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28 12:13
“거룩한 전쟁” 유감
미움과 반목은 진실과 사실 자체를 왜곡 굴절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최근에 여러 교회들에서 분란이 일어나고 있음을 잘 아실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목사를 추종하는 사람들과 그를 밀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 사이의 전쟁입니다. 문제는 미움과 증오의 모드로 돌입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사건을 선택적으로 줌인해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꼬투리를 잡거나 그의 표정하나라도 자기 편의대로 확대해석합니다. 같은 편에 있는 사람들은 그 해석을 덮어놓고 믿기 시작합니다. 믿기 시작하다가 아예 믿어버립니다. 믿어버리면 죽음도 불사하는 강력한 투쟁의 원동력이 됩니다. 이렇게 해서 폭력까지 동원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믿는 자들 사이의 싸움은 언제나 “거룩한 전쟁”(聖戰, Holy War)이 됩니다. 하나님(神)의 이름을 걸고 싸우는 것이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종교 간의 다툼과 싸움이 무서운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 간의 싸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좀 더 하나님께 가까운 지를 보여주는 신앙 선명성 다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철저히 이기심과 탐욕, 주도권 장악, 체면과 명예, 세력구축과 같은 더럽고 부패한 인간본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국의 기독교, 특별히 장로교 보수 교회들은 도덕적 성화(聖化)를 외치는 대신에 근본적 전향과 회심과 회개와 통회 자복을 강조하고 스스로 이런 일에 천착해야 할 것입니다. 몇몇 더러운 곳을 진한 흰색 분(粉)으로 화장(化粧)하거나 혹은 쭈그러지고 자글자글한 곳을 보톡스 주사로 팽팽하게 만드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약간의 비만 맞아도 화장기는 지워집니다. 보톡스 부작용으로 몰골은 더욱 추하게 변해 버립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도덕적 개량이나 개선을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죽은 자에게 염을 하는 장의사가 있는 곳입니다. 그리스도는 장의사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먼저 옛사람을 죽입니다. 죽기를 거절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와는 상관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은 사탄의 회(會)에 내어준바 된 자들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새로운 인종(New Humanity)을 만들어 냅니다. 그는 날마다 자신들을 십자가에서 죽이고 날마다 새로운 인종으로 태어나기를 거듭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례는 처음 예수를 믿기로 작정했을 때 받는 것이 아니라 매일 받는 것입니다. 날마다 물속으로 수장(水葬)되고 날마다 하나님에 의해 물속에서 건짐을 받아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의 옷은 언제나 축축하게 젖어있어야 합니다. 매일 물속에서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죄로 인해 죽은 자로 여깁니다. 이것이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의에 대해서는 산 자라는 말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전쟁이 일어나야 할 곳은 “우리 자신 속”이지 결코 다른 사람들과의 전쟁이 아닙니다. 교회를 분란(紛亂)하고 그리스도의 형제자매를 향해 목숨을 건 싸움질 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들고 싸운 성전(聖戰)이라도 그렇습니다. 불행했던 역사의 십자군 전쟁을 기억하지 못합니까? 우리는 십자군 전쟁의 용사가 아니라 십자가 전쟁의 용사들입니다.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노라!” 죽는 자만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교회 안의 거룩한 전쟁 유감입니다!
[미국 미시간 주의 유명한 휴양지인 Mackinac Island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