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때 저물어서 날이 어두니"

 


누가복음 24장은 누가복음서의 마지막 장입니다. 끝인 셈이죠. 이야기의 결말을 담고 있는 장입니다. 그런데 누가 24장은 놀랄만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천지개벽과 같은 사건, 사람의 작은 머리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사건을 기술함으로 시작합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기상천외한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23장까지 죽음을 향해 치닫던 이야기가 간밤에 죽음을 넘어 생명의 새로운 세계가 은밀하게 도래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마치 장독위에 올려놓았던 반죽 그릇이 누룩 덕에 간밤에 밤새도록 은밀하게 덜그럭 거리더니 마침내 아침녘에 뚜껑을 밀치고 올라온 것을 본 한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과도 같습니다.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누가 24:3)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지만 이전 세상에 살고 있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 수 없었습니다. 자기들이 알고 있었고, 그 위에 자기들의 삶 전체를 세워놓고 있었던 그 세상의 사람들에겐 더 이상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은 없었습니다. 그저 슬픈 빛을 띠고 낙심하여 자기가 살던 옛 마을로 돌아갑니다. 예루살렘에서의 모든 드라마는 비극으로 끝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다시 고향마을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더라.”(누가 24:13)

 

쓸쓸하게 낙향하는 두 사람, 그런데...... 누군가 그들에게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기시작합니다. 이 낯선 사람은 적어도 이십 리 이상을 그들과 함께 길을 걸어가며 대화를 나눕니다. 두 사람이 겪었던 예루살렘에서의 비극이야기를 중심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나사렛 출신의 예수라는 분의 비극적 처형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를 따랐던 이 둘은 비극적 결말에 충격을 받고는 슬픔가운데 낙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낯선 동행자는 그 이야기에 대한 해석을 자세하게 해줍니다. 메시아의 고난의 의미와 이유에 대한 사경회였던 셈이지요. 그것도 길 위에서 열린 사경회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누가 24:27)

 

그 낯선 동행자의 가르침에 깊이 매료된 두 사람은 그와 헤어져야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 서운했습니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어졌기 때문입니다.”(누가 24:29) 함께 있을 시간은 점점 없어져가고 그분의 말씀해석의 심오함과 정밀함은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영적 갈증이 속으로 더욱 타들어갔습니다. 그들은 그 낯선 동행자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붙잡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애원했습니다. “우리 집에 묵어주세요!” “우리와 함께 있어주세요.”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누가 24:29) 왜 이런 간청을 드렸던 것인가요? 이유는 이렇습니다.

 

      “저녁때가 되고, 날이 이미 저물었기 때문입니다.”(새번역)

      “이젠 날도 저물어 저녁이 다 되었기 때문입니다.”(공동번역)

      “for it is nearly evening; the day is almost over.”

      “for it is toward evening, and the day is far spent.”

 

  .**********

 

저와 함께 있어 주세요.” “제 곁에 있어주세요” “마지막 까지 제 곁을 지켜주세요” “저 혼자 내두지 말아주세요” - 모두 누군가 나와 함께 있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어떤 외롭고 불쌍한 영혼의 탄원입니다.   

      - 천둥치는 여름밤에 혼자 잠을 자다 놀라 깨어난 어린아이의 외침일 수도 있겠지요.

      - 타국에서 홀로 외로운 밤을 보내는 어떤 외국인 노동자의 한숨 섞인 노래일 수도 있겠지요.

      - 요양원에서 자녀들을 그리워하며, 혹은 고통 속에 임종을 앞둔 어떤 암환자가 그의 배우자의

        손을 꼭 잡고 절규하는 목소리일 수도 있겠지요.

     - 때론 군중속의 고독을 슬퍼하며 혼잣말로 하늘을 향해 애원하는 소리일수도 있을 겁니다.


모두 누군가의 임재와 동행을 간절히 바라는 애원일 겁니다.

 

? 때는 저물어가는 저녁시간이고 날은 이미 기울어졌기 때문입니다. 단지 물리적 시간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아니지요. 삶의 시간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삶의 굴곡과 굴절, 오르락내리락, 슬픔과 기쁨의 날들, 구름 낀 날들과 화창했던 날들, 성공과 실패, 깔깔대는 웃음의 날들과 한없는 눈물을 쏟고 펑펑 울던 날들, 이 모든 것들이 결국 언젠가 마무리를 지어야할 때가 올 것입니다. 저녁은 올 것입니다. 날은 기울어가고 땅거미가 깊게 지면에 드리울 날이 시간이 오기 때문입니다. 혼자만 있어야하는 시간입니다. 누구도 내 주변이 있지 못할 시간입니다. 아무런 도움도 위로도 위안도 발견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 그 때 우리는 이렇게 하늘을 향해 외칩니다. “오, 주님, 때가 이미 저물고 날이 어둑해졌습니다. 제발 저와 함께 계셔주세요!”라고.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 국교회 성직자이며 찬송작가이며 시인인 헨리 프랜시스 리티(Henry Francis Lyte, (17931847)가 있었습니다. 리티는 24살에 7살의 연상인 앤 맥스웰(Anne Maxwell)과 결혼하여 두 딸과 세 아들을 두었고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리티의 건강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종종 천식과 기관지염으로 고생을 했고 때론 휴양지를 찾아 유럽전역을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결핵은 그를 더 이상 사역할 수 없도록 침대에 가두어 놓게 되었습니다. 어느 주일아침이었습니다. 이 날은 그가 오랫동안 목사로서 사역했던 교회에서 고별설교를 해야 하는 주일이었습니다. 이 때 그에게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시인으로서 목사로서 자기의 삶의 끝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직감하였습니다. 이 때 작시한 것이 찬송 시 “Abide with me”(“저와 함께 있어주세요!”)였습니다. 결핵으로 죽어가는 침대에서 작사한 마지막 시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 자신에게 뜻 깊은 시가 된 셈이지요. 결국 그는 54살에 지금의 프랑스 니스의 휴양지에서 임종을 맞게 됩니다인생의 황혼이 깃들고 이젠 떠날 때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직감한 연약해진 영혼이 하나님께 드리는 마지막 간청을 담고 있는 시입니다. 영혼의 울림이 있는 기도문이기도 합니다.

 

7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분명 누가 24:29에서 영감을 받았음에 틀림없습니다. 당시 영국인들이 사용하고 있던 흠정역(King James Version)의 번역을 그대로 따왔기 때문입니다. “Abide with us: for it is toward evening, and the day is far spent.”(Luke 24:29)

 

물론 여섯 째 연의 세 번째 시행은 고전 15:55에서 인용한 것이 분명합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개역개정)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새 번역)

      “O death, where is thy sting?

        O grave, where is thy victory?” (KJV)

 

그리고 이 감동적인 시는 얼마 후 영국 작곡가인 윌리엄 헨리 몽크(William Henry Monk)1861년에 작곡한 "저녁"(Eventide)이란 멜로디에 붙여 불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분의 한국찬송가 481장에 수록되어 있는 곡과 가사가 바로 이 시입니다(“때 저물어서 날이 어두니”). 한국 찬송가위원회는 이 찬송을 그리스도인의 삶: 미래와 소망이란 항목 아래 집어넣었는데 아주 적절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문 시는 모두 7연으로 되어있으나 찬송가 편집을 위해 3연과 4연과 6연을 생략하고 나머지 4연을 찬송가 가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원문의 7연을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여 올립니다. 먼저 시의 제목과 성경본문의 정황을 상상해보십시오. 그리고 가사를 반복해서 음미해 보십시오. 마음속에 영상이 떠오른다면 혼자 조용히 찬송을 읊조리거나 아니면 첨부한 유튜브 영상을 참조하십시오. 영적 유익을 얻기를 바랍니다. 한해가 저물어가는군요! 아듀 2015년이여~

 

Abide With Me

 

[1]

저와 함께 있어주세요. 밤이 빠르게 찾아옵니다.

어둠이 깊어져갑니다. 주님, 저와 함께 있어주세요.

날 돕는 자 더 이상 없고 위로도 떠나 갈 때

어쩔 줄 몰라 하는 불쌍한 저를 도와주세요. 저와 함께 있어주세요.

Abide with me; fast falls the eventide;

The darkness deepens; Lord with me abide.

When other helpers fail and comforts flee,

Help of the helpless, O abide with me.

 

[2]

인생의 작은 날이 썰물처럼 순식간 빠져나갑니다.

이 땅의 기쁨들이 희미해져가고 그 영화들이 지나갑니다.

모든 것들이 변하고 썩어가는 것을 봅니다.

, 변치 않는 당신이시여, 저와 함께 있어주세요.

Swift to its close ebbs out life's little day;

Earth's joys grow dim; its glories pass away;

Change and decay in all around I see;

O Thou who changest not, abide with me.

 

[3]

간청하오니 짧은 한 순간도, 지나가는 말 한마디도 아니기를,

주님, 당신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셨던 것처럼

저에게도 친밀하고, 낮아지시고, 참으시고, 자유롭게 대해 주세요.

잠시 머물다가 가시지 마시고 저와 함께 있어주세요.

Not a brief glance I beg, a passing word,

But as Thou dwell'st with Thy disciples, Lord,

Familiar, condescending, patient, free.

Come not to sojourn, but abide with me.

 

[4]

제 젊은 시절 당신은 제게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당신께 반항하고 고집스럽게 비뚤어지고

종종 당신을 떠났지만 당신은 저를 떠나지 않으셨지요.

마지막 까지, , 주님, 저와 함께 있어주세요.

Thou on my head in early youth didst smile,

And though rebellious and perverse meanwhile,

Thou hast not left me, oft as I left Thee.

On to the close, O Lord, abide with me.

 

[5]

흘러가는 매 순간마다 저는 당신의 임재가 절실합니다.

당신의 은혜 말고 무엇이 유혹자의 힘을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당신 말고 누가 저의 인도자가 되어 제 곁에 있어줄 수 있겠습니까?

구름 낀 날이든 화창한 날이든, 주님, 늘 저와 함께 있어주세요.

I need Thy presence every passing hour.

What but Thy grace can foil the tempter's power?

Who, like Thyself, my guide and stay can be?

Through cloud and sunshine, Lord, abide with me.

 

[6]

당신께서 가까이 계서 저를 축복하신다면 어떤 원수도 두렵지 않습니다.

어떤 불행도 감당할 수 있으며 어떤 슬픔도 쓰리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이 찌르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당신이 저와 함께 있어주신다면 저는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I fear no foe, with Thee at hand to bless;

Ills have no weight, and tears no bitterness.

Where is death's sting? Where, grave, thy victory?

I triumph still, if Thou abide with me.

 

[7]

제가 눈을 감을 때까지, 당신의 십자가를 굳게 잡아주소서.

어둑한 어둠 속에 빛을 비춰주시고 하늘을 가리켜 저로 보게 해 주세요.

천국의 아침이 동터오면 땅의 헛된 그림자들은 사라질 겁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 주님 저와 함께 있어주세요.

Hold Thou Thy cross before my closing eyes;

Shine through the gloom and point me to the skies.

Heaven's morning breaks, and earth's vain shadows flee;

In life, in death, O Lord, abide with me.

 

 

* 스코틀랜드의 장엄한 풍광을 배경으로 왕립 스코틀랜드 근위대의 밴드(Pipes & Drums Royal Scots Dragoon Guards)의 연주로 들어보십시오.*

https://www.youtube.com/watch?v=oFHypH9j0EQ


[River Mersey의 황혼]

river mersey.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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