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비오는 날의 조찬과 데살로니가 주석"

 

 

[1] 시원한 여름비가 내리는 그랜드래피즈의 아침이다. 아침 8시에 이 지역에서 잘 알려진 그러나 상업적 식당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생소한 조찬 식당을 찾았다. 이름 하여 Gathering Place이다(이곳은 몇 년 전 지금은 고신대 조직신학교수가 된 우병훈 목사와 출판사 새물결플러스에서 일하는 최정호 목사 그리고 또 다른 내 제자 전태경 목사와 함께 조찬을 했던 곳이다). 이곳 캘빈신학교에서 7년간의 생활을 마치고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 주로 이사하는 총신 신대원 출신의 김은득 목사와 백석 신대원 출신으로 이곳에서 방금 구약학 석사를 1년 과정을 마친 양준모 목사를 조찬에 불러냈다.

 

김 목사는 캘빈의 리처드 멀러(Richard Muller) 교수 밑에서 역사신학으로 박사학위를 하다가 방향을 바꾸어 존 볼트(John Bolt) 밑에서 조직신학으로 헤르만 바빙크에 관한 학위 논문을 준비 중에 있는, 캘빈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 중에 최고참 학생 목사다. 뜬소문에 의하면 그랜드래피즈에 정착하려면 김은득을 통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화통한 마당발이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젊은 목사다. 물론 오늘 같은 조용하고 멋진 지역 식당(Local dining)을 처음 와 봤다고 하지만!

 

김 목사는 내가 이곳에 올 때마다 종종 커피숍으로 불러내어 한국과 세계의 신학지형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 신이 나서 그 디테일한 내용을 외울 정도로 친근하고 소탈한 친구다. 때론 그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한국 신학계의 야사와 신학자들의 비사를 들려주곤 했다. 오늘도 3시간 정도 조찬을 같이 하며 7년을 마감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는 김 목사를 위한 “최후의 아침식사”(?)를 하면 비사 몇 개를 들려주었다. “교수님, 그런 비사와 야사를 책으로 내면 대박일 것 같습니다!” “으흠, 그래? 그럼 아무래도 회고록을 써야겠군!”하며 한바탕 죽이 맞아 웃었다.

 

7년을 미시간에서 또 다른 몇 년을 매사추세츠에서 보내다보면 훌쩍 10년을 넘어선다. 유학생활 10년 이상을 하고 박사학위를 가슴에 품고 귀국하여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이나 후학들을 보면서 김 목사의 얼굴이 겹쳐져 온다. 인생 선배로서 그저 측은하고 애처로워 보인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력감 때문에 그들에게 건네는 목소리마저 점점 가라앉기 일쑤다. 사실 한국에서의 시간 강사라는 게 고작 한 달에 30-40 만 원 정도를 쥐고 살아가야하는 현실인데, 이런 이야기하다보면 유학 와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알게 모르게 우울증을 심어주고 있다는 정서적 죄를 짓기도 한다. 그래도 어찌하랴. 현실인 것을! “은득아, 공부도 좋지만, 그냥 여기 눌러 앉아라.” 아니면 “방향을 선회하여 목회지로 나가거라!”라고 말하면서도 실상은 내 마음에도 없는 충고를 한다.

 

그 옆에 이제 유학 생활 일 년을 마친 제자 양 목사의 머릿속도 복잡했을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래도 대화중에 올바른 식견과 사고를 가진 것을 확인하고 나름 뿌듯하기도 했다. 아마 양 목사는 내가 현역에 있으면서 외국으로 유학을 보낸 마지막 학생일 가능성이 많아서 더욱 애착이 간다. 유학이라는 게 단순히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문화를 익히고,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눈여겨보는 것도 책상공부 이상의 공부라고 몇 마디 건네준다. 그 사이 여성 웨이터(waitress)는 계속해서 모닝커피 잔을 리필 해준다. 마시고보니 5잔을 족히 마셨나보다. 시간을 보니 얼추 11시가 되었다. 창밖엔 무심하게도 여름비가 시원하게 내리고 있다.

 

 

 

[2] 석별의 정을 나누고 집 가까운 베이커 출판사 매장에 들렸다. 지난 35년 이상을 다녔던 책방이기에, 그리고 서점 한구석에 있는 중고서적 섹션에서 쭈그리고 앉아 책을 찾아보던 옛 날이 생각이 나서 또 한두 시간을 둘러보았다. 물론 오늘은 미리 정한 책 한권을 집어들려고 오긴 했다. 캘빈신학교 M.Div. 동창으로 3년 정도 후배가 되는 현 캘빈신학교 신약학 교수인 제프리 와이마(Jeffrey A. D. Weima)가 쓴『데살로니가 주석』(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다행이도 세일가격으로 건졌다. 정가 $55를 착한 세일가격 $22에 집어들었으니 기분이 좋다.

 

아주 오래전 캘빈신학교에서 나와 와이마는 앤드류 밴스트라(Andrew Bandstra) 박사에게서 데살로니가 서를 배운 일이 있었고, 그 후 밴스트라 교수의 조교를 하던 와이마는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론지네커(Longenecker) 박사 밑에서 “서신체 분석”(Epistolary Analysis)이라는 독특한 학문 분야를 개척하여 이 분야에 최고의 학자가 되었다. 그는 이 학문적 방법론을 십분 활용하여 수십 년의 연구 끝에 방대한 데살로니가 주석(빡빡한 글씨체로 711쪽)을 출간한 것이다. 작년에 이곳 책방에서 이 책을 만지작거리다가 가격이 좀 빡세서 내려놓았는데 오늘은 그냥 질렀다. 2만 5천 원 정도라면 아주 착한 가격이다. 아마 넥서스 크로스의 나영균이가 이것을 보면 “교수님, 저도요!”라고 하겠지만, 오늘은 이것으로 끝내련다. 영균이, 미안하네!

 

데살로니가 주석 출판에 관련한 일화가 있다. 옛날 옛적 김세윤 교수가 캘빈에서 한 두 해 가르친 일이 있었다. 당시는 나는 신학교 졸업 후에 오하이오에서 목회하던 중이었는데, 아마 그 때 와이마 박사는 캘빈신학교의 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와이마와 함께 캘빈 Th.M을 졸업한 한국 학생으로는 기록에 의하면 신원하 박사(고신신대원 윤리학 교수), 최병남 목사(전 합동총회장 및 대전 중앙교회 원로), 박상훈 박사(승동교회 담임목사), 오정현 목사(사랑의 교회 담임)가 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와이마(University of Toronto, Canada)도, 김세윤(University of Manchester, England)도 신약학계에서 널리 알려진 학자가 되었는데, 얄궂은 운명은 아니더라도 WBC 주석시리즈 편집진에서는 김세윤 교수에게 데살로니가 주석 집필을 부탁을 했고, 베이커 주석시리즈(BECNT) 편집부에선 와이마 박사에게 데살로니가 주석집필을 부탁했다. 서로가 오래전부터 선생과 학생 사이로, 그 후에는 동료로 아는 사이였기에 나는 두 사람의 데살로니가 주석 출판에 남다른 관심을 두었다. 사실 캘빈 신학교 시절 내 전공이 신약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학자들의 세계에서 그렇듯이 그들 역시 서로 상대방 주석서 완성에 남다른 관심이 많았지만 결국 와이마의 책이 먼저 나오게 되었다. 한 사람은 내 동창이고 다른 한 사람은 내 동족이고! 어쩌나. 와이마의 주석을 바탕으로 교인들을 위한 성경공부용 데살로니가서 해설서를 써보면 어떨까 하는데 모르겠다.

 

[조찬 식당에서 김은득/양준모 목사; 베이커 출판사에서]

은득과준모.jpg

 

데살주석.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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