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신학 에세이: “입관과 빈 무덤”

2015.12.09 15:39

류호준 조회 수:1468

입관(入棺)과 텅 빈 관()”

 

시체를 넣은 나무 상자를 가리켜 순수 한글로는 이라고 부르는군요. “널빤지의 준말인 말입니다. 한자어로는 관(), 영어로는 casket(캐스킷)이라고 합니다. () - 우리 모든 육체의 종착역일 것입니다. 입관하고 널 뚜껑을 닫으면 살아생전의 희로애락의 순환주기는 끝을 맺게 됩니다. “은 언제나 함께 가는 친구 같습니다.


어느 날 성경의 맨 첫 책인 창세기를 읽다가 어느 덧 마지막 장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독서라는 게 그렇듯이, 창세기의 마지막 문단의 마지막 절을 읽고 나면 창세기를 덮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창세기 읽기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뭔가 이상야릇한 여운이 길게 남아 천정 위를 맴 돕니다. 이유는 창세기의 마지막을 끝내는 창세기 저자의 문학적 마무리 손 매무새 때문이었습니다. 대부분 웬만한 신자들이라면 창세기의 첫 문장 정도는 크게 어려움 없이 외울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1). 그러나 창세기의 마지막 문장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내 뇌리에 남아 계속해서 맴 돈 이유는 독특하고 암울하게 그래서 미래가 완전히 닫혀 있는 듯이 끝을 맺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창세기는 이렇게 끝을 마감합니다. “요셉이 백십 세에 세상을 떠나니, 사람들은 그의 시신에 방부제 향 재료를 넣은 다음에, 이집트에서 그를 입관하였다.”(50:26). !

 

생명 창조의 찬란한 시작이었으나 죽음에 대한 슬픔과 비애로 끝을 맺고 있는 책이 창세기였다는 사실에 혹시 놀라보신 일이 있었나요? 한글번역 성경에는 입관이란 단어가 창세기의 마지막 단어입니다! 물론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입관이 창세기의 마지막 문장에서 뒤에서 두 번째에 나오는 단어이고 이집트에서라는 단어가 창세기의 마지막 단어이기 하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이집트에서 입관이라는 문구는 마치 관 뚜껑을 턱하니 닫는 마지막 널빤지와 같습니다. 아하, 모든 인류의 끝이 이구나 하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우쳐주는 문구입니다. 죽음과 무덤과 관은 우리네 인생의 고향이라고 전도서는 반복적으로 되 내여 주고 있습니다. 물론 왜 관이 인생의 종착역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창세기는 초장에서 소급해서 알려주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시체를 담은 그 관이 텅 빈 채(casket empty)로 발견되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천지개벽 같은 일일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에서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잇는 세상 말고 다른 세상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사람의 오관으로는 도무지 인식할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의 돌입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초자연적 기적이라는 것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어쨌든 입관텅 빈 관은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실체입니다!

 

최근에 을 가지고 성경 전체를 읽어 내려가는 흥미로운 제안을 하는 여성 구약학자가 있군요. 그래서 여기에 소개해봅니다. 그녀는 호주 출신으로 호주의 멜버른 신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미국 매사추세츠 해밀턴에 있는 고든콘웰신학교 신학석사학위를,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창세기를 연구하여 구약학 박사학위를 얻었군요. 박사학위논문 제목은 From Noah to Israel: Realization of the Primaeval Blessing After the Flood (London: T & T Clark, 2004)입니다. 최근의 저서로는 Was Noah Good? Finding Favour in the Flood Narrative (London: T&T Clark, 2014)가 있습니다. 현재는 고든콘웰신학교의 구약학 교수로 재직 중인데 관심 사항은 신학생들에게 성경전체를 쉽게 이해하도록 애를 쓰는 중이랍니다. 아참, 이름을 빼놓았군요. 그녀의 이름은 캐럴 카민스키 박사(Carol M. Kaminski)입니다. 내가 온라인으로 무지개성서교실”(www.rbc2000.pe.kr)을 운영하듯이 그녀도 텅 빈 관()”이란 이름의 온라인 교실(www.casketempty.com)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사용하고 있는 텅 빈 관”(CASKET EMPTY)은 일종의 “머리글자”(頭文字語, Acronym)입니다. “머리글자”(acronym)란 각 단어의 첫 자음을 모아서 만든 글자로, 영어로 텅 빈 관”(CASKET EMPTY)은 아래의 11개의 단어들의 머리자음을 따서 만든 용어입니다. 참고로, 아래는 머리글자 내용은 성경 전체를 개관한 카민스키 박사의 글에 내가 몇 가지 덧붙이거나 빼거나 한 것입니다.

 

Creation (창조) - 옛날 옛적 아주 오랜 옛날에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아주 좋은 창조(Good Creation)였습니다. 아담과 해와를 인류의 시조로 지으셨지만 그들은 말썽만 부리고 하나님의 지시에 불순종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낙원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Abraham (아브라함) - 형편없이 일그러진 인류 가운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타락한 바벨 문화권에서 불러내었습니다. 아내의 불임 가운데서도 그는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 너로 인하여 온 땅의 사람들이 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이 그것을 의롭다고 쳐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Sinai (시내 산) -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은 애급에서 나온 후에 그들은 시내 산자락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공식적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하였습니다(20).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십계명 두 돌 판은 모세언약의 규정들을 담고 있는데(20; 5-6)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야할 삶의 원리로 주어진 내비게이션입니다.

 

Kings (왕들) - 왕들을 세우신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시기를 바라셨습니다. 정의와 공의를 통해서만 평화가 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위임에 대해 무시와 무지로 일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성경은 진정한 왕은 다윗의 줄기에서 나올 것이라고 줄기차게 말씀하고 있었습니다(49:10; 삼상 16; 삼하 7).

 

Exile (추방) - 지상의 왕들은 천상의 왕이신 하나님의 지시를 어기고 자기들 마음대로 정치하였고 사방에서 불의로 인한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치기 시작했습니다. 우상숭배와 불의로 사회는 불구상태가 되었습니다. 결국 예언자들의 말대로 그들은 머나먼 타국으로 추방되었습니다. 주전 587년의 예루살렘 함락은 치욕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Temple (성전) -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삶을 엮어가는 언약 백성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성막(25-40)으로 시작하여 솔모몬 성전(왕상 6-8), 주전 587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의 함락과 솔로몬 성전의 파괴, 그리고 오랜 동안의 바벨론에로의 추방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전을 다시 건축하여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준공하게 됩니다(주전 516, 에스라 6). 준공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토라)안에서 살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성전이고, 그의 말씀이 존중되는 곳이 참 성전이겠지요.

 

Expectations (기다림) - 바벨론에서 돌아왔다고 모든 것이 다 회복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나태해지고 무료해지기 시작했고 그러는 사이 나라는 혼란스럽고 사람들은 갈팡질팡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실한 사람들은 의로운 메시아의 출현을 기다렸습니다. 메시아 대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결코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들 마음속에 메시아를 기대하는 갈망을 불어넣으셨던 것이지요.

 

Messiah (메시아) - 마침내 하나님은 예수라는 메시아(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로 지구 도착 성명을 발표하셨습니다(마가 1:14-15). 그분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기적과 징조, 치유와 축사, 그리고 가르침 등을 통해 현실화하시고 알리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죽으셨지만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입관에서 텅 빈 관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 역사의 중심이 되신 것입니다.

 

Pentecost (오순절) - 메시아가 승천하신 후에 하나님은 자그마한 그리스도인의 모임 위에 성령을 쏟아 부으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신약의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오순절은 오래전 구약의 예언자 요엘을 통해 말씀하셨던 약속이 성취되는 사건이었습니다(요엘 2:28-29; 행전 2).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땅 끝까지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야할 사명을 위임받게 되었습니다(행전 1:8).

 

Teaching (가르침) - 교회는 메시아의 재림 때까지 말씀에 굳건히 서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때까지 교회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부지런히 전하고 후대에까지 계승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가르침입니까? 예수는 메시아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통하여 의롭다 함을 받는다! 성령이 신자들 안에 내주하신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다! 믿음을 통해 순종이 온다! 신자들은 날마다 산제물리 되어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 그리스도는 온 땅의 재판장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Yet-to-Come (장차) - 교회는 마침내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공동체로 남아있어야 할 것입니다. 장차 새 예루살렘이 이 땅위에 순결한 신부처럼 내려올 것입니다(21). 에덴의 정원에서 시작한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는 마침내 새 예루살렘 도시에서 끝을 맺게 될 것입니다. 이 도시는 모든 나라와 민족에서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로 채워질 것입니다(7).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생명수가 흐르고 사람들은 이전에는 금지되었던 생명나무에도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47; 22). 낙원(樂園, Paradise)에서 실낙원(失樂園, Paradise Lost)으로, 실낙원(Paradise Lost)에서 복낙원(復樂園, Paradise Regained)으로 온전히 회복될 것입니다.

 

으로 상징되는 죽음, 그 죽음을 종착역으로 달려가는 인생에 예수 그리스도는 텅 빈 관으로 상징되는 생명, 그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을 믿는 자들을 영원한 생명 안으로 데려가시기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나선형으로 시작으로부터 마지막을 향해 펼쳐져 나아갈 것입니다. 캐럴 카민스키 박사의 재치가 돋보이는 두문자어 텅 빈 관”(casket empty)은 신자들에게 구원사의 타임라인(timeline)을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캐럴 카민스키 박사님, 아주 잘하셨습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신앙적 유익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수고했습니다!” 


[관, casket과 카민스키 박사]

casket.jpg Carol_Kaminski-201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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