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세속성자를 읽고”

 

청어람 양희송 대표로부터 따끈따끈한 책 한권을 추석선물로 받았다. 이름 하여 “세속성자”(A Secular Saint)다. 책 제목이 “네모난 둥근 탁자”같지 않은가? 세속과 성자가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4자 성어처럼 붙여서 사용한다. 이 책은 한국 교회를 향하여 온실 안에 꽃처럼, 상아탑 안의 교수들처럼, 성문 안에 병사들처럼, 속리산(俗離山)의 수도사처럼, 휴거만을 바라는 근본주의자처럼, 탈역사적으로 초역사적으로 무역사적으로 사는 개념 없는 보수주의자처럼 안에서만 지지고 볶지 말고, 당당하게 성문바깥으로 나가 장엄한 행렬을 이루어 행진하라는 부르짖음이다. “성자의 행진”이란 첫 장의 제목은 분명 대중적 크리스천 찬송인 “When The Saints Go Marching”이 떠오른다. 한 자리에 앉아 스캔 하듯 읽었다. 아주 쉬운 언어로 설득력 있게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매 수요일 청어람 모임에서 행한 강연/설교를 다시 써서 대중들 앞에 선보인 책이다. 이 책을 읽은 후에 내가 몇 주 전에 교회에서 행한 설교의 일부분이 떠올라서 덧붙여본다. 양희송의 세속성자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이 이런 것이겠지 하는 마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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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호칭 가운데, “성도”가 있다. 거룩한 무리라는 뜻이다. 그럼 성도(聖徒)는 성인, 성자의 집합 명사이다. 영어로 Saint라고 한다. 여러분과 나도 성인이며 성자인 셈이다. 그런데 성도, 성인, 성자라는 말은 실로 거북스런 단어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쉽게 내뱉은 말인 동시에 곰곰이 생각하면 가장 부담스런 단어다.

 

교회력에서는 11월 1일을 “모든 성인들 날”(All Saints’ Day)이라 한다. 알려진 성자나 무명의 성자나 모두를 기리는 날이다. 이런 절기를 기념하는 이유는 하늘에 있는 자들(승리한 교회)과 살아있는 자들(전투하는 교회) 사이에 영적 연대감이 있다는 신념에서 시작되었다. 서구 기독교에서 종종 지켜지는 기념일이다. (가톨릭, 영국 성공회, 감리교회, 루터교회, 그밖에 다른 개신교회들)

 

중세에는 성인 숭배사상이 있었다. 이에 대해 캘빈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아주 오래전 이 세상을 떠난 성인/성자들을 하나님과 동격으로 여겨 승화시키고 그 성인들을 숭배하고 이 이름을 불러내고 찬양한다. 그러나 그러한 가증스런 행동은 하나님의 위엄이 흐려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엄을 짓누르고 박멸하는 것이다.”

 

어쨌든 성인, 성자, 성도라는 호칭이 왠지 거북하고 부담스럽고 편하지 않다. 우리 중 누구도 그렇게 선하지도 착하지도 거룩하지도 않고, 앞으로도 선하지고 착하지고 거룩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신경 중에 있는 “성도의 교제”(communion of saints)라는 문구를 아무 생각 없이 고백할 때가 부지기수다. 누군가 당신에게 성자, 성인 이라 부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부끄러워 뒤로 물러서는 제스처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성인, 성자는 위대한 신앙의 영웅들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회퍼, 주기철, 손양원, 테레사 수녀, 데스몬드 투투 주교 등이 있겠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성자, 성인은 아마 이런 사람들이겠다.

    - 그들의 삶의 내용을 통해 그리스도의 길을 보여주는 사람

    - 외형적 경건함이 아니라 “삶의 모범”을 보여주는 사람

    - 개인적 신앙의 확신보다는 하나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갖는 사람

    - 입으로 수년에 걸쳐 예수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는, 여러분에 대해 예수께 말씀드리는 것

      (기도)을 포기치 않은 사람

    - 삶의 모든 계절에 끈질기고 견고한 믿음을 여러분에게 말하는 대신에, 가장 어두운 날들에

     은혜의 실타래를 붙드는 용기를 여러분에게 보여주는 사람

 

성인, 성도, 성자는

    - 일요일에 교회의 기둥이 아니라 월요일에 그리스도의 모범이 되는 사람

    - 그리스도에 대해 웅변적으로 설교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다른 사람들, 낯선 자들,

      버림받은 자들, 만지면 안 되는 사람들,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들, 꼴찌인 사람들, 별 볼 없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고 또 볼 수 있는 사람.

    - 힘들고 어려운 일상의 삶 속에서도 여러분들에게 그리스도의 거룩한 길을 보여주는 사람

    - 삶의 내용으로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의 길을 보여주는 사람

 

성경이 우리에게 권면하는 성자의 삶이란

    - 설교를 많이 듣는 사람, 성경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 신학적 지식으로 가득한 사람,

      성경과 경건서적을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라(물론 이것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겠지요)

    - 주일 아침의 거룩함에 대해서가 아니라 월, 화, 수요일의 거룩함의 삶, 목, 금, 토의

      증언의 삶을 살아내는 사람입니다.

    - 하루를 시작할 때와 하루를 마감할 때 경건하게 드리는 기도뿐 아니라 하루 온종일과

      밤까지도 계속되는 거룩한 삶을 살아내는 사람입니다.

    - 기도하고 성경을 보는 경건함과 신앙의 증언뿐 아니라, 모든 관계들에서 신앙을 증언하고,

      모든 정황과 환경에서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증언하고, 주어진 삶의 각 역할에서

      하나님의 주되심을 증인하는 사람입니다.

 

*********

 

청어람의 양희송은 “세속성자”라는 책을 통해 크리스천의 삶 전체가, 크리스천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온전한 다스림이 실현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를 갈망하라고 도전한다. 더 이상 교회가 성과 속이라는 이원론적 프레임에 갇혀있지 말고 벗어나라고 권고한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확장을 위한 강력한 도구역할을 하라고 도전한다. 삶이 종교요 삶이 예배가 되라고 자극한다. “지금 여기”로 돌입하는 하나님의 왕국의 나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성자들의 장엄한 행진(When The Saints Go Marching)에 조인하라 한다.

 

When The Saints Go Marching~

https://www.youtube.com/watch?v=wyLjbMBpGDA (루이 암스트롱의 트럼펫 연주)

https://www.youtube.com/watch?v=lkNPSlQbxNc (영문 가사)

 

 

양희송《세속성자: 성문 밖으로 가나간 그리스도인들》(북인더갭, 2018). 250쪽, 14,000원

양희송.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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