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주소지가 잘못된 겸손”

 

[아래는 체스터톤이 저술한 "정통"(orthodoxy)안에 한 문단을 직접 의역한 것입니다. 직역하면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모를 수 있는 글이 그의 글입니다. 그분이 말하고자 한 뜻을 살펴보면 좋으리라 생각해서 여러분과 나눕니다.]

 

  

“겸손은 주로 교만과 자만, 그리고 인간의 무한정한 욕망을 억제하는 힘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새롭게 발명한 요구들과 필요들이 언제나 자비와 긍휼을 앞지르게 합니다. 달리 말해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 일보다는 자신들이 “이게 꼭 필요해. 이것이 있어야 돼”라고 하면서 발명해 내는 온갖 욕망들을 채우는 일에 급급하다는 말입니다. 자신만을 위한 그런 야망과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그런데 저게 겸손은 아닌데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주소를 잃어버린 겸손들이 있습니다. 원래 겸손이 있어야할 주소가 아닌 다른 주소지에서 발견되는 겸손 말입니다. “주소지가 잘못된 겸손”(Dislocated Humility)입니다.

 

원래 사람 속에는 야망(ambition)이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인체로 말하자면 야망이라는 장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겸손이 살고 있는 주소가 그곳입니다. 인간의 야망 안에 겸손이 살고 있어야 했습니다. 겸손이 빠진 야망이 어떤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겸손이 통제하지 않는 야망이 얼마나 못 돼 먹게 행동하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야망 안에 겸손이 자리 잡고 있어야 야망이 마음대로 활보하거나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겸손이 야망이라는 기관에서 이사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야망이라는 집에서 나간 겸손이 어디에 안착하게 되었을까요? 다름 아닌 확신(conviction)이라는 장기에 달라붙게 되었습니다. 겸손은 야망 안에 있어야 하는 것인데 확신이라는 기관에 잘못 오게 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겸손이 확신과 짝을 이루게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해 보시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기억해야할 진리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늘 의심을 해야 하는 존재이지 진리에 대해 의심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진실과 진리는 굳건히 붙잡아야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변덕스럽고 주관적인 우리 자신들에 대해선 의심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정반대로 뒤집어 진 경우가 있습니다. 즉 진리와 진실에 대해선 의심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철두철미하게 확신을 갖게 되는 경우 말입니다. 이러한 확신에 겸손이 가미될 때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세요.

 

오늘날 사람이 확실하게 주장하지 않는 인간의 한 부분이 있는데 놀랍게도 그 부분은 사람이 의심해서는 안 되는 부분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하나님의 생각”(the Divine Reason)이 그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확실하게 받아들여야할 것이 “하나님의 생각”(the Divine Reason)인데, 놀랍게도 사람들은 그것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정신적으로 너무도 겸손한 나머지, 사람들은 “하나님의 생각”은 믿지 않으면서도 구구단은 철석같이 믿는 인류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겸손이 확신과 결탁될 때 일어나는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Orthodoxy, 31)

 

참고로, 한글번역이 있다고 합니다.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정통』 홍병룡 옮김 (아바서원, 2016).

G.K. Chesterton.jpg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류호준 교수의 무지개성서교실이 http://www.rbc2020.kr 로 리뉴얼하여 이전합니다. 류호준 2020.08.24 4585
공지 "무재개 성서교실은 여러분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5] 류호준 2018.03.29 2930
689 일상에세이: “무엇이 당신의 유일한 위안입니까?” [1] file 류호준 2018.07.24 457
688 신앙에세이: “웃음은 신비로운 약입니다. 좋을 때든 끔직할 때든” [1] file 류호준 2018.07.21 2367
687 신앙 에세이: “해시태그(hash-tag)가 된 여인 라합” [1] file 류호준 2018.07.16 790
686 일상 에세이: “경찰관과 소방관” file 류호준 2018.07.15 273
685 일상 에세이: “나이듬과 유머" file 류호준 2018.07.14 441
684 클린조크: "성경적 여성주의"(Biblical Feminism) [2] file 류호준 2018.07.11 517
683 일상 에세이: “님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 file 류호준 2018.07.09 477
682 신앙 에세이: “릴리아 모리스와 찬송가” file 류호준 2018.07.09 1140
681 일상 에세이: “사진 찍어 주실 수 있겠어요?” [1] file 류호준 2018.06.20 439
680 신앙 에세이: “찾아갈 만 한 곳 한 군데쯤은~” file 류호준 2018.06.11 590
679 신앙 에세이: "현자(賢者)와 중용(中庸)의 덕" [2] file 류호준 2018.05.25 515
678 일상 에세이: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지!” [6] file 류호준 2018.05.19 820
677 일상 에세이: "연필로 쓰는 이야기" [3] file 류호준 2018.05.12 768
676 신앙 에세이: “제자도의 비용” [2] file 류호준 2018.05.09 491
675 신앙 에세이: “당신은 어느 신을 섬기고 계십니까?” file 류호준 2018.05.03 635
674 일상 에세이: "패러디 유감" [2] file 류호준 2018.05.01 494
673 신앙 에세이: “몸으로 쓰는 율법” [1] file 류호준 2018.04.30 458
672 일상 에세이: "김훈과 육필원고" [3] file 류호준 2018.04.28 559
671 목회 에세이: “베뢰아 사람들만 같았으면” [1] file 류호준 2018.04.26 855
670 신앙 에세이: “썩어빠진 관료사회와 한심한 대중들” [1] file 류호준 2018.04.18 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