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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문학의 얼룩” 단상(斷想)

2015.09.15 03:07

류호준 조회 수:1228

문학의 얼룩단상(斷想)

 

문학은 자기 자신 안에 얼룩을 가지고 있다. 논자들은 그 얼룩을 영향모방패러디패스티시인용인유 등의 심급이나 기법으로 세분화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세분하든 문학이 존재론적으로 안고 있는 얼룩 자체는 지워지지 않는다. 문학은 직접 인용부호를 삭제한 자유간접화법, 즉 표절이다.”

 

위의 인용구는 작가 장정일이 한국일보에 연재하는 2015913일자 칼럼에 문학의 얼룩’”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의 일부이다. 문학적 작업은 그 자체 안에 태생적 표절을 지니고 있다는 논조다. 마치 아주 오래전 히브리인 작가인 코헬렛(구약성경 전도서의 화자)해아래 새것이 없다.”라고 말한 것이 떠오른다.

 

그런데 아이러니는, 작가들(writers)에 의해 사용되고 있는 그 얼룩들을 상아탑의 학자들(scholars)기법들이라 부르며, 그 기법들에 다양한 학문적 전문용어를 붙여주었다. 장정일이 언급하고 있는 영향(influence)모방(imitation)패러디(parody)패스티시(pastiche)인용(citation)인유(allusion)들이 문학의 얼룩들인 기법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다양한 기법들이 학술적 세계이건 문학적 세계에서건 통용된다는 사실이다. 성서학 연구의 경우, 특별히 근대 영문학의 신문학비평의 영향을 받은 최신 성서학연구의 경우, 예를 들어, 두 개의 본문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상호텍스트성" 혹은 ()본문”(inter-textuality) 연구에서는 위에서 언급하고 있는 다양한 기법들을 많이 밝혀낼수록 그 연구자의 학문성이 높이 평가받는 추세이다. 그러면서도 어느 성서학자도 신약의 저자들을 구약문헌의 표절자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장정일이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문학은 직접 인용부호를 삭제한 자유간접화법, 즉 표절이기 때문이었다.

 

최근에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신약에서의 구약인용만 봐도 그렇다. 학자들은 신약 저자들의 저서 안에 구약문헌이 어떻게 반향”(echo)되고 있는지, 출처를 밝히지 않고 인용하고 있다고 생각이 드는 곳이 어딘지, 희미하게 인유하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특정한 문구가 구약의 어느 작자의 사상적 영향을 받고 있는지, 구약을 인용하면서도 인용자의 특정한 상황에 맞추어 비틀어 사용하는 곳이 어딘지 등을 연구한다. 이런 것을 밝혀내는 일에 탁월한 사람일수록 훌륭한 성서학자라고 불린다.

 

한 가지 짚어야 할 사실은, 고대로 갈수록 개인의 지적 재산권내지 지적 소유권이라는 개념이 적다는 것이다. 그들에겐 지식과 정보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공유적 속성을 지닌다고 생각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대에 부상한 지적 재산권” “지적 소유권은 철저하게 자본주의적 특성을 지닌다. 달리 말해 내가 갖고 있는 소유권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재산권이 침해를 받는다는 개인주의적인 자본주의적 사고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말이다. 역시 개인이라는 현대사회의 우상들을 파악해 낼 수 있다. “-나의-나를중심으로 한 정신구조(I-My-Me Mentality)에 소유와 재산과 돈이라는 것이 무의식적으로 달라붙어 거대한 시대정신을 만들어낸 것이다. 돈과 명예는 현대인들의 우상임에 틀림없나보다. 물론 남의 것을 슬그머니 도적질하는 나쁜버릇은 반드시 추방되어야 저질 도덕성에 틀림없다. 심각한 도덕적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문제를 슬프게 바라보는 이유는 비판하는 자나 비판을 받는 자나 모두 돈과 명예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허우적 거리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사회는 작가 신경숙 사건을 통해 다시금 문학의 얼룩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새로운 각도에서 이 점들을 일깨워준 작가 장정일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는 인간사들, 불의에 대해 정의를 수립하려는 애씀들, 때론 이런 애씀들이 자베르형적 인간들의 할거로 증폭되는 불행한 현상들, 불완전한 세상에서 온전함을 추구하려는 건전한 노력들, 그러면서도 갈등을 넘어 상처를 보듬어 싸매려는 외로운 흔적들이 아직도 이 세상은 살아야할 의지들로 가득한 곳이라는 점을 각인시켜 준다.


아래는 장정일의 칼럼이 실려있는 웹페이지입니다.   

http://hankookilbo.com/v/8d3244d935a9448a99cb9cb0a065d195


[Ada Park, Ada, MI.  청명한 가을 한적한 시골 동네 공원에서]

ada park.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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