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시인과 예언자와 설교자"

청어람 강연 (2018.3.23)

 

 

구약의 예언자들은 위대한 시인들이었습니다. 예언자들이 시인들이었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설교자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줍니다.

 

부르그만(W. Brueggemann)은 설교와 설교자에 관한 매우 자극적이고 도전적인 한 책에서 설교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설교의 두 가지 모형을 범주화하여 “산문”(prose)과 “시”(poetry)라는 은유적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가 “산문의 세계”(prose world)라고 부른 것은 고정된 형식에 안주하고 인습에 이끌려 아무런 흥분과 열정, 정념과 생동감, 기대와 예측 없이 지내는 평평하고 밋밋한 세계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목회 기도도, 주일 아침에 선포하는 설교도 “산문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 속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런 기대도 없이 강단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아무런 감흥도 없이 밋밋하게 산문의 세계를 소개할 뿐입니다. 마치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미국의 대 평원을 달리는 운전자와 같아, 지금 달리고 있는 길의 끝이 보입니다. 좌우를 보아도 항상 무미건조 할뿐입니다. 설령 그 무엇이 달리는 운전자에게 나타난다 하여도 이미 오래 전에 예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갑작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평평한 대 평원을 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소위 “산문의 세계”입니다. 이러한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세상은 단순히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들이 아무런 상관 관계없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곳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적으로, “시의 세계”(world of poetry)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시”라고 부른 것은 단순히 운율이나 박자 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시는 함축적인 언어들을 가장 경제적으로 사용하여 세워지는 “이상한 세계”입니다. 또한 그 언어들은 엄청난 파괴력을 담고 있는 폭발물과 같아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시인이 만들어 낸 세계는 사람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위험천만한 세계이기도 합니다. 믿음의 도약이 없이는 건널 수 없는 세계이기도 합니다. 시인의 세계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측된 세계와는 전혀 다른 곳입니다.

 

시인들은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여 그들이 보여주려는 세계를 창조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들은 독자들에게, 청중들에게 바로 이 새로운 세계 속으로 들어올 것을 촉구하고 초청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언자들이 그들의 메시지를 시문으로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매우 상징적입니다. 아니 그들 자신이 매우 강력한 시인들이었다는 사실 자체는 우리 설교자들에게 매우 지시적입니다. 이점에 있어서 부르그만(Brueggemann)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음미해 볼만 합니다.

 

넓게 말해서, 성서 본문의 언어는 예언자적입니다: 달리 말해 성서 본문의 언어는 우리들의 매일 매일의 인습들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실체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모든 것을 당연시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실체들을 예기케 하며 그러한 실체를 불러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성서 본문의 언어가 예언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 시인/예언자는 정착되고 안주된 실체를 산산 조각 내는 목소리이며, 귀담아 경청하는 회중들 속에 새로운 가능성을 자극하여 불러내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설교란 이러한 위험천만한 언어 습관, 그러나 반드시 필수적이어야만 하는 이러한 언어습관을 계속하는 행위입니다. 본문에 대한 시적(詩的) 연설(poetic speech), 설교의 시적 선포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당연시 여기는 이 세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를 예언자적으로 구성하는 것입니다.(Finally Comes the Poet에서)

 

그렇다면 우리 설교자들은 고대의 히브리 예언자들처럼 새로운 세계, 일반적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세계가 아닌 세계를 선포하는 자들입니다. 부르그만의 용어를 다시 빌리자면, 설교는 “대안적(代案的) 세계에 대한 시적(詩的) 구성”입니다. 예언자들의 경우, 그들의 선포의 목적은 미래에 대한 새로운 시나리오(scenario)를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세계에 대한 새로운 대안(alternative)을 제시하려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주장은 좀 더 분명해 졌습니다. 히브리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그리고 그들의 남겨 놓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예언서들은 매우 강력하게 새로운 세계, 즉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세계를 불의와 죄악으로 점철되어 있는 인간의 세상을 향해 본질적인 대안의 세계로 선포하고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선포는 하나님의 통치와 지배와는 병립할 수 없는 이 세상 나라들 - 그 나라들이 누구이든 간에 상관없이 - 의 전통, 인습, 세계관, 가치관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며, 따라서 그들의 전적인 포기와 항복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메시지였습니다. 예언서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들, 예를 들어, 불의한 자들에 대한 사회-정치적인 비판,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한 자들을 향한 사회-정치적 비난, 야웨 하나님 없는 이방 열국을 향한 전 세계적 비판, 제사의식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환원시키려는 종교주의자들에 대한 종교-제의 비판 등과 같은 주제들은 바로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진정한 통치와 다스림이라는 포괄적인 예언자적 메시지의 빛 아래서 이해되고 적용되어야할 사항들입니다. 심지어 구원의 미래에 대한 선포마저도 당대의 언약 백성들의 삶에 대한 비판으로 주어졌던 것입니다.

 

Covered bridge at Lowell, MI

Covered Bridge at Summer, Lowell MI.jpg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류호준 교수의 무지개성서교실이 http://www.rbc2020.kr 로 리뉴얼하여 이전합니다. 류호준 2020.08.24 4396
공지 "무재개 성서교실은 여러분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5] 류호준 2018.03.29 2928
729 일상 에세이: “세상풍경 일화: 포장마차에서” [1] file 류호준 2018.12.05 489
728 “세계관과 나와 데이비드 노글” [2] file 류호준 2018.11.28 641
727 일상 에세이: “구치소 풍경과 영치금” [1] file 류호준 2018.11.23 557
726 시: “첨탑, 무덤. 하늘” file 류호준 2018.11.13 429
725 일상 에세이: “운명 위에서 썰매 타듯이” [2] 류호준 2018.11.09 628
724 일상 에세이: “한번쯤은 밤하늘 아래 앉아” [2] file 류호준 2018.11.07 462
723 일상 에세이: “좋게 말하다” [1] file 류호준 2018.11.06 424
722 일상 에세이: “감사하는 계절에” [3] file 류호준 2018.10.30 391
721 신앙에세이: “당신은 현대판 헤렘의 신봉자들인가요?” file 류호준 2018.10.24 387
720 부고: "하늘의 부르심은 받은 유진 피터슨 목사님" file 류호준 2018.10.23 463
719 일상 에세이: “신학생들이여, 제발 한국어라도~” [5] file 류호준 2018.10.17 752
718 일상 에세이: “가는 세월” [4] file 류호준 2018.10.12 413
717 신앙 에세이: “분깃”을 알고 계십니까? [2] file 류호준 2018.10.09 2125
716 시: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 [1] file 류호준 2018.10.08 634
715 일상 에세이: “자연을 사진에 담는 그리스도인” [1] file 류호준 2018.10.01 420
714 신앙 에세이: "당신은 성자(saint)입니까?" [1] file 류호준 2018.09.27 2736
713 일상 에세이: “인생은 견디는 거야! - 바이킹 유감” [2] file 류호준 2018.09.24 657
712 일상 에세이: “1 년짜리 유감” [2] file 류호준 2018.09.22 432
711 일상 에세이: “9.19 남북 정상회담을 보면서 스쳐가는 생각들” [2] 류호준 2018.09.19 335
710 신앙에세이: “거룩한 키스”라고? [1] file 류호준 2018.09.17 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