의 신학사조로 저자는 “페더럴 비전”(federal vision)의 칭의론을 거명한다. 페더럴 비전의 창시자로는 노마 셰퍼드 교수를 들고 있는데, 이 분은 내가 1980년대 미국 캘빈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한창 신학적 소용돌이를 일으켰던 분이었고, 특별히 그의 칭의론이 큰 이슈가 되었다. 페더럴 비전 캠프에 속한 이들은 믿음이 칭의의 조건인 듯 말하고 있기 때문에 신-율법주의라는 범주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그들에게(예, 노마 셰퍼드) 믿음은 그냥 믿음이 아니라 살아있고 역사하고 순종하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믿음은 마치 일종의 행위를 수반해야하는 믿음이고 이런 믿음이 있어야만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다는 듯이 들린다. 그래서 그들은 앞선 세대의 신-율법주의와 연대를 같이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치밀하고 정곡을 찌르는 메스에 대상이 되는 또 다른 신학조류로 “바울의 새 관점 학파”가 거명된다. 새 관점 학파에 대해 산뜻한 개괄을(샌더스, 던, 라이트) 한 후에 저자는 신약학자 톰 라이트를 좀 더 자세하게 다룬다. 라이트의 구약과 신약에 대한 통전적 해석이 칭의에 관한 새 관점 학파의 격을 한 층 더 높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후에 새 관점 학파의 칭의론의 장단점을 나름 잘 짚어내고 있다. 이 부분에선 조직신학자와 성서학자 사이의 미묘한 간극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여러 번 목도되기도 한다. 물론 저자는 성서학자 가운데서도 라이트보다는 파이퍼 쪽에 기울어지고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저자의 평가는 공정하게 보인다. 그러나 좀 더 전통적인 입장을 선호하고 있는 것 같다.

 

제 3장에서 “다시 균형 잡기”라는 제하에 저자는 칭의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 강조와 인간의 역할 사이의 균형, 믿음과 행함의 균형 잡힌 관계, 믿음과 순종의 관계 등을 네덜란드의 개혁신학자들인 헤르만 바빙크와 헤르만 비치우스의 입장에서 조명하면서 균형 잡힌 칭의론은 제시하려 한다. 저자가 이들을 내세워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 결정적 이유는 그들이 칭의에 있어서 능동성과 수동성을 구별해서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 편에서의 칭의는 능동적 칭의이고, 인간 편에서의 칭의는 수동적 칭의”라는 것이다. 이런 경우 주관적 믿음은 그 둘 사이에 서 있게 된다. 달리 말해 논리적으로 주관적 믿음은 하나님의 능동적 칭의(다른 말로 객관적 칭의) 이후에 오고, 수동적 칭의는 논리적으로 주관적 믿음 후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하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은 주관적 믿음 후의 칭의, 즉 수동적 칭의를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바빙크의 신학적 지도를 받아 칭의를 “능동적 칭의와 수동적 칭의”로 구별하게 되면 반-율법주의와 신-율법주의 모두의 양극단의 불균형을 바로 잡아 줄 수 있다고 제안한다. 능동적 칭의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칭의를 강조하기 때문에 새롭게 율법을 지켜야한다는 신-율법주의적 칭의론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으며, 수동적 칭의는 하나님의 주권을 극단적으로 주장하여 율법준수(행위)가 전혀 필요 없다고 말하는 반-율법주의적 칭의론의 오류를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나가면서: 저울대 위에서 균형을 맞추기는 언제나 어렵다. 조금만 방심하면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마련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토라의 가르침을 귀담아 들어야할 것 같다! 칭의론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다보면 인간의 역할은 전혀 무가치하다고 할 것이 분명하고, 반대로 인간의 역할을 강조하다보면 칭의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리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양극단을 피하면서도 칭의론을 균형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중도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 신학적 지형도가 분명하게 그려지는 책이다. 물론 신학적 스팩트럼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읽으면서 알게 되겠지만 말이다. 어려운 신학적 이슈를 차근차근 풀어 설명하는 모습이 노련한 학자의 젊은 날을 시간을 거꾸로 돌려 보는 것 같다. 상반되는 신학적 입장들에 대해 과도하게 말하지 않고 절제된 어조로 명쾌하게 그려내고 있는 저자의 앞길을 축복한다. 칭의론에 관한 한 선명한 신학적 지도를 소유한 기쁨이 있었다. “박재은 박사, 수고했습니다.”

 

저자 박재은 박사는 미국 캘빈신학교에서 조직신학으로 박사학위(2016년)를 취득하였다. 학위논문 제목은 Jae-Eun Park, “Driven by God: Active Justification and Definitive Sanctification in the Soteriology of Herman Bavinck, Alexander Comrie, Herman Witsius, and Abraham Kuyper” (Ph.D. Diss. Calvin Theological Seminary,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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