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차간(車間) 거리를 확보해야 합니다!”

 

 

교통질서만 잘 지켜도 내 생명과 타인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어요. 정지선, 신호등, 보행자 인도, 스쿨 존 등을 잘 지키세요. 음주운전 하지 마세요. 그건 살인행위에 다름없습니다. 졸지 마세요. 한 눈 팔지 마세요. 운전 중에는 다른 짓하지 마세요. 카톡질, 문자보기와 발송, 영상보기와 촬영 등은 하지 마세요. 무엇보다 방어운전을 하세요. 충돌과 추돌은 순간에 일어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차로(車路)

 

“차간 거리 확보”라는 말을 들어보셨지요? 앞차와 너무 가까이 해도 너무 멀리 떨어져도 안 됩니다. 적당한 거리를 확보하고 운전해야한다는 말이지요. 근데 차간거리 조정이 어디 운전에만 해당하는 말인가요? 사람사이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사람은 본래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한자어로도 인간(人間)은 “사람 사이”라는 말이지요. 어느 누구도 사람들 사이(간격)에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끼리 너무 가깝다보면 반드시 추돌 사고가 난다는 것입니다. 친숙하다는 이유로 선을 넘어 가깝게 하다가는 때론 대형사고가 납니다. 그렇다고 사람을 멀리하면 그것은 무인도에 사는 것이지 결코 사람으로 사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일은 물리적이라기보다는 언어적입니다. 언어를 통해 가깝게 혹은 멀리 거리를 둡니다.

 

언로(言路)

 

교회의 목사로서 나는 종종 교회 안은 복잡한 “말길”(言路)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말(言)에도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이 가는 도로가 있다는 것입니다. 좁은 길, 넓은 길, 구부러진 길, 자갈길, 비포장도로, 고속도로, 흙길, 잔디밭 길, 논두렁 길, 샛길, 우회도로 등 말이 가는 길은 다양합니다.

 

그런데 교회의 말길(言路)은 모두 개인 자동차를 몰고 나와 달리는 고속도로와 같습니다. 최저속도를 지켜야함에도 어느 사람은 너무 천천히 갑니다. 그러다 급히 오는 사람에 추돌사고를 당하고 목을 가누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질이 급하여 다른 사람의 말길(言路)을 추월하다 전복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을 멈춰야 함에도 그냥 슬그머니 말을 흘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깝다는 이유로 이말 저말 속내까지 다 내보이다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승자박하는 꼴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안의 말길(言路)이 복잡한 이유는 이해관계 계산법에 따라 친소(親疏)관계가 복잡해졌기 때문입니다. 친소관계는 고등방정식과 같아서 풀어내기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게다가 사람들 사이의 친소관계는 늘 유동적이며 변화무쌍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가깝던 사이가 잘못된 뉴스나 소문 때문에 소원해지거나 분노의 진원지가 되기도 합니다. 갑자기 끼어들어 판을 깨는 일 역시 대부분 신중하지 못한 말길(言路)을 달리다가 일어나는 중형사고입니다.

 

왜 이런 사고들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모두 “차간 거리 조절”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말(言)의 속도조절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성급한 말, 과격한 말, 분열을 조장하는 말, 함부로 내뱉는 말, 개념 없는 말, 거친 말, 쓸모없는 말, 더러운 말, 소문에 편승하는 말, 까칠한 말, 독한 말, 상처에 소금 뿌리는 말, 술 취한 말, 아첨하는 말, 일관성이 없는 말 등이 상대방과의 거리에 상관없이 달리다 보니 서로 충돌하고 삶이 뒤집히기도 하고, 뒤에서 갑작스레 받기도 하고 받치기도 하고, 화상을 입기도 하고, 평생 깊은 상처를 지니고 살아야하기도 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복수심에 영혼을 불태우고 언어를 날카롭게 갈아 비수로 사용하려고 작심을 합니다.

 

차간 거리를 확보하세요!

 

아무에게나 너무 친하다고 경계를 넘어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이것이 “사랑은 무례하지 않는다.”는 말의 뜻입니다. 사람과 추돌하지 마십시오. 사람과 충돌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사람과의 거리를 너무 멀게 하지 마세요. 마귀는 그 틈새를 뚫고 들어옵니다. 점점 더 멀어져서 상대방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자리 잡게 됩니다. 어쨌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 안전하게 가십시오. 길게 보면 이것이 질서 있고 편안한 말길(言路)입니다. 안전한 차간 거리를 확보하십시오.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십시오. 그분께서 안전거리 인식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산에 오르는 길" 

path to mountain.png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류호준 교수의 무지개성서교실이 http://www.rbc2020.kr 로 리뉴얼하여 이전합니다. 류호준 2020.08.24 4395
공지 "무재개 성서교실은 여러분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5] 류호준 2018.03.29 2928
769 쉬운 신학: "착한 사람 人" 류호준 2019.11.25 651
768 신앙에세이: “때 이른 죽음”(An Untimely Death) 류호준 2019.11.25 185
767 신앙에세이: “만나도”와 “당해도” file 류호준 2019.11.23 240
766 신앙에세이: "외국인 출입국 관리소에 가보신 일이 있나요?"(이범의) file 류호준 2019.11.08 294
765 일상 에세이: "진영논리와 시민성" file 류호준 2019.10.23 258
764 일상에세이: "신앙의 꼰대가 안 되려면!" [1] file 류호준 2019.10.22 508
763 신앙 에세이: “조국 교회, 부끄러운 줄 알아야!” 류호준 2019.10.15 377
762 일상 에세이: "고구마캐기 체험행사와 사회학 개론" [1] 류호준 2019.10.09 180
761 신앙 에세이: "부패한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을 향한 일갈" 류호준 2019.10.08 191
760 신앙 에세이: “성경을 봉독(奉讀)하는 이유” [1] 류호준 2019.10.06 285
759 쉬운 신학 해설: "정의(正義)란?" 류호준 2019.10.05 276
758 신앙 에세이: “마음 씀씀이” [1] 류호준 2019.09.29 345
757 짧은 글: “다시”와 “달리” 류호준 2019.09.28 183
756 신학 에세이: "돌(石)의 신학" file 류호준 2019.09.07 736
755 일상 에세이: “30년 만에 심방” 류호준 2019.09.04 260
754 일상 에세이: “석양 유감” [3] file 류호준 2019.08.29 3920
753 "몸살 앓는 피조세계" [3] file 류호준 2019.08.07 367
752 클린조크: Woe vs. Wow 류호준 2019.08.04 398
751 "문둥병, 나병, 한센병" 류호준 2019.08.03 376
750 신앙 에세이: "용서가 뭔지를 알면" file 류호준 2019.07.20 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