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04 17:33
“마침내 시인이 온다!”
단단한 신학적 기반위에 거룩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글을 쓰는 학자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특별히 성경을 텍스트 삼아 그것의 본래적 의미를 창조적으로 재구성하여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에게 전하는 성서학자들은 더더욱 많지 않습니다. 성서학계에서 학자들이 하는 일은 고고학자처럼 주로 흙과 먼지들과 세월로 덮여 있는 본문을 발굴하여 그 형체를 복원하는 일에 집중합니다. 물론 그들이 하는 일은 그 나름대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복원해낸 텍스트는 무미건조하기 그지없습니다. 텍스트는 원래 그런 텍스트로 존재하도록 되어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숨을 쉬고, 근육을 움직이며, 온 몸으로 꿈틀대며 앞에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오며 독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으며 힘을 공급하는 원천이 되도록 존재했습니다. 텍스트로 숨을 쉬게 하여 발설하도록 돕는 사람들이 성서학자들이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구약학자 월터 브루그만의 공헌은 독특하고 유별납니다. 그가 쓴 수많은 글들과 책들을 읽다보면 성서해석이라는 것이 기계적이고 무미건조한 공식을 본문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창의적이고, 도발적이고, 자극적이며 동시에 정통적이고 권위 있는 해석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읽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열러주기도 합니다. 물론 그의 해석학적 입장에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현대의 성서학자 가운데 브루그만처럼 생동력 있게 텍스트를 다루는(?) 학자는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아주 오래 전(1989년)에 예일 대학교 신학부에서 설교에 주안점을 두는 저명한 강좌(라이먼 비처 강좌)에 초대를 받아 강연을 했습니다. 그가 강연한 내용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지금 소개하는 책입니다. 그는 자기가 살고 있는 당시의 미국 사회와 문화(전통적인 기독교 문화)를 직시하면서 성경본문을 무시하는 문화요 다른 한편으로는 성경본문을 통제하려는 문화라고 단정 짓습니다. 그런 문화 속에서 설교자는 자연스레 해석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진단합니다. 브루그만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설교자의 위기, 해석의 위기, 성서연구부문의 위기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부르그만은 이 위기들을 염두에 두고 설교자들과 성서학자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시인이 되라고! 아니 구약의 예언자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시인이었다고! 성경은 이 죄 많고 일그러진 세상에 대한 “대안의 세계”를 현시하는 책이라고!
아주 오래된 책이지만 이번에 성서유니온에서 새롭게 번역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참 고마운 결정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한국어 책임 편집자인 성서유니온의 천서진 목사는 내 밑에서 구약학(M.Div. & Th.M)을 전공하였고, 또한 이 책의 지속적 가치를 알기에 새로운 번역 작업 과정을 감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목사들, 설교자들, 신학도들에게 강력 추천하는 바입니다. 커피 3잔 값도 되지 않는 착한 가격입니다. 커피 향은 사라지고 커피 물은 없어져도 오고 있는 시인은 계속해서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Finally Comes the Poet! (월트 휘트만). 아래는 이 책의 표지에 실린 추천 단평입니다.
브루그만은 외친다. 설교는 병든 세계를 향한 대안의 세상을 시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라고. 죄책과 소외, 분노와 탐욕으로 점철된 이 세상에 치유와 친교, 소통과 자유를 제시하는 천상의 목소리라고. 그에겐 복음이 결코 밋밋한 산문체일 수 없다. 도전적으로 자극적이며 전복적인 구약 본문 읽기를 통해 브루그만은 복음을 산문체적으로 축소 환원시키려는 현대의 시류에 급제동을 건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말씀분이다. 하지만 말씀이면 충분하다”는 그의 마지막 권고에는 말씀의 전복적 힘을 믿는 결기로 가득 차 있다. 예언자적 설교자이기를 꿈꾸는 목회자, 신학생에게 이 책을 진심으로 권한다.
류호준 교수,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학
월터 브루그만, 《마침내 시인이 온다》김순현 옮김 (성서유니온, 2018). 236쪽. 정가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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