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이민과 신학과 교회

- 간략한 네덜란드 미국 이민사 -

 

 

미국 오대호 연안에 미시간 주가 있습니다. 미시간 호와 맞대어 길고 긴 해안선을 이루고 있는 서부 미시간에 그랜드래피즈(Grand Rapids)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영어로 된 신학 책을 읽는 사람들에겐 아주 익숙한 출판사들이 자리 잡고 있는 도시입니다. 어드만 출판사(Eerdmans), 베이커 출판사(Baker), 존더반 출판사(Zondervan), 이제는 옛날 이름이 된 크리겔 출판사(Kregel),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에도 점차 알려지고 있는 퓨리턴 출판사(Puritan) 등입니다. 그 동네사람들 말대로 미국의 예루살렘이라고 부를 정도로 그랜드래피즈 시는 종교색이 강한 도시입니다. 이유인즉 19세기 중엽, 그러니깐 1840년대에 네덜란드의 개혁파 크리스천들이 대거이민을 와서 주변 여러 마을과 도시에 정착했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인이 미국 신대륙에 대규모이민을 시작한 것은 17세기였습니다. 당시 네덜란드인들은 무역상으로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으며 미국 신대륙의 동부해안을 따라 정착했는데 1625년에는 뉴 암스테르담”(New Amsterdam)이란 이름의 무역기지를 건축하고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영국 이민자들과의 주도권 싸움에서 패배하고 도시이름도 뉴욕”(New York)으로 바뀌게 됩니다.

 

매우 종교적이었던 네덜란드인들은 미국에 정착하면서 그들 본국에서 개혁교회전통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1628년에 교단을 세웠습니다. 그 교단 이름이 미국개혁교회(RCA, Reformed Church of America)입니다. 미국개혁교회는 후에 미국 교회협의회(NCC, National Council of Churches)의 창립멤버교단이 됩니다. 네덜란드 이민자들은 1784년에 뉴브른스윅”(New Brunswick Theological Seminary)신학교를 세웠는데, 미국에서 개신교단 신학교중 가장 오래된 신학교입니다. 거의 백 년 후인 1866년에는 서부 미시간에 두 번째 교단신학교를 세웠는데, 웨스턴신학교(Western Theological Seminary)입니다.

 

17세기에 네덜란드인들의 제1차 대규모 미국이민물결을 이루었다면, 19세기 중엽인 1840년대에 제 2차 대규모 미국이민 물결이 시작되었습니다. 감자와 호밀과 같은 농업식량 재배가 흉작으로 인해 경제적 역경이 몰아치자 많은 네덜란드인들은 미국에 이미 와 있던 이민세대를 바라보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이민 물결이 시작하게 된 실제적인 이유는 다른데 있었습니다. “신학적이유였습니다. 당시 네덜란드에는 독일의 국가 교회(Landes Kirch)와 같은 위치의 개혁교회”(, Hervormd Kerk, , Reformed Church)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개혁교회 목사들과 교인들 가운데는 그들의 국가 개혁교회가 신학적으로 칼빈주의에서 떠나 점점 자유주의적이 되어간다는 위기감을 갖게 됩니다. 그들은 이러한 신학적 좌경화에 대해 반기를 들었고 여러 방식으로 저항을 하게 됩니다. 물론 국가에선 공권력을 동원하여 분리운동을 탄압하였습니다. 모임을 못하게 하거나, 주동된 분리자의 집에 군인들을 파송하여 살피게 하거나 분리를 옹호하는 목사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등 분리운동을 끊임없이 압박하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1848년도까지 그랬습니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저항하다가 마침내 국가개혁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오게 됩니다. 분리 교단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secession church). 이때가 1834년입니다. 네덜란드 근대 교회사에서 중요한 연대가 되는 해입니다. 이러한 신학적 신앙적 역경 속에서 분리그룹(seceders)중 상당수가 그들의 영적 지도자인 목사님들의 인도아래 미국으로 이민을 하게 됩니다. 이때가 1840년대와 1850년대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미국 중서부지역에 정착하여 마을과 도시를 세우게 됩니다. 아이오와 주의 펠라(Pella), 위스콘신 주의 오스트부르그(Oostburg)와 시다그로브(Cedar Grove), 그리고 1847년에는 네덜란드 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온 700여명의 사람들이 서부 미시간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들의 영적 지도자는 알베르투스 판 랄테( Albertus Christiaan van Raalte) 목사님이었는데 그들은 정착지의 이름을 홀란드(Holland)와 질란드(Zeeland)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대학(Hope College)과 신학교(Western Theological Seminary)를 세웠습니다. 그들이 세운 도시 이름들은 대부분 그들이 본국에 살았던 고향 마을이나 주의 이름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정착한 지역은 그들의 네덜란드에서의 삶과 비슷하게 농사와 목축업에 좋은 대평원 지역이었고 대부분 돼지와 소를 치고 농사를 짓는 농부일이 주된 직업이었습니다.

 

2차 대규모 이민 물결이 치던 1840년대 네덜란드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은 본국 개혁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왔던 크리스천들이었습니다. 미국에 온 그들은 자연스레 미국개혁교단(RCA)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인종적으로 같은 뿌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서부 미시간에서는 당시 호프대학과 웨스턴 신학교를 통해 네덜란드계 이민자들의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목사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미국에 온 이민자들 사이에서도 다시 신학적 논쟁이 붙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미 16세기부터 존재해온 미국개혁교단(RCA)이 신학적으로 좌경화되고 너무 미국적이 되어간다는 우려가 최근에 네덜란드에서 온 이민자들 사이에 들끓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려감을 표명한 사람들은 네덜란드에서의 분리”(secession) 사건을 기억하면서, 미국에서도 개혁교회는 좀 더 칼빈주의적 전통에 헌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결국 상당수의 평신도들과 목사들이 미국개혁교단(RCA)을 떠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1857년에 서부 미시간 그랜드래피즈에 본부를 둔 기독개혁교회(CRC, Christian Reformed Church)가 탄생하게 됩니다. 기독개혁교회 역시 1876년에 대학(Calvin College)과 신학교(Calvin Theological Seminary)를 설립하여 후세대 인문학교육과 신학교육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인종적으로 같은 네덜란드 계통의 교단이면서도 미국개혁교회(RCA)와 기독개혁교회(CRC)가 서로 신학적 입장 차이를 보인 것은 본국인 네덜란드의 신학적 지형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는 최근까지만 해도 크게 두 개의 개혁교회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앞서 이야기한 바처럼 국가교회에 해당하는 네덜란드 개혁교회(Hervormd Kerk)가 있었고 다른 하나는 그 교회에 반대하여 분리되어 나온 재개혁교회(Gereformeered Kerk)가 있었습니다. 신학교로 따지자면 전자에는 라이든, 흐로닝엔, 우트레히트와 같은 왕립대학들의 신학부가 있고, 후자의 경우는 암스텔담 자유대학교의 신학부나 캄펜신학교가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한편 전자와 일맥상통하는 미국의 교단이 미국개혁교단(RCA)이고, 후자와 연대했던 미국의 교단이 기독개혁교단(CRC)입니다. 고등교육기관으로 나누자면 전자는 4년제 인문학 중심 대학인 호프대학(Hope College), 후자는 역시 4년제 인문학 중심 대학인 캘빈대학(Calvin College)과 연계되어 있고, 신학교육기관으로는 전자는 웨스턴 신학교(Western Seminary), 후자는 캘빈 신학교(Calvin Seminary)를 교단신학교로 직영하고 있습니다. 교육에 관해 후자(CRC)가 갖고 있는 강력한 특징은 교인들의 자녀를 공립학교에 보내는 대신에 자기들이 만들어 운영하는 기독교 초 중 고등학교로 보낸다는 것입니다. 국제 기독교학교 연맹(Christian Schools International)이 미시간의 그랜드래피즈에 본부를 두고 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아실 것입니다. 요즈음 한국에 기독교대안학교 운동도 사실상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오랜 전통에 줄이 닿아있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아직도 미국 중서부의 이 작은 도시들과 마을에는 네덜란드 계통의 이름들이 전화번호부에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내가 1980년에 서부 미시간의 그랜드래피즈에 공부하러 가서 친구들과 교수님들의 이름을 외우고 발음하는데 얼마나 힘 들었는지 말도 못합니다. 물론 나중에 내가 네덜란드로 가서 여러 해를 살면서 네덜란드인들의 이름이 귀에 익숙하기 되었지만 말입니다. 게다가 유럽의 네덜란드인들이 발음하는 이름과 네덜란드계 미국인들이 자기들의 이름을 발음하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은 피치 못할 운명이겠지요. 예를 들어 조직신학자로 유명한 네덜란드계 미국인으로 칼빈신학교의 교수였던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가 계십니다. 그러나 네덜란드 라이든 대학교의 저명한 조직신학자로 헨드리쿠스 베르코프(Hendrikus Berkhof)도 있습니다. “벌코프와 베르코프!” 같은 이름이지만 발음이 다르군요!

 

한국이민자들이 로스앤젤리스나 오렌지카운티와 같은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나 산호세,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북 캘리포니아, 워싱턴 주의 시애틀, 조지아 주의 애틀란타, 일리노이 주의 시카고, 뉴욕 주의 뉴욕과 같은데 몰려 살 듯이, 네덜란드 이민자들 역시 미국의 특정지역에 몰려 살면서 자기들만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부 미시간의 홀란드 시의 인구 중 3분의 1이상이 네덜란드 계 미국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본국의 전통을 지키려고 애를 쓰며, 미국 사회 안에서 하위문화(subculture)를 만들어가기도 합니다. 물론 지금이야 네덜란드계라 할지라도 네덜란드어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미국 문화에 흡수되어 가는 것이 사실임에도 동족본능은 한국 사람처럼 그들에게도 강하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나가면서 한 마디 하지만 미국 역대대통령 중에 네덜란드 계 대통령이 세 명이나 된다는 사실에 약간 놀라게 됩니다. 미국 8대 대통령으로서 네덜란드어가 자유스럽고 영어를 외국어처럼 사용했던 마르틴 밴 뷰랜(Martin Van Buren, 18371841)과 미국 26대 대통령인 씨어도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1901-1909)와 미국 32대 대통령으로 유일한 3선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1933-1945)가 모두 네덜란드계 미국인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미국 교포자녀들 가운데 언젠가는 미국 대통령이 되지 말라는 법을 없을 것입니다. , , , , 혹은 씨 성을 가진 한국계 대통령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아마 내가 천국에 있을 때나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네덜란드 인들의 미국이민과 신학지형도에 관해 자판 위에 손가락이 가는 대로 몇 자 간단히 적어 보았습니다. 미국에 사는 한국교포들과 교포자녀들, 그리고 교포교회들이 불현 듯 떠오르는 군요. 할 말은 많지만 오늘은 여기서 멈추어야 할 것 같습니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할 남의 이민 이야기입니다.


[미시간주 홀란드 시에 있는 풍차와 튜울립밭]

튜울립과 풍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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