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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賢者)와 중용(中庸)의 덕"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관용어구가 있습니다. 뭐든지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세상살이에서 꼭 기억하고 실천해야할 덕입니다. 다른 말로 중용(中庸)이라고도 합니다. 중용은 유교에서뿐 아니라 그리스 철학(아리스토텔레스)에서도 중요한 덕목으로 봅니다. 한자어 “중용”을 풀이한다면 “알맞음”(中)과 “꾸준함”(庸)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문제는 어그러지고 왜곡되고 구부러진 세상에서 좌로나 우로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기대지도 않고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평정심을 잃지 않고 일관성 있게 산다는 게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한결같은 방향으로 오랫동안 순종하며 걸어가는 순례자의 삶을 불가능하게 만들거나 무력화시키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왜 세상은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한가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발생합니다. 아마 이해불가한 일들을 목격한 어느 현자(코헬렛)는 탄식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7:13) 그가 볼 때 이 세상에는 불공평하고 불공정하고 억울한 일들이 수수께끼처럼 쌓여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들을 굽게 하셨고, 사람들은 그 굽게 된 것을 똑바로 곧게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세상살이가 수수께끼와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는 수수께끼와 같은 삶의 부조리를 다음과 같은 말로 극대화시켜 말합니다.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구나!”(7:15)

 

사람에게는 세상을 통제할 힘이나 능력이 아주 없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무력감과 허탈감, 자괴감과 허무함을 느끼게 만드는 굽은 세상입니다. 그래서 그가 절규하듯이 소리칩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굽게 하셨군요!”

 

이제 그는 이 세상 살아가면서 어떤 행보를 해야 하는지 참으로 고민스러웠습니다.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렇게 말합니다.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be overrighteous)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도(be overwise) 말라!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be overwicked)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be overfoolish) 말라!(7:16-17)

 

헐, 헐, 헐, 이게 뭔 소리입니까? 부조리와 불합리 그리고 모순투성이의 세상살이에서 현자는 우리에게 양극단을 선택하는 대신에 “중용”(moderation)의 덕을 추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흔들리는 세상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양극단으로 흐르지도 않고, “알맞게” 자리를 잡고 그 자리를 “꾸준히” 지키고 앞으로 나아가는 삶의 행인(行人)이 되기를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들 중에 하나가 “중용”이었습니다. 알맞게, 꾸준하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것 말입니다. 장소적으로도 그렇고 시간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고 신앙생활에서도 그렇습니다. 절제하고 인내하면서 삶의 한계 내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야겠습니다. 똑바로 걷되 우아하게 걷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말입니다.

 

“어느 소년의 하루” Willow Metro Park, Dearborn Heights, MI

willow metro park Dearborn Heights, MI.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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