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일상 에세이: “30년 만에 심방”

2019.09.04 01:51

류호준 조회 수:260

“30년 만에 심방”

 

32년 전(1987년) 나는 미국 중서부인 오하이오 주 톨레도 시에서 한인교회를 담임하고 있었다. 어느 주일 예배 후 교회재정 담당 집사님이 내게 찾아와, “목사님, 뭔가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뭔데요?” “헌금 계수를 하는데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헌금이 들어온 것입니다.” “뭐라고요?” “아무래도 누군가 헌금을 잘못 드린 것 같습니다.”

 

당시 교인들은 주일 일반헌금으로 20달러 정도를 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누군가 헌금으로 거의 1,600달러가 되는 거액(!)을 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헌금한 사람은 다름 아닌 한국에서 갓 유학 온 김 아무개라는 젊은 부부였다. 당시 그들은 20대 중반의 신혼부부였고, 인근 오하이오 주립대학(University of Toledo)에서 컴퓨터를 공부하기 위해 온 새내기 유학생 부부였다. 나는 그들이 미국 사회를 잘 몰라서, 아니면 달러(돈) 개념이 아직 부족해서 1,600달러가 한국 돈 만 6천 원 정도인 줄 착각하고 헌금한 게 아닌가했다. 그 부부를 만나 조심스레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고 제대로 헌금한 것이 맞느냐고 물었다. “예, 목사님, 저희가 헌금했습니다.” “아니, 미국사회에서 특히 유학생신분으로 앞으로 공부하고 생활해야하는 일이 힘들 텐데 어떻게 그리 많은 헌금을 했습니까?”라고 물었다. 대답이 충격적이었다. “목사님, 저희가 한국에서 유학자금으로 가지고 온 돈의 십일조를 드린 건데요.” 너무 당연하다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말하는 모습에 더 이상 묻지를 못했다. 헐, 당시 일 년 학비의 십일조를 낸 것이다. 아직 학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말이다!

 

평생 목회를 하면서 이 때 만큼 깊은 감동과 울림을 받은 일은 없었다. 순박하기 그지없는 그들의 말에 젊은 목회자였던 나는 말을 잊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와 함께 3년을 교회에서 같이 신앙생활 하다가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어제 말하는데 그 때 내가 히브리서를 가지고 성경공부 했는데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고 했다. 하기야 그 때 가르쳤던 원고가 기초가 되어 훗날 나의 첫 책이 된《히브리서: 우리와 같은 그분이 있기에》가 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내 뇌리에선 잊어졌다. 30여년의 세월이 아득한 추억을 더더욱 빛바래게 했기 때문이다.

 

엊그제 이곳 시카고에서 어찌어찌 연결이 되어 그 부부를 찾아가게 되었다. 30년만의 심방이 되었다!! 주소를 입력하고 딱 한 시간을 달려 그 집을 찾았다. 대 저택엔 이젠 어느덧 중년이 된 두 부부가 여전히 아름답게 인생을 살고 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들어보니 지난한 삶의 계곡과 어두운 길을 헤쳐 마침내 오늘처럼 밝고 맑은 얼굴과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얼마 전 큰 아들을 결혼시켰고 컴퓨터가 전공인 남편은 사업체를 크게 일구었고, 후에 소명을 받고 시카고 트리니티 신학교에서에서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다. 김 목사! 품격 있는 아내 조앤 역시 기독교교육학으로 박사논문을 쓰면서 학부에서 기독교교육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했는지!

 

그 부부가 나를 다시 찾게 된 것도 참 희한한 계기였다고 한다. 물론 페북이 위대한 일은 하기는 했지만, 그 부부 사는 지역에 종종 가는 일식집이 있는데 어느 날 자기가 목사이며 사업하는 사람인줄 아는 그 일식집 주인이 “나와 사돈되는 분도 목사님이신데, 한국에서 아주 유명한 신학교수이며 목사님인데 혹시 모르느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이름이 “류호준 목사님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 부부는 놀라 어쩔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 목사님은 아주 오래전 우리 담임목사님이었어요!”라고 말하고 그때부터 더욱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헐. 세상이 어찌 이런 일이~

 

한편 심방의 자리에 함께 한 나와 동년배의 부부(궁 집사님 내외)도 있었다. 이분들도 30년 전 앞서 이야기한 교회에서 목사와 교인으로 만났다가 5년 후에 미국 아이오와 주로 이주한 후 헤어진 가정이다. 인생은 돌고 돈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 부부가 30년 만에 미국 회사의 한국 대표이사가 되어 이주해와 내가 목회하던 무지개교회에 다시 교인과 목사로 만나게 된 분들이다. 인연이라는 게 정말 있나보다! 5년을 나와 함께 신앙생활 하다가 미국 시카고의 본사로 오게 되었고 어제 앞선 두 부부와 30년 만에 재회가 이루어진 것이다. 세 가정이 이렇게 모인 것이다. 어쩌다보니 기막힌 만남이 되었다. 노사연의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를 함께 불렀어야 했을 것을 깜빡했다. 지금 이 글은 궁 집사님이 한국에서 떠나던 며칠 전에 선물로 사준 최신형 랩탑 컴퓨터로 쓰고 있다. 우리 세 부부는 허심탄회하게 옛 이야기를 하며 저녁 만찬을 나누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30년 만에 만난 옛 교인들을 심방하는 것으로 나의 2개월간 미국 체류는 끝을 맺게 되었다. 고국에서 추석 맞이하러 내일 비행기에 오른다. 일상행전은 이것으로 마친다.

 

At  North Berrington, Chicago, 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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