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바나바를 기억하시나요!”

 

 

다메섹 길에서 회심한 후 피치 못하게 다메섹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한 사울은 처음으로 예루살렘으로 갑니다(행전 9:26ff.). 예루살렘에 있는 주님의 제자들과 사귐을 가지려고 간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제자들은 사울이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두려워했습니다. 예수의 제자라는 양의 가죽옷을 입은 늑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랬습니다. 아마 사울은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깊은 실망과 허탈감에 어쩔 줄 몰랐을 지도 모릅니다. “아니 예수 믿는 자들이 어떻게 저리도 쪼잔 할까? 내 심정을 이리도 몰라주다니!”하고 말입니다.

 

이 때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한 명이 나타납니다. 바나바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존경받는 모범적 신앙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구브로에서 태어난 레위 지파 사람으로 이름은 요셉이었고, 사도들은 그가 교회 내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바나바”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습니다. 참고로 바나바의 히브리 이름은 “바르 네부아”입니다. 문자적으론 “예언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달리 말해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누가는 이 이름을 “위로의 아들”로 번역했습니다. 초기 기독교회가 예언의 은사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엿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합니다. 즉 예언의 은사는 주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권면하고 지원하는 일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어쨌든 바나바는 교회 내의 약한 자를 위로하고, 축 늘어진 어깨를 하는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좌절하고 있는 사람에게 희망으로 격려하고, 고아나 과부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후견인 노릇을 하고, 때론 그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했던 신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물론 신앙적 조언과 권면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참고로, “위로” “위안”으로 번역되는 영어 comfort는 “함께(con) + 강하게(fortis)”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알면, 위로는 “크게 힘을 북돋다”는 뜻임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바나바가 나타나 실의에 빠진 초짜 그리스도인, 그럼에도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아 복음 전도자의 길로 들어선 사울을 예루살렘의 권위 있는 사도들에게 소개합니다. 물론 가기 전에 바나바는 사울로부터 개인적 회심에 관한 전체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바나바가 사도들에게 “사울이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했는지를”(27절) 어떻게 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

 

분명 바나바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훌륭한 청중(good listener)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교회 안에 이런 지도자들이 - 목사든 장로든 권사든 집사든 누구든 –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자신이 신앙적으로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를 과시하기 위해 말을 많이 하거나, 아니면 상대방을 가르쳐들려는 강박관념 때문에 일방적으로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들을 – 그것이 실패의 이야기든, 상처 입은 이야기든, 수치스런 이야기든, 슬픈 이야기든, 기쁜 이야기든, 성공 이야기든 – 마음으로 듣고 귀 기울여 경청하는 사람 말입니다. 교회 안에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위로의 사람, 권면의 사람, 격려의 사람, 후견인, 뒷받침하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길을 터주는 사람, 기꺼이 디딤돌이 되려는 사람들입니다.

 

바나바의 도움으로 사울은 예루살렘의 사도들을 접견하게 되었습니다. 어제까지는 원수요 박해자요 적대자였던 사울이 이제는 성령과 바나바의 도움으로 화해와 화목의 다리를 건넌 것입니다. 그들은 함께 손에 손을 잡고 복음 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일꾼들이 된 것입니다. 참 감격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바나바 없는 바울은 상상치도 못해야 합니다. 그는 나중에 바울의 위대한 사역에 가려 잊힌 사람으로 남아있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왕국이 펼쳐가는 스토리에서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없는 바울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대의 중앙에 서는 사람보다 무대의 뒤편에서 말없이 수고하는 손길들을 기억해 보십시오.

 

[미네소타 주의 어느 겨울 새벽 길]

미네소타의 겨울 새벽 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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