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누가 알아듣겠나? 누가 이해하겠나?”

- 마태 5:25 번역 유감 -

 

한글성경을 읽다보면 때론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있다. 무슨 소린지 모를 때가 그렇다. 분명 한글을 읽고 있는데도 그렇다. 내가 잘 이해가 안 될 정도라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그러리라. 성경학자라서 성경을 잘 이해한다는 말은 아니다. 정상적인 한글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한글 성경의 문자(글자)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한글 성경(개역이든 개역개정이든)에는 가끔 헷갈리게 하는 문자들이 나온다.

 

엊그제 마태복음서에 들어있는 “산상설교”(Sermon on the Mount)를 차근차근 읽었다. 참고로, 아래 문구는 다 똑같 것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갈릴리 지방의 한 산위에서 하신 말씀들을 모아둔 것이다.

                “산상수훈”(山上垂訓, “산위에서 가르침을 베풀다.”)

                “산상보훈”(山上寶訓, “산위에서 주신 보화 같은 가르침”)

                “산상설교”(山上說敎, “산위에서 하신 설교”)

 

아주 늦은 밤 시간이었는데 읽다가 그만 깜빡 졸았다. 졸음을 견디면서도 읽다가 뭔가 이상한 단어가 스쳐가는 느낌이 들었다. 잘못 읽었겠지 하다가 아닌가싶어 다시 그 글자를 쳐다보았다. 글자가 가물거려 돋보기를 쓰고 읽고 있었는데 글자 “과”와 “화”가 겹쳐 다가오고 있었다. 헐, 이게 뭔 일인가? 나로 정신 차리게 한 부분은 마태 5:25이었다. 본문은 이렇게 읽힌다.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이 문장속의 특정한 단어를 제대로 이해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특별히 신학교육을 평생해온 사람으로서 내 생각은 이렇다. 평신도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장차 목사가 되어 성경으로 설교할 젊은 신학생들과 기존의 목사들이 이 문장에 나오는 단어 “사화”를 이해할까? 물론 “옥리(獄吏, 오늘 날에는 구치소의 교도관)”도 그렇겠지만 말이다. 나도 내 눈을 의심했다. 뭔 “사화”란 말인가? 그래서 한국교회가 사용했고 지금도 모두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성경과 개역개정을 다시 조사해도 “사화”가 분명했다.

 

잠시 생각을 집중했다. 다른 한글 성경 번역본들을 보니 대부분 “사과”(謝過)로 바뀌었다. 문맥상 “잘못에 대하여 용서를 빈다.”는 뜻의 한자어 “사과”(謝過)로 바꾼 것 같다.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과하라!”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으흠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하였다. 그러나 뭔가 아주 찜찜했다. 우리의 옛 탁월한 성경번역자들이 “사화”라고 했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하며 내 나름대로 이 한자어를 두 단어의 합성어로 생각했다. 즉 사화란 “사과하고 화해하다”는 뜻으로 말이다. 이러고 보니 훨씬 의미가 다가왔다. “그렇지, 아주 좋은 착상이야. 역시 나는 똑똑해!”하며 심중 자화자찬하고 있었다.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과하고 화해하라!” 멋진 해석이었다.

 

그렇게 밤은 깊어갔고 이내 잠에 골아 떨어졌다. 근데 문제는 꿈속에서도 저 “사화”라는 단어가 나를 어지간히 괴롭히는 것이 아닌가. 이른 아침에 일어나 다시 “사화”를 생각했다.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거친 사람들이라면 “사화”라는 단어를 많이 들었다. 조선 시대에 정치적 반대파에게 몰려 정계의 선비들이 당한 참혹한 화를 가리켜 사화(士禍)라고 했다. 조선시대의 4대 사화하면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가 있었다. 사화를 생각하다보니 별의별 연상이 다 떠올랐다.

 

*****

 

드디어 약간의 서핑을 통해 한글성경에 “사화”로 번역한 그 뜻을 알게 되었다. “역시 나이를 먹어도 공부를 해야 되는구나!”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私和)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이 문장에서 사용된 한글(한자어)는 “사화”(私和)다! 참으로 무지하게 어려운 한자어다. 그럼에도 아주 오래전 한글 성경 번역 당시에 번역자들은 이 단어를 선택하여 본문의 뜻을 가장 잘 반영하였던 것이다. 성경번역자들에게 크게 박수를 쳐 드려야할 것이다. 짝짝짝!

 

한글 사전에 따르면 “사화”(私和)는

(1) 법에 의해 처리할 송사(訟事)를 개인끼리 서로 좋게 풀어 버림.

(2) 서로 원수가 되어 있는 사이를 다시 의좋게 지내도록 감정을 풀어 버림

 

문맥을 살펴보면 예수께서는 법정에 가야하는 일을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법정에 가기 전에 사건을 해결하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특정한 단어는 법과 관련이 있는 용어이어야 할 것이 아닌가? 옛날의 훌륭한 성경번역자는 절묘하게 "사과"가 아닌 "사화"를 선택한 것이다. 

 

 

결론:

(1) "사화"는 "사과"로 써야할 것을 잘못 쓴 오타가 아니다. 신중하게 선택된 용어이다.  다시금 탁월한 번역에 경이를 표해야한다. 

 

(2) 한국의 젊은 신학생들이나 목사들은 라틴어 히브리어 헬라어를 좀 한다고 폼 잡거나 아는 체 하지 말고 한자어가 수두룩한 우리 말 공부에 더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한다.

 

(3) “사화”처럼 어려운 한자어를 지금 한자어를 모르는 시대에 그대로 사용해야하는지 아니면 다른 길이 있는지 토의해야한다. 보다시피 “사과”와 “사화”는 달라도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4) 성경번역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해 보는 기회로 삼자.

 

(5) “마태 5:25 번역 유감”이란 문구에서 “유감”은 서운한 감정이 있다는 뜻의 유감(遺憾) 아니라 그냥 느낌이 있다는 뜻의 유감(有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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