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19 23:18
“크리스천들의 회향병(懷鄕病)”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은혜를 끝까지 바라고 있으십시오.”(벧전 1:13)
“Set your hope fully on the grace to be given you
when Jesus Christ is revealed.”(1 Peter 1:13, NIV)
일세기경 핍박과 시련으로 사방에 흩어져서 살아야만 했던 그리스도인들, 우리는 그들을 디아스포라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유랑민처럼, 방랑자들처럼, 임시체류자들처럼 고단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희망을 상실하고 살기에 너무도 적격이었던 고단한 삶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사도 베드로는 소망을 끝까지 붙잡고 있으라고 권면합니다. 어떤 소망이기에 끝까지 붙잡아야 한다는 것입니까? 사도 베드로가 가르쳐주는 “산 소망”(Living Hope)은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 그들에게 가져다주는 은혜를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간절한 바람과 소망을 다른 곳에 두지 말고 온전히 그 은혜에 맞추라는 것입니다. 어떤 은혜입니까? 거룩하고 성스럽고 신비로운 은혜입니다. 그런 은혜를 동경하고 갈망하라는 초대입니다. 달리 말해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성(神聖, holiness)을 그리워하고 동경하고 사모하고 열망하라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 “종말론적 동경”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말론적 동경”(escatological yearning)이란 예수께서 하늘에서부터 이 땅의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은혜를 사모하며 기다리는 삶의 모습을 말합니다. 베드로가 말하고 있는 종말론적 동경은 하늘에 대한 향수(鄕愁) 혹은 회향병(懷鄕病) 즉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앓으면서 이 땅위에 진정으로 거룩하고 성스런 그 무엇을 찾고 있는 영혼들을 염두에 두면서 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땅위에서 진정으로 거룩하고 성스런 그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 무엇은 마침내 경외와 경탄과 놀람으로 우리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우리로 고향을 기억나게 할 그 무엇입니다.
․ 찬란한 석양의 장엄한 일몰을 보면서 한번이라도 그 경이로운 신비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갈망으로 눈물 젖어본 일이 있습니까?
․ 새큰새큰 잠자고 있는 갓난아기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생명의 부드러움과 그 온화함에
놀라보신 일이 있었습니까?
․ 아주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하는 저녁식사 시간이 마치 마법에 걸린 듯한 시간처럼 느껴져
어느덧 헤어질 시간이 되자 너무 아쉽고 서운했던 적이 있었습니까?
글쎄요. 물론 이런 좋은 시간들과 좋은 시절은 언제나 끝이 나게 되어있을 것입니다. 자녀들은 자라서 부모의 품을 떠납니다. 석양은 언제나 어두움으로 바뀝니다.
그러나 그런 시간과 장소에서 “얼마동안이라도” 하늘이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찾고 갈망하고 희망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이러한 거룩한 순간들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흩어진 사람들, 그래서 천성을 향해 순례의 길을 떠난 사람들은 이 지상에서 거룩한 순간들, 성스러운 순간들에 접속하면서 하늘을 미리 맛보며 살아가는 길 위에 사람들입니다. 그들 모두 어느 것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는 회향병의 비밀을 품고 한걸음 영원한 고향, 아버지의 품안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순례 길 위에 하나님의 가호가 있기를 빌어마지 않습니다.
[미국의 태양계탐사선인 New Horizons가 9년 6개월 걸려 50억 킬로를 달려 명왕성(Pluto)을 1만 2천킬로 앞두고 찍었다고 함. 우주의 광대함과 인간정신의 위대함과 창조주 하나님의 신비에 경탄할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