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이별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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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봄은 죽음을 말하기에는 낯선 계절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계절을 가리지 않습니다. 아주 오래전 젊은 날 목회하면서 이 찬연한 봄에 어린 소녀 미셀 원의 장례식을 집례 하였기에 봄은 나에게 언제나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슬픔과 기쁨, 애탄과 희망, 봄 샘 추위와 그리움, 덧없음과 영원한 소망 말입니다.

 

지구를 침공한 무시무시한 외계군단처럼 검은 가면을 쓴 코로나바이러스는 사정없이 지독한 죽음의 악기(惡氣)를 뿌리고 다닙니다. 연약하기 그지없는 병약자들과 노인들이 무방비 상태로 목숨을 잃어갑니다. 전 세계적 패닉 상태입니다. 신의 분노인가? 인류의 교만 때문인가? 나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애도하고 슬퍼할 뿐입니다.

 

여러 해 전이었습니다. 한 늙으신 어머니가 아들부부와 함께 교회에 출석하셨습니다. 아니 몸이 쇠약하셔서 늘 아들부부가 모시고 오셨다 하는 편이 맞겠습니다. 본당이 이층인 관계로 오르락내리락 하시기가 불편하셨지만, 교회 출석을 즐거워하셨고 종종 오후 예배도 함께 하셨습니다. 예배 후 2층에서 계단 잡이를 잡고 아들 며느리와 함께 내려오시면 언제나 담임 목사인 내 손을 꼭 잡으셨습니다. 나도 그 어머니의 손을 유달리 꼭 잡았습니다. 연세가 우리 어머니와 같으셨기에 늘 어머니 손을 잡듯이 그렇게 잡았습니다. 그 어머니도 목사인 나를 마치 아들처럼 따스하게 잡으시고 늘 목사님, 고마워요!”라는 말씀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 부드럽고 따스한 그러나 쇠약하기 그지없는 그 어머니 집사님의 손의 감촉을 잊을 수 없습니다.

 

엊그제 병원에 급히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식을 알게 된지 몇 시간 후에 하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는 부고를 들었습니다. 1930년생이시니 91세입니다. 우리 엄마보다 한 살 어리십니다. 어제 45(주일) 입관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 46일 오전 850분에 발인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식 두 번 모두 작년에 부임한 담임목사가 집례 하였습니다. 나는 은퇴목사로, 전 담임목사로서, 후배 순례자로서, 성도의 한 사람으로서 두 예배에 모두 참석했습니다. 특별한 인연 때문입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담임목회자로서 보살피던 어머니 김연수 집사님의 소천을 생각하니 온갖 상념들이 마음을 휘 젓습니다. 어제 어머니 김연수 집사님이 세상을 떠나시던 날이 우연히(?) 나의 어머니 송연순 권사님의 92세 생신과 같은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을 알아보시지 못하는 상태로 병석에 누신지 2년이 넘어갑니다. 요즘은 코로나 땜에 그리운 어머니 얼굴을 볼 수도 없습니다. 우리 어머니의 얼굴과 김연수 어머니 집사님의 얼굴이 오버랩 됩니다. 한분의 떠나심과 한분의 생신 그리고 화창한 봄날과 자목련이 어지럽게 뒤섞이는 하루였습니다.

 

예식에서 낭독된 하나님의 말씀이 새삼스레 다가왔습니다. 입관예배에선 데살로니가전서 4:13-18, 발인예배에선 히브리서 11:13-16이 낭독되었습니다. 사도 신경을 유가족들과 함께 고백할 땐 나도 모르게 소스라쳤습니다. 일종의 전율을 느꼈습니다. 특히 사도신경의 맨 마지막 고백문장이 그러했습니다. “나는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극히 일상적 용어로 표현한 구약의 구절이 떠오릅니다.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삭의 죽음을 성경의 저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 “늙고, 나이가 들어서, 목숨이 다하자, 죽어서 조상들 곁으로 갔다.” “자기가 받은 목숨대로 다 살고, 아주 늙은 나이에 기운이 다하여서, 숨을 거두고 세상을 떠나, 조상들이 간 길로 갔다.” “마지막 숨을 내 쉬고, 참 좋은 늙은 나이에 죽었다. 노인으로서 천수를 누리고 이미 먼저 모여 있는 자기의 백성들에게로 가게 되었다.”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을 아실 것이다. 죽는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이 문구와 함께 내가 늘 기억하는 구절이 시편에 있습니다. 덧없는 인생과 죽음과 삶의 의미를 진심을 담아 고백하는 유명한 구절 말입니다. 시편 103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습니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를 것입니다!” (14-17)

 

왜 하필 찬란한 봄날에 전 세계적 코로나가 창궐하는지 나는 모릅니다. 생명이 약동하는 이 봄에 고통과 죽음의 냄새가 지구를 뒤 덮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압니다. 우리는 부활의 소망을 내려놓지 않고 견디고 견뎌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외국인과 나그네와 순례자로서 우리의 본향 곧 하늘에 있는 것을 사모하며, 넉넉히 견디며 이기며 하늘 소망의 끈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모든 것을 넉넉히 견디고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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