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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대학원 장학금 유감”

 

한국의 신학대학원들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공립형 신학대학원이 있고 다른 하나는 사립형 신학대학원이 있습니다. 전자는 교단이 이사를 파송하여 운영하는 신학대학원이고 후자는 개인이 세워 이사회를 구성하여 운영하는 신학대학원입니다. 예를 들어, 수도권을 중심으로 총신대 신학대학원이나 장신대 신학대학원, 고신대 신학대원, 합동신학 대학원 대학교, 서울신학대학원, 감신대 신학대학원,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서울 성경대학원 대학교, 침례신학대학원 등은 공립형 신학대학원이지만,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 대학교, 국제 신학대학원 대학교, 에스라 성경 대학원 대학교 등은 사립형 신학대학원입니다.

 

어느 형태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닙니다만, 각 형태의 장단점들이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공립 대 사립. 물론 두 형태 모두 학교로서 “공공성”을 가져야 합니다. 심지어 사립형이라도 학교는 공공성과 투명성을 지녀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신학대학원생들을 위한 장학금 모금에 관한 것입니다. 먼저 장로교 계통의 신학대학원에 국한하여 말씀드립니다. 주지하다시피 장로교회는 독특한 교회 정치 형태를 따르고 있는 개혁신학 전통의 교회들입니다. 장로교회는 지역교회의 당회와 지역교회들의 모임으로서의 노회, 그리고 노회들의 모임으로서 총회가 있습니다. 당회, 노회, 총회 기관 중에 장로교회의 중심은 노회(Presbytery)입니다. 따라서 장로교회는 당회도 총회도 아닌 노회가 모든 행정의 구심점이 됩니다. 심지어 목사도 노회에서 안수를 받고 소속 개 교회에 임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역 교회 목사의 목사로서의 자격증빙서류(credential) 역시 노회에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교단에서 목회자를 배출하려면 먼저 지역 노회에서 그 교단의 목사가 될 만한 사람들을 선발하여 해당 교단 신학대학원에 천거하고 거기서 신학교육을 받도록 합니다. 장로교 계통의 신학대학원은 노회가 신학생을 교단 신학대학원에 위탁시켜 교육하는 제도입니다. 신학대학원은 노회에서 보낸 사람을 다시 선별하여 일정기간(보통 3년 과정의 목회학 석사[M.Div.])을 신학 훈련을 시키게 됩니다. 신학대학원의 교수들은 교단의 목사를 양성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장로교 개혁신학을 통전적으로 구비하도록 서로 협력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신학생들 역시 재학 중에는 절대로 신학을 편식하거나 한 분야만을 집중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신학대학원 시절에 학생들이 학회 활동을 하는 것을 장려하지 않습니다. 성경 신학, 역사 신학, 조직신학과 윤리학, 실천신학과 선교학과 교육학 등 모든 분야를 골고루 탐색하여 건전한 개혁신학의 기초와 뼈대를 놓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모든 각 분과 신학들을 포괄하는 “하나님 왕국 신학”(Kingdom Theology)을 개혁-장로교신학의 근본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 점에서 모든 신학교수들은 동의하고 공감대를 형성하여 신학생들로 하여금 졸업할 때 즈음되면 같은 기상을 가진 개혁파 목회자(Kingdom co-worker)로서 발을 내디뎌야 할 것입니다.

 

다시 돌아가, 노회가 신학생들을 교단 신학대학원에 위탁하여 교육을 시키는 것이 장로교 신학교육의 특징이라면, 노회는 그들이 신학대학원에 보낸 신학생들이 공부를 잘 할 수 있도록 영적, 정신적, 도덕적,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단순하게 말해 교단의 목사를 양육하는 일이기 때문에 마땅히 그들을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재정에 관한 문제로 국한해서 말해 봅시다.

 

신학교육에 오래 종사하다보니 종종 동문회 등에서 장학금을 만들어와 전달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전체 신학대학원 학우들의 채플시간에 장학금을 전달하곤 합니다. 물론 감사한 일입니다. 종종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동문회 임원들의 경우, 장학금 전달식은 아주 중요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어쨌건 그렇게 전달되는 장학금 액수는 몇몇 학생들에게 돌아가곤 합니다. 공정해야할 장학금 혜택 역시 담당자들의 사려 깊지 못한 판단 때문에 일부 특정 학생들에게만 주어지고 대다수 나머지 학생들은 전달식의 관람자나 들러리 정도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경험한 경우를 보자면, 이삼백 만원이나 많아야 몇 백 만원 정도였습니다. 그것도 동문회 임원들이 서로 각출하여(때론 회장이라는 명예에 상응하는 도덕적 값으로!) 어렵사리 만든 돈들입니다.

 

제발 이런 힘든 일(혹은 생색내기용 혹은 면피용 장학금 전달식)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대안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예,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공립형 교단신학대학원은 노회로부터 위탁받아서 신학생을 교육시킨다고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거꾸로 말해 노회는 그들이 보내는 신학생들의 영적 정서적 재정적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자, 여기서부터 상상력을 발휘해봅시다.

 

각 지역교회에서 주일에 교회 재정담담 위원들이 헌금바구니를 계수하면서 단돈 “만원”(10,000원) 한 장을 옆에 제처 놓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입니까? 아니지요! 단돈 만원 한 장을 옆에 빼어놓은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건 조금만 신경을 쓰면 됩니다. 그렇다면 한 달이면 한 교회에서 4만원은 아주 쉽게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 한 노회에 대충 잡아 50교회라고 한다면, 한 달에 노회 단위로 200만원이 아주 쉽게 모아질 것입니다. 한 학기 6개월을 모은다면 한 노회에서 신학생을 위한 장학금으로 1,200만원 모아집니다. 와우! 큰 소리로 “신학교 주일을 지킵시다!” 라고 현수막 광고하거나 “어려운 신학생을 도웁시다!”라고 교단지에 말하지 않고도 한 노회에서 한 학기에 1,200만원을 모으게 됩니다. 계산이 빠르신 분들은 일 년이면 2,400만원이 나오는 것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자, 적어도 한 노회에서 일 년에 큰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거둘 수 있는 신학교 신학생 장학기금으로 2,400만원이 적립됩니다. 와우!

 

자, 각 장로교 교단은 노회 수가 얼마나 됩니까? 대략 50개 노회라 합시다. 계산하자면 일 년에 한 교단에서 신학생 장학기금으로 1,200,000,000원입니다! 12억 원이란 말입니다! 이게 작은 금액입니까? 와우!

 

다시 돌아가 각 노회는 학 학기에 지 교회들에서 모금한 1,200만원 가지고 신학생 기금 위원회(student fund committee)를 구성하여 소속 노회에서 위탁한 신학생들을 면담하여 그들의 영적 정신적 가정적 재정적 상황을 깊이 파악한 후, 도와줘야할 금액을 정하는 것입니다. 물론 한 학기를 마치게 되면 신학대학원에서는 노회에서 위탁한 신학생들의 성적표(!)를 해당 노회로 보내면(돈을 준 당사자가 최소한 가져야할 권한!) 그 노회의 목사님들은 “혹시 어려운 일은 없었는지?” “학교생활은 잘하고 있는지?” “가정적으로 힘든 일은 없는지?” “제대로 소명 의식을 갖고 있는지?” “무슨 일로 어떤 과목은 과락을 하게 되었는지?” 등 다양한 멘토링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군기를 잡거나 위계질서용 갑질을 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신학을 공부하는 신학생도 자신들이 교단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동역하는 일원임을 인식하고, 또 나중에 자신도 목회자가 된 후에 새내기 신학생들을 양육하고 돕는 일에 발 벗고 나설 수 있는 동기를 갖게 될 것입니다. 이럴게 될 경우, 신학생들이나 현장 목회자들은 공립형 신학대학원에 대한 애교심도 더욱 커져 갈 것이고(우리 학교야!), 신학 교수들 역시 자신들도 교단의 목회자를 양육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낄 뿐 아니라 자신들도 교회의 일원임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참고로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사립형 신학대학원의 경우는 이와는 전혀 다를 수 있기에 여기서는 더 논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설교학자 프래드 크래독 박사가 어디선가 들려준 예화가 떠오릅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너무 감격한 나머지 예수께 나아와 1,000달러를 감사헌금으로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극구 사양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예수께 받아주시기를 강권하였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던 예수께서 그 사람에게 이렇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고맙게 받기는 하겠지만 한 가지 부탁을 하겠네. 들어주겠나?” 그러자 그 사람이 “뭐든지 말씀하십시오.” “다름 아니라 은행에 가서 1,000달러를 10센트짜리 동전과 5센트짜리 동전으로 바꿔다 줄 수 있겠나?” “아이고 그것쯤이야. 물론이죠.” 그 사람은 곧 바로 은행으로 달려가 1,000달러를 모두 동전으로 바꿔왔습니다. “주님, 여기 있습니다. 시키시는 대로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미안하긴 한데, 지금 이 동전을 내가 다 받아 가지고 가기에는 힘들 거든” “말씀만 하십시오. 뭐든지 순종하겠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1,000달러어치 동전을 다 자네 집으로 가져가게. 그 대신 내게 매일 10센트짜리 동전 하나와 5센트짜리 동전 하나를 가져다주게나.”

 

이 예화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계산에 능숙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1,000달러를 15센트씩 나누어 매일 예수께 가져오려면 적어도 18년 이상의 매일의 자그마한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1,000달러를 일시불로 헌금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18년 이상을 매일 15센트씩 나누어 지속적으로 헌금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여러분의 경험이 증명해줄 것입니다.

 

“아주 작은 실천이 큰 변화를 가져온다!”는 소박한 진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한 주일에 만원씩 각 교회에서 모은다면 일 년에 천문학적 금액이 된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 이런 게 하나님 왕국을 위해서 일하는 자그마한 실천입니다! 지금까지 “공립형” 신학대학원 장학기금 유감이었습니다.

 

[ Moomers Homemade Ice Cream farm, Traverse City, MI. by Northern Way of Life Photography] 

Moomers Homemade Ice Cream farm.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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