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교회개혁은 먼데서 찾을 것이 아닙니다.”

- 루터와 면죄부와 95개조 논박 -

 

 

어김없이 종교개혁기념일이 돌아옵니다. 매년 1031일이 그날이지요. 물론 가을이 주는 감성자극에 민감한 4~50대 이상의 사람들은 “10월이 가는 마지막 날이란 노래를 읊조리고, 일부 도시풍의 젊은 엄마들은 어설프게 돈 들여가며 미국풍의 할로윈데이 치장을 어린 아이들에게 흉내 내게 하는 날이기도 합니다만, 한국의 건전한 기독교인들이라면 매년 돌아오는 종교개혁기념일의 의미를 한번 정도는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이 글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가 일반신자들이 아니라 목회자들이나 신학생들이라는 사실이 자못 아쉽지만 할 수 없군요. 신학은 궁극적으로 일반 크리스천들의 신앙을 북돋아주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없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500년 전인 16세기 초에 있었던 일입니다. 때는 늦은 가을이었습니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작센 주에 비텐베르크라는 작은 대학도시가 있었습니다. 그곳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던 마르틴 루터(1483 1546)라는 사제가 있었습니다. 그가 살던 시대는 로마의 교황들의 세력이 유럽 전역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당시 로마 교황이었던 율리우스 2세는 로마에 있었던 옛 성당을 헐고 초대형 성당을 짓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물론 그 성당 안에는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한 자신의 묘소도 안치하려고 했습니다. 보다시피 예나 지금이나 큰 교회당 건물이나 대형 성당을 지으려는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큰 소리를 하지만 실상은 한번 자기의 업적을 역사에 남겨보자는 허영심의 노예들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시작한 것이 그 유명한 로마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St. Peter's Basilica) 건축이었습니다. 120년이나 걸려 완공한 초대형공사였기 때문에 21명의 교황을 거쳐야했습니다(1506~1626). 미켈란젤로와 같은 당시 최고의 건축가들을 초대하여 짓는 초대형 성당이다 보니 재정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교회의 당국자들은 제국의 신도들에게 대형 성당 건축의 신학적 이유를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헌금을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원체 엄청난 공사비가 들어가는 공사였기에 도무지 건축이 제대로 진행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 때 교황이 레오 10(1475 1521)였습니다.

 

교회당을 건축하다가 재정난에 봉착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유능한 전문 부흥사를 불러다가 부흥회를 열고 헌금을 거둬야 합니까? 복채를 팔 듯이 하늘의 신령한 복을 빌미로 교인들을 회유하여 돈을 쥐어짜야 합니까? 아니면 공사를 중단해야합니까? 처음부터 잘못 시작된 건축이었던 것은 아닌지요? 어느 조직이든 잔머리에 능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레오 10세와 그의 측근들은 머리를 싸고 돈을 만들어 낼 궁리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나오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면죄부”(免罪符, Indulgenzbrief, Ablassbrief)를 파는 것이었습니다. 역사상 위대한 종교사기와 같은 면죄부 판매가 시작된 것입니다. 면죄부란 돈이나 재물을 바친 사람에게 그가 지은 죄를 면제한다는 뜻으로 교황이 발행한 증서입니다. 면죄(indulgence, Ablass)는 죄를 지은 사람이 받게 되는 형벌을 감면시켜주는 방식으로서, 감면을 받으려면 죄가 용서함을 받은 후에 참회를 하거나, 아니면 죽은 후에는 연옥(purgatory, Fegefeuer)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옥(煉獄)이란 말은 정화와 정련의 장소로, 지옥에 갈만한 죄는 아닌 죄를 지은 사람이 죽은 후에 가는 곳으로 거기서 기도와 참회를 통해서 정화되고 깨끗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천국으로 가기 전에 잠시 머무는 일종의 대기소라는 것입니다.

 

면죄부를 판매하여 성 베드로 성당의 건축비를 충당하려는 계획은 평신도들의 신학적 무지를 볼모로 삼은 희대의 종교적 사기요 코미디였습니다. 종교적 경건과 헌신으로 위장한 세기적 보이스피싱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성 베드로 성당을 재건축하는데 충당되는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를 판매하기로 결정하자 교황 레오 10세는 독일 지역 담당 판매책으로 도미니칸 종단의 신부인 요한 텟젤(Johann Tetzel)을 임명하였습니다. 텟젤은 독일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면죄부 판촉에 열을 올렸습니다. 물론 그 자신이 해박한 신학자였기 때문에, 정교한 신학적 감언이설로 면죄부 판매의 신학적 정당성을 설파하였고, 무지했던 평신도들은 두려움과 죄책감에서 벗어나려고 면죄부를 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독일 지역은 군주들이 분할하여 다스렸기 때문에 면죄부 판매는 군주들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살고 있던 지역의 군주는 프레더릭 3세였는데 그의 영토와 인근한 지역의 군주인 게오르크도 면죄부 판매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면죄부 판매소식이 마르틴 루터가 있던 비텐베르크 지역의 일반인들에게도 전해지자 사람들은 면죄부 판매가 허락된 지역으로 가서 면죄부를 샀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고해성사를 할 때 신부에게 이 사실을 고백하게 됩니다. 즉 그들이 산 면죄부를 보여주면서 더 이상 자신들의 죄를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마르틴 루터는 분노하게 됩니다. 정말 뚜껑이 열리기 직전이었습니다. 죄의 용서는 오로지 하나님의 자유로운 호의에 따라 공짜로 주어진 선물인데, 그 선물을 돈을 받고 팔고 산다는 일에 루터는 견딜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가톨릭의 사제로서 그리고 신학교의 교수로서 마르틴 루터가 할 수 있었던 최상의 방식은 신학공개토론을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왜 면죄부 발행이 희대의 사기 행각인지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감정적인 폭로가 아니라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종종 행해지는 공공의 학문적 토론 형식을 빌어서 이 일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면죄부에 대한 오류를 95개 조항 형식으로 작성하여 비텐베르크에 있는 온 성도 교회”(All Saints’ Church)의 대문에 그 지역에선 그저 성채(城寨)교회”(Schlosskirche)라고 함 - 공청회 성격의 토론회를 요청한 것입니다. 그날이 15171031일이었습니다. 그 다음날은 111일로 비텐베르크의 교회당에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면죄부에 관하여 토론할 수 있는 95개 조항을 대자보 형식으로 붙인 것입니다. 제목과 내용은 모두 라틴어로 되었는데, 먼저 제목을 보면 이렇습니다. Disputatio pro declaratione virtutis indulgentiarum. 번역을 하자면 면죄의 선언능력과 그 효용성에 관한 논의입니다. 아마 95개 조항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조항이 27번 조항일 것입니다. 이 조항은 면죄부 판매의 달인이었던 텟젤이 돈을 걷기 위해 허풍을 떨며 과장해서 한 말로 알려진 헌금함에 동전에 떨어지는 순간 연옥에 있던 한 영혼이 벌떡 일어날 것이다.”(, “Wenn das Geld im Kasten klingt, die Seele aus dem Feuer springt!”; , "As soon as a coin in the coffer rings, a soul from purgatory springs")는 희대의 명구(!)에 담고 있습니다.

 

기막힌 사실은 15세기 중엽에 발명된 인쇄술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 라틴어로 작성된 루터의 95개조 논박문은 3개월 후인 15181월 즈음 루터의 친구인 크리스토프 폰 슈에울(Christoph von Scheurl)과 그 외 여러 친구들이 독일어로 번역하여 출판하였는데 2주 만에 독일 전역에 배포되었고 2개월 안에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다는 것입니다. 인쇄술의 발달이 종교개혁의 불길을 신속하게 확산시킨 것입니다. 다 때가 잘 맞아 떨어진 것이지요.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루터가 처음부터 대대적인 종교개혁운동을 일으키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나중에는 인류 역사의 위대한 운동이라 칭함을 받게 되었지만 처음 시작은 단순하고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지 돈으로 판매하거나 살 수 없다는 가장 기본적인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하려다 보니 마르틴 루터는 교황청과 요한 텟젤의 면죄부 판매 논리에 반론을 제기하게 되었고, 이것을 95개조 반박논지로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95개조 문항들의 내용을 보면 당시의 교회(로마 가톨릭 교회)가 얼마나 부패하고 썩어서 악취가 나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알게 되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교회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95개조 논지들을 다음과 같은 것들에 대해 반대하고 저항하는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로, 사제들의 잘못된 관행들, 즉 성직을 남용하여 개인적 이득과 명예와 명성을 취하는 악습들을 질타하고 반대하는 목소리입니다. 오늘날에도 별반 다르지 않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교단의 각종 자리에 목숨을 건 목회자들이 적지 않음을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학교 시절 제대로 성실하게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나중에 교단 정치에 뛰어들어 각종 자리에 나서는 것을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교단의 크기에 상관없이 총회장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종로 5가에 가면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일단 직위를 얻게 되면 각종 행사에 참여하게 되고 각종 교통비(車馬費)와 음식대접에 영혼을 쉽게 전당포에 맡기는 졸부 지도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성직이 개인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는 않는지요?

 

둘째로, 당시 교회의 교권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계급주의였는데, 교황을 비롯하여 교권주의자들과 사제들은 좋은 목회지나 임지가 나오면 자신들의 권한을 사용하여 친인척을 그 자리에 세우는 일을 하였습니다. 친인척 특혜를 주는 인사정책을 썼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nepotism이라 하는데 라틴어 nepos조카” “손자라는 뜻입니다. 즉 가까운 친인척이나 자식에게 좋은 직책이나 자리나 목회지나 사역지를 주선해주는 것입니다. 요즘말로 일종의 세습이지요. 교권을 사용하여 자식이나 친인척에게 혜택을 주는 일이 다반사인 세상입니다. 이것은 정의로운 일이 아닙니다.

 

셋째로 성직 매매(simony)라는 것이 횡횡했습니다. 사도행전 8:9-24에 실려 있는 이야기를 보면 성직매매의 모범을 보는 것 같습니다. 사마리아 성의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의 안수로 성령의 능력과 권능을 받게 됩니다. 그러자 그것을 곁에서 지켜보던 전직 마술인 출신 시몬이 사도들에게 돈을 드리면서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라고 격하게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영어문구가 simony(성직매매)입니다. 루터 당시에 성직매매가 비일비재하였듯이 혹시 오늘날에도 돈으로 신학교육을 매수하고 목사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없는지. 혹시 노회 안에 목회자가 비어있는 교회를 놓고 힘이 있는 목사나 노회임원이 돈을 받고 특정한 사람에게 그 교회를 넘겨주는 일은 없는지, 목사안수를 자영업 차리는 사업면허증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들은 없는지 돌이켜 볼 일입니다. 아니면 교인들에게 영적인 축복을 준다는 미명아래 대접받기를 바라거나 은밀하게 돈을 요구하는 인간들은 없는지, 하기야 예언기도 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아먹는 몰지각하고 자격미달의 사이비 목사들은 없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면죄부 판매입니다. 이것 역시 현대적 형태로 나타는 일이 많습니다. 종종 설교나 다른 방식의 언사를 통해 교인들에게 죄책감이나 부족감을 부추기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사실상 대부분의 순진한 교인들은 교회가 요구하는 각종 많은 헌신들에 대해 충실하게 다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는 양심의 죄책감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는데도 목회자들이 그렇게 죄책감을 심어줍니다. 성수주일, 헌금생활, 각종 교회 봉사, 각종 집회 참석 등에서 교인들은 언제나 부족감을 느낍니다. 문제는 그러한 죄책감이나 부족감을 상환하는 방식으로 면죄부를 발행하는 경우입니다. 즉 누군가 더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복을 다 불러내어 축복해주는 일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 축복을 얻고자 더더욱 물심양면으로 헌신하게 됩니다. 말을 그렇게 하지 않아서 그렇지 솔직히 말해 요한 텟쩰의 유명한 말의 현대역인, “당신이 내는 헌금이 헌금함에 들어가는 순간, 그 헌금의 액수에 따라서 당신의 죄책감은 완화되거나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는 말에 대해 모두 속으로 아멘 하지 않습니까? 문제는 헌신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 보이는 사람이나 건물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근본적인 죄들에 대해 이야기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은 뒤로 제쳐놓고 종교적 열심의 부족, 교회적 헌신의 부족을 죄라고 몰아붙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현대적 면죄부 판매 행위가 어떤 형태로 행해지는지 주위를 둘러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10월 31일 종교개혁기념일 유감이었습니다.  


[오늘 날 독일 비텐베르크의 성채교회 대문에 실린 95개조 반박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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