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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신복윤 박사님의 귀향(歸鄕)에 부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총장이신 남송(南鬆) 신복윤 박사님(1926-2016년)이 어제 하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다는 소식을 오늘 아침 절친 권호덕 박사(서울 성경대학원 대학교 총장)로부터 들었습니다. 신복윤 박사님은 참 좋으신 분이셨습니다. 언제나 신사적이었고 성품은 온유하고 겸손하셨으며 내게는 언제나 인자한 아버지 같은 선생님으로 남아계신 분이었습니다. 이제 하늘의 때가 되어 이 세상의 장막을 걷고 고향으로 돌아가셨군요. 평생 조직신학자로 요한 칼빈 신학을 연구하여 후학들에게 가르쳐주셨고, 개인적으로는 자상하시고 인자한 맨토(mentor)이셨는데 더 이상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없게 되었네요. 서운한 마음에 옛날 생각이 떠올라 몇 자 적어봅니다.

 

지금으로부터 36년 전이군요. 당시 나는 총신대 신학대학원(72)을 다니다가 72회 출신으로 잘 알려진 인사들로는 김인중(안산동산교회, 원로목사), 박영선(남포교회 원로목사), 김정우(구약학, 총신대), 권성수(전 총신대, 대구 동신교회), 강승삼(전 총신대), 박건택(역사신학, 총신대)등이 있군요. - 육군 포병으로 군대에 입대하였고, 34개월의 길고도 고된 서부전방에서의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 당시 한국사회는 18년간의 철권통치를 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와 서거, 군부간의 긴박한 대치와 충돌, 전두환 군부의 등장,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로 대표되었던 3김 시대의 몰락, 광주에서의 민중 저항 운동과 군부의 잔혹한 무력진압 등 한 치 앞길을 내다 볼 수 없었던 암울한 시절이었습니다. 돌아온 사당동 총신의 형편도 별로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당시 합동교단에 강력한 교권을 쥐고 있었던 모 인사의 전횡으로 학교는 마비되었고, 연일 데모로 학교는 어지러웠습니다. 그 와중에 교수님들도 고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시국도 어수선했지만, 제어장치 풀린 교단 정치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학생들과 교수들은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교단과 학교에 비상상태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지경에 이르자 당시 총신의 신학적 버팀목이었던 상당수의 주요 신학교수들이 학교를 떠났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분들은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처럼 교단의 정치와 압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신학교를 꿈꾸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새로 시작된 학교의 법인명이 자유학원이었던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하여 생겨난 것이 합동신학교(나중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로 개명)이었습니다. 총신에서 나온 교수님들이 서울 반포의 남서울 교회(담임 홍정길 목사)에서 모여 새롭게 신학교를 시작하였는데 박윤선(교장), 신복윤(조직신학), 윤영탁(구약), 김명혁(역사신학), 최낙재(신약), 박형용(신약) 박사들이었습니다. 총신의 주류 부대가 대거 이탈하게 된 셈이지요. 1980년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는 후대의 교회역사가들의 공정한 평가에 맡겨야하겠지만, 어쨌든 서글픈 분리가 된 것입니다.

 

당시 나는 척박한 신학교육의 와중에서 이렇게 혼란스런 상황에서 신학교육을 받고 목사가 된다면하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군대에서 돌아온 후에 보니, 내가 그 밑에서 배우고 자란 선생님들은 모두 합동신학교로 갔고, 사당동 총신은 그저 허전하기만 했습니다. 이렇게 배워서는 제대로 된 목사는 안 될 것 같다는 소박한 생각에서 유학을 꿈꾸게 된 것입니다. 물론 유학에 대한 꿈은 어렸을 적부터 있었지만 말입니다.

 

우선 미국으로 유학을 생각하고, 이미 먼저 미국에 유학하고 있었던 선배 두 사람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한분은 김인환 선배(전 총신대 총장, 현 대신대 총장, 곧 남아공 스와질란드의 기독교 대학 총장으로 부임, 구약학)와 고 이정석 선배(국제신학대학원 부총장 역임, 조직신학)였는데, 전자는 필라델피아의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 후자는 미시간 그랜드래피즈의 칼빈신학교에 모두 목회학 석사(M.Div.) 과정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서로가 자기에게로 오라고 끌었습니다. 외로운 유학생활에 아주 가까운 후배하나를 곁에 두고 함께 공부하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생각 때문이었을 겁니다. 나를 향한 두 분의 구애(!)는 아주 심했습니다. 어쨌든 나는 토플을 치고, 원서를 접수하면서 마지막으로 교수님 추천서를 받아야했습니다. 두 곳에 다 지원한 상태에서 나를 추천해줄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칼빈신학교로 가는 추천서는 손봉호 교수님과 정성구 교수님에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두 분 모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공부하신 분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특별히 손봉호 교수님으로부터 나는 3년간 집중적으로 철학을 배웠기 때문에 그 때 언젠가 네덜란드 자유대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나마 했었지요. 여러분은 두 분에게 미국 칼빈신학교 입학 추천서를 부탁한 것이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물어 보실지도 모릅니다. 아시는 분이 있겠지만 미국의 칼빈신학교는 네덜란드인들이 오래전에 미국으로 이민하여 세운 신학교입니다. 특별히 아브라함 카이퍼로 대변되는 후예들이 세운 학교였기 때문에 네덜란드 출신의 손봉호, 정성구 교수님들에게 부탁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분들은 내 이야기를 듣고 잘한 선택이라며 흔쾌히 추천서를 써주셨습니다.

 

한편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로 가는 추천서는 신복윤 교수님과 김명혁 교수님에 부탁을 드렸습니다. 두 분 모두 웨스트민스터에 대한 좋은 평가를 하고 그 학교에 대해 잘 아시는 미국통들이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합동 측 총신의 분위기는 전 지구상에서 유학을 가야할 유일한 신학교의 모델이 웨스트민스터였습니다. 어쨌든 신복윤 목사님을 반포 남서울 교회로 찾아가서 말씀드렸더니 처음에는 새로 시작한 합동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나중에 신학석사(Th.M) 과정으로 가면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세히 내 속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그치, 신학은 기본과 기초가 잘 다져져야 하네.”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한국사회와 교단의 혼란스런 와중에서 신학공부를 계속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외국에서 신학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라며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신복윤 박사님과 좀 더 사적인 관계를 맺게 된 것입니다.

 

미국 유학중에 잠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세월이 한참 흘러 나도 학위를 마치고 한국에 교수로 일하게 되었을 때, 가끔 신복윤 목사님을 만나면 아들 같은 제자에게 꼭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류 박사, 번역을 잘해줘서 고마워!” 이런 말씀을 만날 때마다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신 것은 내가 미국 칼빈신학교의 조직신학자인 안토니 후크마 박사의 [개혁주의 종말론], [개혁주의 인간론], [개혁주의 구원론]을 번역해주어서 지금 한국의 개혁주의 전통의 학교에서 교재를 사용하고 있는데, 당신께서도 수업시간에 사용하는데 사용할수록 번역이 좋아서 내게 고맙다는 말씀을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에는 그 이상이 담겨져 있었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신 박사님의 따스한 애정을 애둘러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평생 칼빈학자로 계셨고, 칼빈신학의 정수를 후학들에게 전수하시려 애를 쓰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학문을 넘어서 그분의 온화한 인품은 언제나 매료적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나이를 들어가면서 "저렇게 곱게 늙어가는 게 결코 쉬운게 아닐텐데"라며 중얼거리곤 합니다. 따스하고 부드럽게 말씀하시던 선생님을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었다니 참 슬프고 서운하군요.

 

류 박사, 번역을 잘해줘서 고마워!” "선생님, 그 말씀은 번역 이상의 말씀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 추측컨데 앞으로 한국개신교회, 특별히 장로교회에서 개혁신학의 중요성에 대해 선생님처럼 온유하고 부드럽게 말씀하시고 깊은 애정을 가지신 분을 찾아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평안히 쉬세요. 선생님. 남송(南鬆) 신복윤 박사님, 안녕히 가세요. 

 

[1926년 10월 27일-2016년 1월 14일, 향년 90세]

 

남송 신복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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