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목회자의 안식년과 재고조사기간

 


일반적으로 대학교수들에게는 안식학기”(sabbatical leave)이란 제도가 있습니다. 얼마 만에 안식학기가 허락되는지는 학교마다 다르지만 전통적으로는 보통 6년 가르치고 7년째 되는 해에 가르치는 일을 잠시 내려놓고 자기의 전공분야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안식년이란 용어가 유대-기독교적 배경에서 나왔다는 이유(참조, 23:1011; 25:17, 20-22; 15:16; 31:1013; 34:1314; 10:31; 대하 36:2021로 요즘은 좀 더 중립적인 연구학기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물론 연구학기나 안식학기에는 그냥 놀고 쉬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습니까? 주어진 기간을 마치면 연구한 결과를 논문이나 저서로 출간하여 안식년을 허락한 학교 당국에 제출하여야 합니다. 물론 이런 안식년 휴가 제도는 이미 일반 직장에도 있는데(career break), 직장인들이 얼마간 직장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집중하고 싶은 일들을 하도록 배려하는 제도입니다. 월급을 주면서 보내는 경우도 있고(유급 휴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무급휴가) 안식하면서 재충전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점에서 매우 인간적인 제도입니다.

 

안식년이 아니더라도 작게는 일주일 중 일요일에 하루를 쉬고 안식하는 현행 일요일휴무제도 역시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기에 휴식과 재충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기독교적 가치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젠 미국식 자본주의의 침공으로 많이 시들어가기는 했지만 서유럽에선 오래전부터 일요일 휴무(상점을 닫도록 명시)를 법적으로 규정했습니다. 어쨌든 휴식과 안식은 창조의 리듬”(노동과 안식)의 한 축을 이루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창조의 리듬을 타고 살아가야 제대로 된 삶을 사는 것이지요.

 

한편 목회자의 경우, 안식년을 가질 수 있을까요? 종종 교회사이즈가 어느 정도 되면 안식년을 갖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교회 사이즈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6년을 섬기고 7년째 온전히 일 년을 목장에서 떠나서 휴식을 취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그들은 대학의 교수들이나 유급휴가나 휴직이 가능한 직장의 사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일 년을 어디 가서 어떻게 쉰다는 말입니까? 영혼의 양식을 공급해야할 책임을 지고 있는 지역 교회의 목회자가 시간적으로 1년이나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지나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목회자들에게 안식기간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일선 목회자들의 경우 분주한 목회사역에서 탈진하기 쉽고 따라서 영적 재충전을 갖기 위해라도 안식제도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더더욱 한국에서와 같이 사역 중독에 치이는 수많은 목회자들을 보면 어떻게 해서든지 안식제도는 필요합니다. 본인과 그 가정을 위해서도 그렇겠지만 그가 섬기는 교회의 영적 유익을 위해서라도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실제적 제안을 해 보지요. 안식일이나 안식년이 1/7에 해당하는 숫자라면, 일선 목회자들에게 교회는 일 년 365일의 1/7정도인 52일 정도(한 달 반)를 안식기간으로 허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나는 의도적으로 안식기간이라는 말 대신 재고(在庫) 조사 기간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재고 조사”(Inventory management)는 사업에서 사용하는 비즈니스 용어로, 보유하고 있는 물품들의 양과 위치들을 구체적으로 점검하여 앞으로의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일입니다. 재고조사를 해야 하는 이유들로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서 물량들을 제 때에 사용하도록 비축할 뿐 아니라, 특별한 절기나 계절에 더 많은 공급이 필요할 물품들을 특별하게 관리하고,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때론 어떤 특정한 상품들이 계절에 따라 세월에 따라 가치가 상승하거나 하락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라도 재고조사는 반드시 시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원리는 목회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목회자들은 주어진 안식기간에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영적 자원들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살피고, 실수나 게으름이나 잘못된 판단에 의해 유실된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영적 자원들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남아 있는 것을 어떻게 재조정하여 사용할 것인지, 그리고 왜 자원이 그렇게 빨리 고갈되고 바닥을 치게 되었는지를 돌아보는 기간입니다. 일종의 자아성찰의 기간입니다. 또한 앞으로 있을 교회력의 계절들에 공급해야할 물품(설교겠지요!)을 어떻게 조달해야할지를 계획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안식기간은 재정비하고 재충전하는데 보내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다양한 독서, 여행, 음악, 영화, 산보, 운동 등과 같은 것들이 사용되어야 합니다. 영혼을 맑게 하고 시력을 회복하고 성품을 부드럽게 하며, 본질적인 것이 수정처럼 눈앞에 다가오도록 하는 기간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모든 직업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한국에서의 목회생활은 외국과 비교할 때 더 없이 분주하고 쫓기고 서둘러야 하고 때론 짊어져야할 부담과 짐들이 지나친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교회 내적 압력과 세속적 사회의 압력을 견디어내야 합니다. 모두가 동의하듯이 대한민국의 교회는 설교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각종 집회도 얼마나 많은지요. 목회자도 그렇지만 대한민국의 교인으로 살아가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들의 대부분은 교회 생존을 위한 필사적 발버둥일 때도 있고, 때론 외적으로 성장을 해야 한다는 무언의 사회적 압력 때문일 수도 있고, 성공 증후군에서 허우적거리는 목회자 자신의 허영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을 겁니다. 어쨌든 언덕 위를 향해 전진해야만 하는 힘겨운 전투에 투입된 병사들과 같은 사람이 한국에서의 목회자들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러므로 그들에겐 잠시 휴지(休止)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게 바로 재고 조사 기간으로써 목회자의 안식제도입니다.

 

나가는 말: 대학에서 가르치는 교수로서 나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한 학기를 연구학기로 허락을 받았습니다. 21년 만에 얻는 연구학기를 어떻게 사용할까 하다가 골치 아픈 학문 연구(!)보다는 자연공부와 가정공부에 더 치중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개월 동안 미국에 와서 어린 두 사랑스런 손자들을 베이비시터하면서, 때론 무릎에 앉히고는 어린이 미국 동화책을 읽어주고 또 읽어주었고 때론 숲속 길로 산책도 가고, 동네 어린이 도서관에 가서 마음껏 놀게 하고, 집안에선 망태할아버지 놀이, 집 바깥 정원 둘레에선 술래잡기놀이, 잔디에 떨어진 나뭇가지 줍기를 했습니다. 2주 간격으로 집 정원 잔디 깎기, 지붕 위에 올라가 하염없이 떨어지는 낙엽을 치우기, 미시간 호수로 달려가 수평선 위로 떨어지는 장엄한 석양을 보기, 어느 날엔 손자들과 함께 시카고의 대형 수족관에 가서 하루 종일 각종 동물 이름들과 씨름하며 보내기, 그리고 서부 미시간의 환상적인 단풍 감상하기, 차를 몰고 국립삼림지역의 조용한 도로를 마음껏 한없이 달리기, 어제는 21년 만에 경험하는 환상적 가을을 한적한 골프장에서도 만끽하였습니다. 카트를 타고 18홀을 돌면서 홀 마다 주는 독특한 가을 맛을 25달러에 4시간 동안 즐겼으니 더 이상의 바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25달러면 비싸지는 않겠지요? 목사이거나 60세 이상이면 할인 가격으로 우대를 하니 이것만은 고마운 나라인 듯합니다. 원래는 이사야서 해설을 완성하겠다는 큰 포부를 가지고 왔지만 결국 일반은총에 푹 젖어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가족의 따스함을 가슴에 안고 귀국하게 된 것입니다. 학자들에게만 아니라 목회자들에게도 반드시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재고조사기간”(안식기간)은 필요하다는 소중한 가르침을 몸소 배운 2개월이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Saskatoon Golf Club, Grand Rapids, MI에서] 새스키톤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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